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만의 귀향

2007.02.26 09:08

정찬열 조회 수:497 추천:38

                                
  매 주말 아침 이곳 ABC TV에서는 한 주 동안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병사들의 이름을 발표한다. 무거운 음악을 배경으로 검은색 자막에 세 줄로 된 하얀 글씨가 아래로 흐르면서 유명을 달리한 병사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출신 주 등을 알려준다. 마지막에는 총 사망자의 숫자가 나온다. 이라크 전선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발표를 지켜보며 얼마나 속이 탈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보도를 보면서 월남전장에 자식을 보냈던, 지금은 돌아가신 시골 작은집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삼촌이 월남에 간 다음 할아버지는 한 동안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 아들, 어쩌꺼나 내 아들...” 하며 동네를 돌아다니셨다. 자전거탄 우체부가 마을에 나타나도 불길한 소식을 가져올까 겁을 먹었다. 사람들이 월남, 민주주의, 돈, 같은 단어를 동원하여 위로를 하면, 할아버지는 “월남이 뭣이고 민주주의가 머시라냐, 돈은 또 무슨 앰병할 놈의 돈이라냐. 내 새끼 죽어버리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들이여” 라며 대꾸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월남파병 장병이 사망한 뉴스 따위는 보도되지 않았다. 풍문으로 들리는 소문을 서로 쉬쉬 하면서 사람들은 꽃다운 젊은이들이 그저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삼촌은 돌아왔다.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허구한 날을 술로 지새우더니 젊은 나이로 숨져갔다. 삼촌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월남은 결국 패망했다.
지난 2월 17일 이곳 레이크 포리스트에 있는 엘토로 메모리얼 팍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지미 도서 일병의 장례식이 열렸다. 1950년 11월 미 육군 연합전투부대 31연대 소속으로 압록강변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도서 일병은 전투 중 실종됐다. 당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미군은 고립되어 8000여명이 이 전투에서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도서 일병의 유골은 지난 2002년 밭을 갈던 북한 농부에 의해 발견됐고, 북한 측의 연락을 받은 미군당국은 5구의 유골을 더 발굴했다. 도서 일병 유족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군당국에 D.N.A 샘플을 보냈으며, D.N.A 검사를 통해 신분이 확인되어 도서 일병은 57년 만에 유골이나마 고향으로 돌아와 편안히 잠들게 됐다.
  잘 생긴 열여덟 청년. “걱정하지 마세요,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며 부모에게 인사를 하고 한국전장으로 떠났던 꽃 같은 젊은이가 57년 만에 이렇게 돌아왔다. 머나먼 이국 땅, 어느 산자락에서 목숨을 잃었던 병사가 낯선 산하를 혼백으로 떠돌다가 이제야 따뜻한 고향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스러져 간 4만이 넘는 젊은 미군병사들을 생각한다. 메스콤에서 사망자의 이름과 숫자를 발표할 때, 늘어나는 병사들의 전사 소식을 들으면서 전쟁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전장에 나간 자식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를 바 없을 터. 주위에서 위로의 말을 건낼 때, 그들도 우리 작은 할아버지처럼 “한국이고 뭣이고 다 필요 없다. 내 자식이 죽고 나면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지 않았을까.
  자식의 전사통보를 받고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이 목숨 바쳐 지켜낸 한국, 그 나라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반미 소식을 접하면서 그들은 또 어떤 심정일까.  
  전쟁에 나가 소식 없는 자식을 가슴에 안고 도스 일병의 부모도 세상을 떴다. 그의 유골은 여동생 베티 닐슨의 가슴 저미는 추도사를 끝으로, 그의 희생을 기리는 한국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장되었다. 57년 만에 귀향한 지미 도서 일병. 삼가 명복을 빈다.
      <2007년 2월 28일 광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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