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좋은집 사 드릴게요

2005.11.23 16:01

정찬열 조회 수:427 추천:31

                                                  
7월 한 달간 여름한국학교를 열고 있다. 방학을 맞아 초등에서 중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함께 뿌리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학교에선 가르치지 않는 도덕이나 윤리교육도 겸하고 있다.  
교사회의에서 한 선생님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전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어졌다.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글을 써내도록 했다. 그러면 보다 진솔한 얘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느 학생의 글을 읽어보자. "...엄마는 매일 잔소리만 해요. 피아노 연습 해, 숙제 다 했니?. 전화 끊고 TV 꺼. 왜 책을 안 읽어, 책 좀 읽어라. 그리고 왜 그렇게 고함을 지르시는지. 학교에서 온 성적표에 B가 하나 있는 걸보고 '왜 올 A 못 받았어?' 하고 말할 때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요. 그리고 내 친구들은 한 주 7달러씩 용돈을 받는데 나는 5달러 받아요. 2달러만 더 주면 좋겠어요" 여기서 보듯이 부모들이 잔소리하는 것. 고함지르는 것. 그리고 공부하라고 다그치는데 대한 불만이 제일 많았다. 두서가 없지만 눈 여겨 볼만한 내용이다.
다음 학생의 경우를 보자"...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우리 가족은 대화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남자친구한테 전화 오면 바꿔 주고 저를 믿어주시면 좋겠어요." 부부싸움도 아이들 앞에선 조심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조금 특별한 경우인 다음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자. "동생을 돌보는 것이 싫어요. 나 같은 어린애한테 두 살짜리 동생을 보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공부도 해야하고, 피아노 치고, 친구들하고 놀고도 싶고 ....내 동생은 말을 안 들어 더욱 힘이 들어요. 나한테 자유시간 좀 주세요."  아이의 마음이 거울처럼 드러나는 글이다.
또 보자 "...나는 방에서 자고 엄마 아빠는 리빙룸에서 자서 미안하고 고마워요. 나중에 내가 좋은 집 사 드릴게요. 나를 항상 사랑해 줘서 감사합니다." 그냥 철없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던 녀석이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하나 더 읽어보자 "우리 아빠는 우리와 매일 놀아줍니다. 말타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도 하고 바둑도 두고 장기도 둡니다. 아빠와 놀 때는 내 동생 명인이도 함께 놉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빠를 사랑합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아주는 것을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확인시켜주는 글이다. 이제는 훌쩍 커 버린 내 아이들, 그들이 어렸을 때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을 이제야 후회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철부지만은 아니다. 어른들의 흉한 모습은 아이들의 맑은 창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도 아이들은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우리아빠는 바빠서 나랑 놀아줄 틈이 없습니다.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어느 시인의 말을 구태여 빌리지 않더라도 부모들의 어려움, 특별히 가정을 책임진 아버지의 고단한 심정을 어찌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마치 그걸 다 알고있다는 듯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꾸밈없이 적어놓은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여름학교는 해마다 열리며 올해 여섯 번째가 된다. 학교에선 삼강오륜을 비롯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도 아울러 가르친다. 아이들의 글을 읽고 나서, 그들에게 뿌리를 심어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부모에게 전해주는 일 또한 그에 못잖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 학부모들을 한 자리에 모아 아이들의 글을 읽어드려야겠다.
부모자식간에 서로의 심중을 서로 이해한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당연한 것을 어른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해 왔던 것은 아닐까.
<2004-7-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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