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

2004.01.16 04:32

정어빙 조회 수:311 추천:30

나는 무한정 메모리 칩이 들어있는 만년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다
사진 기술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울기만 하면 다가오는
어머니 젖꼭지만 찍어 대었다

개구쟁이가 되어서는
찐빵, 붕어빵, 만두, 과자들만 찍어 대었고

학생이 되고 나서는
꿈을 찍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도시에서, 바다에서, 산에서

청년이 되고는
모든 메모리를 다 지워바리고
아름다운 여자들로 꽉 채워버렸다
만삭이 된 카메라 동작이 느려질 때까지

피골이 상접한 중년이 되고서야
여자들을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아낸
꿈, 찐빵, 어머니 젖꼭지와 다시 바꾼다
이제야 삶을 찍기 시작한 겄이다

환갑이 지나고
손자가 무릅 위에서 재롱을 부릴 때쯤에는
아무리 사진을 찍어 데도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만 찍힌다

그리고, 그리고
파랗게 녹슬어 있는 동판에 눌려
개미집을 짓고 있는 한줌의 흙을 마지막으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5 선인장 정어빙 2003.10.21 302
44 너의 뺨을 스친 바람은 정어빙 2003.11.14 305
43 16분 거리의 고향 길 정어빙 2004.01.16 306
» 디지털 카메라 정어빙 2004.01.16 311
41 짝 사랑 정어빙 2003.11.17 313
40 인연 정어빙 2003.11.17 315
39 옛 사람 나 찾아 정어빙 2012.11.15 331
38 가을 풍경 정어빙 2003.11.14 352
37 욕이 하고싶은 날 정어빙 2003.11.15 359
36 푸른 하늘에 가을이 피는 날 정어빙 2004.01.16 362
35 나보다 더 잘 뛰는 사람들 정어빙 2004.01.16 369
34 대신 울어주는 사람 -친구에게 - 정어빙 2003.11.14 386
33 잊을 수 없는 그림자 정어빙 2004.01.16 400
32 작아지는 사람 정어빙 2004.01.16 408
31 눈물이 나는 소리 정어빙 2004.01.16 412
30 싸리문 안 그림 정어빙 2003.10.21 425
29 기차길 옆 차(茶) 집 정어빙 2003.10.21 434
28 단풍이 물들때 정어빙 2012.11.15 446
27 보리 잔치 정어빙 2004.01.16 566
26 행복 정어빙 2004.02.25 627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11,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