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

2007.06.18 13:50

정찬열 조회 수:470 추천:24

                                
6월 세 번째 일요일은 미국의 아버지날이다.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기념하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어머니날을 5월 두 번째 일요일로 따로 정하고 있다.
  아버지날을 맞아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때는 아버지의 말씀 한 마디가 바로 법이었고, ‘에헴’하는 기침 한 번으로 온 가족이 긴장했다. 멀고 먼 옛날 얘기 같지만 생각해 보면 바로 엊그제 얘기다.
  그렇게 시퍼렀던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세상이 달라졌고, 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란다. 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가정을 부양할 수 없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됐다. 예전에는 돈을 벌어오고 관리하는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지만 요즘은 그 일을 어머니와 함께 하거나, 어머니의 역할이 더 큰 경우도 적지 않다. 부부가 함께 출퇴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아빠도 엄마와 함께 저녁을 준비한다. 전 같으면 가당치도 않는 풍경이 요즘엔 당연한 모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처럼 아버지의 위상이 약해진 원인을 사회적변화 에서 찾기도 하고, 가족 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달라짐으로써 겪게 되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버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라며 그 책임을 전적으로 아버지 개인에게 돌리기도 한다.
  아버지의 위상과 권위가 예전과 같지 않음은 자타가 인정하면서도 내세우는 이유는 다르다. 그렇지만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위상이 위축 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아버지의 위상을 결정하는 데 어머니가 절대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을 보면, 아이들이 난쟁이 아빠를 존경하도록 만들어 가는 엄마의 얘기가 나온다. 아버지의 권위를 어머니가 만들어 간다.  사소하고 작은 것 같은 엄마의 말 한마디, 그리고 자잘한 행동들이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소중함을 심어준다.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칫 우스워질 뻔한 난쟁이 아버지가 자식들 앞에 당당하게 된다. 아버지가 집안의 기둥으로 우뚝 서게 된다.
  집집마다 아버지가 차지해야 할 자리가 있다. 아버지가 앉아야 할 자리에 아버지가 바로 앉아야 가정이 바로 선다. 그런 집의 아이들이 비뚤어진 경우는 드물다.
  난쟁이 아내의 사려 깊은 생각하나로 집안에서 아버지로 바로 서고 아이들이 올바로 자라며 가정이 평화롭게 된다. 사소하고 작은 엄마의 생각하나가 이렇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위상이 낮아지는 현상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 통계를 보면 어머니날 선물은 자녀 열 명중 여덟 명이 하지만 아버지날엔 겨우 두 명이라고 한다. 카드 판매량도 어머니날은 1800만개인데 아버지날은 1000만개로 간신히 반을 넘는다. 통계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아버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가뜩이나 이민생활에 힘든 아버지들이 풀 죽어 살아간다. 영어에 주눅이 들고 일터에선 기를 펴지 못 한다. 가정에서도 어깨가 처지고 가슴을 움츠리며 기죽어 살아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한 둘이 아니다.
   아이들은 엄한 아버지가 아닌 친구 같은 아빠를 원한다. 아버지도 거기에 맞추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40대 이후 남성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한 세대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해 내야만 환영받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아버지는 혼란스럽다.
아버지날이다.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 이라는 말이 있다. 한 어머니의 작고 사소한 관심이 난장이 아빠를 당당한 아버지로 우뚝 서게 했듯이, 세상의 어머니들이 아버지의 처진 어깨를 어루만져 바로 세워주었으면 좋겠다. 이 아버지날에.    
     <2007년 6월 20일 광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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