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해도 남아야 하나요

2005.11.23 15:54

정찬열 조회 수:344 추천:26

                                                    
며칠 전,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1년만에 귀국한 김 대위를 만나보았다. 그는 2000년에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엘리트 군인이다. 지난해 4월 명령을 받고 이라크 전에 파견되어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게 됐다.  
김 대위는 전남 함평 출신 김 모씨의 둘째 아들이다. 그가 귀국했을 때 마침 아버지는 윤달을 맞아 부모님의 이장관계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혼자 마켙일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온 다음날부터 김 대위는 가게에 나가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한편 김 대위가 이라크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마켙이 위치한 템플시의 주민들이 환영잔치를 마련했다. "Welcome Home, Capt. Kim!" "Thanks For Your Service!"라는 프랭카드가 걸리고 시장도 환영식에 참석했다.
이 환영식은 ABC TV를 비롯한 신문 방송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고, 전쟁터에서 돌아오자마자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어머니를 도와 마켙을 돌보는 효성 지극한 아들이자 진정한 군인, 김 대위의 얘기는 인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와 점심을 먹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전쟁 없이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일터에 가고 저녁엔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정담을 나누며 때로 친지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그런 일상의 삶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전쟁을 겪고 온 젊은이의 얘기다.
화제는 이라크 전장으로 옮겨갔다. 145도를 오르는 폭염과 앞이 보이지 않은 모래바람, 옆에 있던 부하가 죽어가던 생과 사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참혹한 순간들을 말해주었다. 전선이 형성되어 있을 때는 적의 위치를 알 수 있고 공격 목표도 명확하지만 전선이 없는 지금은 적이 어디에서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어 훨씬 더 위험을 느낀다고 했다. 허지만 궁극적으로 이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고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강조했다. 후세인 독재아래  오랫동안 신음하던 이라크민중은 진정으로 미군을 환영하고 고마워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메스콤은 이라크전쟁에 대해 실제보다 훨씬 비판적인 기사를 쓰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는 얘기를 덧 붙였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전장에서 군인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마당에 후방에서 언론이 너무 한가하게 이 전쟁을 평가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미군의 가혹행위에 대한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이라크 주둔 미군의 피해가 늘어나면서, 미국인의 이라크전쟁에 대한 회의가 점차 높아져가고 있다. 포로학대 사건은 거의 매일 메스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친미성향의 아랍권 조차 반미로 선회하고 있다. 인권을 존중하고 수호한다는 미국의 자존심은 어디에 있으며 이라크전쟁의 진정한 이유와 명분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이라크에서 핵무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후세인이 알카에다를 후원한 흔적도 없고, 9.11테러에도 관련된 증거가 없는데 미국은 무엇 때문에 이라크에서 피를 흘려가며 욕은 욕대로 먹는지 납득이 안 된다는 여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급기야 미, 영, 일, 이, 4개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라크 임정이 요청하면 우리는 떠날 것'이라는 공식입장이 나왔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다시 김 대위를 생각한다.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그 전쟁이 명분이 없다는 여론을 보면서 그는 어떤 느낌을 가질까. 이미 전쟁에서 생명을 잃은 젊은 영혼들은 무엇으로 보상을 받을까. 그런데 그 전장으로 한국군이 파병될 예정이라 한다. 그들은 또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Should We Stay If They Say Go." 가라 해도 남아야 하는가, 잠깐 떴다 사라진 인터넷신문의 제목이 이라크 전쟁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 싶다. 혼란스럽다. <2004년 5월 19일 칼럼>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30,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