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

2003.10.21 04:32

정어빙 조회 수:256 추천:33

슈거파인 뒷길을 덮어버린
메플츄리의 낙엽을 밟아 나서는 일은
언제나 고궁의 돌담길로 이어지네

사랑해본 일이 없어
울어본 일이 없다며
어지러운 발자국만 남기던 시절은
그 낙엽 부서지는 소리로 나를 맞네

돌담 옆
가로등이 꺼져있는 그 곳에는
남녀 한 쌍이 아직도 포옹을 풀지 않으며
나의 발자국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고궁 돌담에
오늘만은 제발 울리지 말아달라고
누군가가 커다랗게 낙서를 해놨네

나는
석양볕의 두께로
눈물에 대한 상념을 덮기 위해
슈거파인 뒷길에서 만난 미간(眉間)의 골을
더욱 더 밟고 있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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