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깜박이 등을 켜고 왼쪽 차선으로?

2007.01.02 00:20

정찬열 조회 수:331 추천:18


  며칠 전 고속도로에서 있었던 일이다. 바로 앞차가 오른쪽 깜박이 등을 켜면서 왼쪽 차선으로 옮겨갔다.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을 가더니 이번에는 왼쪽 깜박이 등을 켜면서 오른쪽 차선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교통이 붐비지 않아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저런 모습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2월 초, 광주에 머물 때였다. 볼일이 있어서 광주시청에 들렀는데 1층 유리창 대부분이 박살이 나 있었다. 전날 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 데모대원들이 부셔버렸다고 했다. 파편을 보니 웬만한 충격으로는 깨지지 않을 만큼 두껍고 단단한 유리였다. 주위에는 벽돌과 각목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모습이었고, 겨울 찬바람이 시청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피해액이 3억 5천만 원 정도라고 했다.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서 한국의 시위보도를 접해왔지만, 그 날 현장을 목격하고서는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미국에서는 데모할 때 대부분 피켓을 들고 조용히 의사표현을 한다. 과격해보았자 피켓을 흔들며 목청을 높이는 게 고작이다. 공공질서를 교란하거나 건물을 파손할 경우는 즉각 공권력이 발동된다.
  시위현장을 둘러보면서 민주화운동의 성지라는 광주가 행여 폭력과 불법시위의 본거지로 각인되지나 않을까 염려 되었다. 그 날의 데모대가 한국의 시위문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16세기에 영국과 독일이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고, 여러 나라가 자국의 필요에 따라 혹은 시대적 요청에 따라 다른 나라와 협정을 맺어가며 살고 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멕시코는 46개 나라와 협정을 맺어 일자리 1백만 개를 만들었다. 대미수출이 오히려 증가했고 세계 8대 무역국이 됐다고 자랑한다.
  농업부문의 경쟁력을 걱정하는 전남 광주지역의 현실을 모르는바 아니다. 허나 일차산업인 농업은 시장 개방과 무관하게 경쟁력이 쇠잔해가는 분야다. 식량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정부가 금융지원을 하고 농가는 대안작물 위주로 전환하는 등, 농업생산성 증가를 위한 정책적 배려로 농민의 어려움을 덜어주어야 한다.        
  엊그제 만난 어떤 후배가 “보스톤에서 LA까지 비행기로 여섯 시간이나 걸리더라” 면서, 미국이 이렇게까지 큰 나라인줄은 미처 몰랐다고 했다. 한국에 비하면 미국은 엄청 큰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무역협정을 맺으면 금방 미국에 먹힐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낄 만도 하다. 그러나 한국이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만큼 큰 시장이 우리 것이 된다는 긍적적인 면을 보면 된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경제적 측면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그동안 미국과의 무역협정에 대해 충분한 찬반토론이 있었고 이해득실에 관해서도 많은 홍보가 있었다고 한다. 민감한 품목에 대해선 그 분야의 요구와 애로를 충분히 경청해 협상전략에 반영해야한다. 어차피 다른 나라와 주고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시대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 된다. 그게 협상이다.
  유리창이 부셔진 광주시청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청은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시민의 재산이 그런 식으로 망가져서는 안 된다. 떼를 쓰면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질서와 공권력을 우습게 아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 만든 족쇄에 갇히게 된다.
  2007년 새해가 밝았다. 오른쪽차선으로 들어가려면 오른쪽 등을 깜박거려야 하는 것처럼 ,질서를 존중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07년 1월 3일자 광주매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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