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수녀님께 드립니다

2005.11.23 15:50

정찬열 조회 수:615 추천:43

                                        
수녀님, 오랜만에 글 드립니다. 이곳에 계실 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 수녀님께서 한국으로 떠나시고 난 지금에야 후회가 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항상 한 발자국씩 늦게 깨닫고, 그리고 지난날을 아쉬워하게 되는가 봅니다.
요즈음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고 있습니다.  <새들에게 쓰는 편지>중 마음에 든 한 구절을 적어 보냅니다.
몸과 마음의 / 무게를 덜어내고 싶을 때마다 / 오래도록 너를 그리워한다
살아서도 / 죽어서도 / 가벼워야 자유롭고 / 힘이 있음을 아는 새야
먼데서도 가끔은 / 나를 눈여겨보는 새야 / 나에게 너의 비밀을 / 한 가지만 알려주겠니?
모든 이를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 끈끈하게 매이지 않는 서늘한 슬기를 / 멀고 낯선 곳이라도 겁내지 않고 / 떠날 수 있는 담백한 용기를 / 가르쳐 주겠니?    
이 글을 읽으면서, 벗어 던질 줄 모르고 헛된 욕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저 자신이 몹시도 부끄러웠습니다.  언제쯤 저는 잘 버릴 줄도 아는 경지에 오르게 될까요, 수녀님.

수녀님, 오렌지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 기억나시지요. 지난주엔 거기 누워있는 어떤 이를 만나러 그곳을 찾아가는데 마침 장례행렬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장의차가 앞서고 그 뒤를 여러 대의 자동차가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차 한 대가 그 행렬이 끝나는 맨 뒤를 천천히 따라 올라가고 있더군요.  쓰레기 운반 차였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람이 수명을 다 하면 땅에 묻혀야 하듯이 세상의 모든 것도 제 역할을 다 하면 땅에 묻혀야 하는구나. 땅위에 존재했던 모든 것은 결국 자연으로 되돌아가는구나. 그렇다면 살아 숨쉰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 자연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관속에 들어있는 저 분의 인생은 어느 만큼 의미로운 삶이었을까.
잠시 엉뚱한 곳을 달렸던 나의 생각은 다시금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지극히 근원적인 곳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한 존재인가. 만일 내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존재인가.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과연 그분 보시기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묘지에 도착하여 말없이 잠들어 있는 수많은 무덤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내가 걸어 온 길과 그리고 걸어가야 할 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만치 언덕배기엔 지금 막 장례식을 끝마친, 무덤에 들어가는 순서를 모르는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성이를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수녀님, 밤이 깊어갑니다.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밤입니다. 별은 물을 사랑하여, 젊었을 때는 밤하늘에서 물위에 얼굴을 대고 속삭이다가, 나이가 들면 단풍잎으로 변하여 물에 안겨 영원히 잠든다 했던가요. 우리들의 영혼이 평온히 잠들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수녀님, 요즘 이곳은 날씨가 변덕이 심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기 바라며 우선 이만 줄입니다.  
<2004년 4월 25일자 가톨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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