미국은 살만한 땅이던가요

2005.11.23 15:41

정찬열 조회 수:515 추천:38

                                                  
미국이 살만한 나랍디까. 한국에서 여행 온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4월 8일이면 필자가 미국에 건너온 지 20년이 된다고, 강산이 두 번 바뀐 세월을 살아왔다고 했더니 이 땅이 과연 살만한 곳이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미국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여행을 왔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다소 막연한 질문을 받고 망설이다가,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당신도 그렇습니까"웃으면서 되물었다. 싫은 나라와 살만한 나라는 다른 문제일 수 있지만, 싫은 나라로 생각되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는 될 수 없으리라 믿어졌기 때문이다. 대답 대신 그 분도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다.
얼마 전. '나는 미국이 싫다'는 책을 읽었다. 미국에서 1년 반을 살다간 K씨가 이 나라를 신랄하게 비판 한 책이었다. 20년을 살아왔지만 나는 아직도 이 땅에 대해 시원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고작 1년여를 미국에서 지냈던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도 많은 싫은 체험을 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미국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를 넘은 편견은 때로 위험하다.
어느 사회나 음지와 양지가 있기 마련이다. 20년 정도 살아보니 이젠 제법 그런 게 눈에 들어온다. 미국은 이민으로 성립된 나라여서 이민자에게 비교적 관대하다. 9.11이후 규제가 많아지고는 있지만, 국내에서 한인들이 동남아 인들을 취급하는 태도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곳 L.A에선 한국인이 미국 시민권 시험을 볼 때 필리핀 시험관에게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필리핀 노동자에게 가혹하게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필리핀 시험관이 한국인에게 유난히 까다롭게 굴기 때문이란다. 업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뭇가지 하나를 싹뚝 잘라 접을 붙여도 한 동안 몸살을 앓기 마련인데, 남의 땅에 옮겨와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나는 이곳 한인들의 모임에서 '미국에서 하는 반만큼만 일했다면 한국에서 크게 성공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이민자들이 열심히 살고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라 믿지만,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사는 사람은 어디서나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포함된 말일 것이다.    
근래 한국에서 사오정 오륙도 이태백 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듣고 있다. 그만큼 구직이 힘들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능력을 발휘하고싶어도 그럴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능력은 모든 사람이 힘들다고 생각한 바로 그곳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탈무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두 사나이가 기나긴 여행을 하여 배가 몹시 고팠다. 그런데 어느 방에 들어가 보니 맛있는 과일들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이것을 보고 한 사내가 말했다. "과일은 먹고 싶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꺼낼 수가 없네." 그러자 다른 한 사내가 말했다. "높은 곳에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저기에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야. 그러니 나라고 저기까지 올라가지 못할 까닭이 없지." 이렇게 말하고 사다리를 놓고 한 걸음 한 걸음 밟고 올라가 그 과일을 먹었다.
미국은 살만한 땅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할 차례다. 많은 사람이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긴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겐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나라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인생을 걸어 볼만한 곳이다.
미국에서의 2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 새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의 발달로 국경이, 공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요즘 한국의 많은 젊은이가 이민을 꿈꾼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결국 삶의 문제인데 어디서 사는가 보다는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4월 7일 04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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