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철렁하게 하던 아이

2006.02.27 11:19

정찬열 조회 수:569 추천:43


  한국계 여배우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샌드라 오는 제63회 <골든글로브>TV영화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이제 미국인들의 일상대화에서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유명인이 되었다.
  자녀를 그런 자랑스러운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가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의 타고난 재능을 찾아주는 일과 아이의 열정을 존중해주는 일" 두 가지를 꼽았다. 딸에게 너댓살 때부터 피아노, 발레, 운동 등 여러 가지를 시켜보았는데 샌드라가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더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저게 내 딸인가' 싶게 관중을 사로잡더라고 말했다.
  그런데 고교 졸업반이 되어 대학을 선택해야하는데 연극학교로 가겠다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연극에 재능이 있음은 확인됐지만 노란 얼굴로 백인사회에서 아이가 당할 좌절이 두려웠던 때문이다. 그러나 딸이 배우로 성공한 지금, 자신의 길을 택해 열정을 가지고 사는 딸의 삶이 부럽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이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몇 개월 전의 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아들 승에게 어느 대학을 택하려하는지 물었더니 정치학과를 지망한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백인 중심사회인 미국에서 소수민족인 한인이 정치인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성격이 여린 아이가 그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즉석에서 반대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신중히 생각한 다음 답을 해주는 게 좋을 성싶어 결정을 미루었다.
  꿈 많은 나이라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를 뒷받침할만한 재능은 물론, 어떤 역경도 이겨낼 만한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가수나 배우, 운동선수로 성공하겠다며 인생 '대박'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적은가.      
  몇 날을 망설이던 중, 샌드라 오 어머니의 인터뷰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들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한 고리타분한 아버지였음을 깨달았다. 방황하던 내 젊은 시절,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내가 가슴 뛰는 일을 위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첫 단추를 잘 끼워준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곰곰 생각해보니 녀석은 선거를 통해 학생회장에 뽑힌 경험도 있고 LA마라톤을 2번이나 완주했었다. 본인의 열정만 있다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원하는 학과를 선택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면서 살아가게 하는 게 옳다고 판단되었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본인도 행복하고 성공가능성도 더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엉뚱한 얘기를 해서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경험을 가진 부모들이 있을 것이다. 엉뚱한 얘기는 특별한 아이에게서 나온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열정을 존중해주고,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의 얘기를 부모가 놓치지 않을 때, 희망은 현실로 다가온다.
   우리아이들이 푸른 꿈을 이루기 위해 혼신을 다해 도전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저 젊은이들이 이 세상을 또 얼마나 살맛나는 곳으로 변화시켜놓을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샌드라 오처럼 어머니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아이들. 열정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청년들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2006년 3월 1일자 광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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