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어머니

2006.02.14 02:19

정찬열 조회 수:446 추천:21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살아왔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모든 것을 쏟았습니다."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수퍼보울에서 최우수선수(MVP) 상을 받은 헤인즈 워드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헤인즈 워드. 그는 지금 미국, 아니 세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이미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대로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 흑인 병사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다. 두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건너와 불우한 성장기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극복해낸 워드의 인생역정은 이곳에서도 메스콤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차별과 가난이라는 역경을 극복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낸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워드의 어머니인 김영희 씨는 미국에 오자마자 이혼을 당하고 영어를 못한다며 양육권까지 빼앗겼다. 김씨는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당 접시닦이, 호텔 청소원, 잡화점 점원 등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할 정도로 힘든 생활을 했다. 아들을 되찾은 후에도 힘들게 일했다.  
  김 씨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어느 하나 감동과 깨달음을 던지지 않은 게 없었지만, 유독 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서두에서 인용한 워드의 인터뷰 내용 중에 김영희 씨가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어려운 사정에 처한 사람이 국가에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또 미국정부는 당연히 최저생활을 보장해 주도록 되어있다. 그렇지만 김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들을 당당하게 키우고 싶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고 살아왔다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재산을 감추고 서류를 위조해가면서까지 정부보조금을 타고 무상의료를 제공받는 걸 보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있다. 구청에서 생활보호자 확인을 나온다고 하면 서둘러 가전제품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다가 그들이 지나가면 다시 가져와 사용하는 얌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서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정부의 원조조차 받지 않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영희 씨는 바보라고 불려져도 될 성 싶다. 그러나 워드가 강조하고 또 강조했듯이 그 바보스러운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헤인즈 워드도 없었을 것이다.
   의사들은 어릴 적 무릎뼈를 다친 헤인즈 워드가 이처럼 훌륭한 운동선수가 된 것은 하나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 무릎뼈를 가지고 높이 뛰거나 방향을 갑자기 바꾸는 운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워드는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뛰고 또 뛰었다고 한다. 아들이 당당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부의 원조조차 받지 않은 어머니의 바보스러움이 워드를 그렇게 강한 선수로 만들었다. 결국 워드는 바보 어머니, 김영희 씨의 작품이다.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으며 빈곤과 허기 속에서 꿋꿋하게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의 어머니, 한국의 어머니들이 생각난다. 조국이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김영희 씨와 같은 수 없이 많은 바보 어머니들의 덕택이리라. 바보 어머니 만세!
    <2006년 2월 15일자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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