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2004.06.01 13:49

오영근 조회 수:423 추천:25

시는
태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첫번째 시인입니다.

시는
대화입니다.
아무도 안 보이지만
누군가와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는
독백입니다.
잘못은 없어도
누군가에게
털어 놔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는
물질과 영혼의
이중창입니다.
화음이 안되면
유물과 유신의
싸움이 됩니다.

시는
자만의 깃발을
마구 흔들어 대는
바람입니다.
상처 뿐인 영광만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시는
해가 없이도 생기는
그림자입니다.
마음과 생각은
스스로 발산하고
스스로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시는
애써 자위하는
비명입니다.
스스로 시간의 때(오물)를
벗겨내는 오르가즘입니다.

시는
생활의 노래입니다.
오선지에 희극과 비극이
화음을 이루면
아름다운 여울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는
숨바꼭질입니다.
애써 찾아
시의 등뒤에 숨으면
아무도
찾지 못합니다.

시는
반짝이는 등댓불입니다.
좌표 잃고 헤메는
시인을 포근한 항구로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시는
항상 남는 장사입니다.
팔아도 팔아도
만용이라는 재고가
남기 때문입니다.

시는
우연과 필연의
소리없는 싸움입니다.
빵만 먹으면 산다는 돼지와
말씀도 먹어야 된다는 여우의
끝도 없는 싸움입니다.

시는
청빈의 가락입니다.
항아리에 쌀 한톨 없어도
지붕의 빗물이 새어도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꼬르락 환상곡입니다.

시는
눈 먼 장님입니다.
시심이란 지팡이만 짚으면
화원의 아름다운 꽃을
마음대로 구경합니다.

시는
말 못하는 벙어리입니다.
알아도 모른체
그러나 가끔
퐈-퐈-하는 파열음은
진실이 허위 사이로
새어 나오는 소리입니다.

시는
소리를 못듣는 귀머거리입니다.
싱글 싱글 웃으며
무엇엔가 홀린듯
행복에 겨운 것은
양심의 교향곡이
들려 오기 때문입니다.

시는
석공입니다.
허식으로 모난
방종을 깎아내고
엉덩이에 뿔이 난
만용을 두둘겨 패어
차곡 차곡
진리와 자유의 탑을
쌓아 올리는 석공입니다.

시는
농부입니다.
마음밭에
사랑의 씨앗을 뿌려
걸작의 결실을 거두는
시자천하지대본입니다.

시는
어부입니다.
마음바다속의 고기떼를 좇아
시상의 그믈을 던지면
어느새
만선의 기쁨이
뱃머리에 퍼집니다.

시는
광부입니다.
깊고 험준한
마음의 광맥을 찾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금강석을 캐내는
광부입니다.

시는
영원한 도망자입니다.
진실에 쫓겨 허둥대며
훌쩍 가식의 담을 넘지만
머므는 곳은 항상
천만다행의 피신처.

시는
기술자(엔지니어)입니다.
수많은 섬세한
마음의 부품을 제작조립하여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는
기술자입니다.

시는
장사꾼입니다.
낱말 하나하나는 헐값이지만
시심으로 엮어
글빨이 되기만 하면
부르는게 값입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장사꾼입니다.

시는
의과대학입니다.
온갗 영육의 병을
연구하고 고치는
의과대학입니다.

시는
문자 그대로 해부학자입니다.
소의 뿔을 칼로 자르고 헤치듯이
마음의 뼈와 근육을 연구하는
해부학자입니다.

시는
생리학자입니다.
한 길 속
마음의 심오한
기능과 역할을 요리하는
생리학자입니다.

시는
미생물학자입니다.
건강한 마음을 썩히는
온갗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미생물학자입니다.

시는
생화학자입니다.
살아있는 세포의 마음이
어떤 성분인지 분석하는
생화학자입니다.

시는
약리학자입니다.
오묘한 마음에
병 주고 약 주는
원리를 탐구하는
약리학자입니다.

시는
기생충학자입니다.
마음 한 구석에 기생하여
숙주를 괴롭히는
징그러운 벌레를 박멸하는
기생충학자입니다.

시는
병리학자입니다.
마음의 어디가
어떤 병균으로 곪는지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병리학자입니다.

시는
예방의학자입니다.
영육이 건강할 때
영육을 챙기는
유비무환을 가르치는
예방의학자입니다.

시는
영육의 병을 고치는
전문의사입니다.
동기로 진찰하고
시상으로 투약하고
문맥으로 완치하는
전문의사입니다.

시는
호흡입니다.
부족했던 어제의 것을 내쉬고
그 자리에
더 좋은 오늘의 것을
들여 마시는 호흡입니다.

시는
맥박입니다.
일분에 일흔번 뛰는 심장처럼
쿵더쿵 쿵더쿵
삶의 의미는
삶의 리듬에 맞춰
널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시는
배설입니다.
정력을 빼먹고 남은 찌꺼기는
어느새
한권의 시집이 되어
귀챦은 유산처럼
이리 딩굴고 저리 딩굽니다.

시는
방귀입니다.
삶과 죽음의 미화가
잘 소화되면 구수하여
성을 안내도 괜챦습니다.
힘차게 가죽피리를
불어댑니다.

시는
양자와 전자가 부디쳐
피어 오르는 불꽃입니다.
미친듯이
원자핵의 궤도를 탈출하면
포기 포기 쌓였던 전자의 한은
단숨에
황홀한 열반을 만끽합니다.
아! 비릿한 밤꽃 냄새.

시는
게걸스레 땡기는 식욕입니다.
생각이라면
마음이라면
아무 것이나 즐기는 식도락입니다.
꽉 찬 머리속은
어느새 텅 빈 공복감으로
허둥댑니다.

시는
부자와 거지가
함께 즐기는 말싸움입니다.
배부른 형이하학과
배고픈 형이상학이
서로 거품 물고 달려듭니다.
항상 무승부지만
바로 그 재미에 살아 갑니다.

시는
아랫배가 꼴려 오는 성욕입니다.
아름다운 것과
멋진 것은
끝내 들춰내어
박살내고야 마는
성폭력입니다.
사미인곡입니다.

시는
먹다 남은 주먹밥입니다.
쓰라린 과거도
고통스러운 현재도
불확실한 미래도
씹으면 씹을 수록
들쩍지근한 의미의 침이
혀 밑에 고이기 때문입니다.

시는
자위의 극치감입니다.
보잘 것 없는 의미라도
비벼 쥐어 짜노라면
남루한 애액으로
뭉클해지며
우주를 채우는 빅뱅 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천지창조의 기쁨처럼!

시는
가보 제1호 유산입니다.
아무리 초라하지만
자식들의 영혼에서 영혼으로
이어져 갈 조각품이기
때문입니다.

시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5 꿈과 현실 오영근 2009.05.10 452
264 구름의 고향 오영근 2006.08.12 447
263 잊지마의 역사 오영근 2009.04.19 436
262 응답없는 질문 오영근 2009.05.18 434
261 종착역 오영근 2006.08.13 434
» 시는 오영근 2004.06.01 423
259 비아그라의 항복 오영근 2007.08.02 422
258 생의 의미 오영근 2004.06.08 386
257 영원한 것 오영근 2006.01.28 376
256 분실 신고 오영근 2004.05.10 375
255 님이 오십니다 오영근 2009.01.29 371
254 첫 눈 오는 날 오영근 2006.11.23 361
253 하나님 친목회 오영근 2008.09.04 358
252 창조와 진화 오영근 2005.12.27 357
251 거울앞에서 오영근 2005.10.03 350
250 박테리아와 예수 오영근 2009.01.24 344
249 노-노(No)의 축배 오영근 2004.05.07 340
248 눈 길 오영근 2004.06.08 329
247 감사에서 사랑까지 오영근 2007.08.23 327
246 벌써 봄은 왔는가 오영근 2006.01.28 317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1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