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누님

2005.12.06 01:14

정찬열 조회 수:548 추천:49

                                                        
  아들 승이가 대학 입학원서를 냈다. 머잖아 대학생이 된다고 들떠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대학을 입학할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외갓집 양자누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울의 모 대학에 응시한 다음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는데, 합격 소식을 친구가 전화로 알려주었다. 기뻤다. 30 년도 훨씬 넘은 일이지만 지금도 그때 그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등록통지서가 우송되어 왔다. 16만 원이 조금 넘었다. 당시 그 액수는 농촌에서 만만한 돈이 아니었다. 백여 호 되는 우리 마을에서 서울로 대학을 간 사람이 유사이래 필자가 처음일 만큼, 시골에서 서울로 자식을 대학 보낸다는 게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기한 내에 돈을 마련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 시절엔 학자금 융자제도 같은 것도 없었다. 돈을 융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막막했다. 날자는 빠득빠득 다가왔다. 드디어 마감 날. 아직 3만 원이 부족했다. 삼. 만. 원... 서울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기우는 해를 따라 대학에 가는 꿈도 언덕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쳤다. 최선을 다해보자. 대학교 서무과장 앞으로 전보 한 장을 보냈다. "수험번호 0000번, 학생이름 정찬열, 등록금을 마련하여 사정이 있어 밤차로 올라갑니다. 0월 0일 0시" 그리고 광주 역에서 서울행 야간 열차를 탔다. 덜컹거리며 밤새 달려온 완행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세 시쯤. 광장의 찬바람이 살을 파고들었다. 가로등 불빛 속으로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청량리 행 시내버스를 탔다. 경희대 앞에 살고 있는 양자누님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신 새벽에 문을 두드리는 나를 보고 누님은 깜짝 놀랬다. 여차여차하여 찾아왔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말없이 듣고 있던 누님은 밤새 얼마나 추웠느냐며 우선 한 숨 자라고 말했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웠더니 언 몸이 녹으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언뜻 잠을 깨니 아직 어둑한 새벽이었다.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셨던지 누님이 방에 들어와 말 없이 내 손에 돈 3만 원을 꼭 쥐어주었다. 누님은 부자가 아니었다. 직장에 다니는 매형이 벌어온 돈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평범한 젊은 주부였다. 게다가 고만고만한 아들 셋을 기르고 있었다.  3만 원이 누님에게도 작은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님이 주시는 돈을 받으며, 목이 메었다.  
   아침 일찍 등록금을 가지고 학교 서무과로 갔다. 사정이 있어서 어제 마감 일에 등록을 마치지 못하고 밤차를 타고 이렇게 올라왔노라고 설명했지만 창구 직원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규정을 어겼으니 도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서무과장을 만나보았지만 대답은 같았다. 전보를 보낸 사실은 인정하지만 학교 규정을 어기는  선례를 만들 수 없다고 차갑게 얘기했다. 앞이 캄캄했다. 여기서 주저앉아야 하다니. 방법이 없는가.
  총장실을 찾아 올라갔다. 총장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리고 전보가 온 것까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가슴이 탔다. "열심히 하게." 결국 총장님의 선처로 그 학교의 학생이 될 수 있었다.  
  등록을 마치고 학교 언덕을 내려오는데 교정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아침엔 보이지 않던 눈 위에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길가 나무들이 나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세상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해마다 대학 입학식 무렵이 되면 등록을 마치고 한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교정을 내려오던 그 날이 떠오른다. 잇달아 내 누님의 그 넉넉한 얼굴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 양자 누님 같은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보군 한다.  <2005년 12월 7일 광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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