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순애보

2007.05.14 16:43

오영근 조회 수:214 추천:18

시들한 꽃잎에
생명의 물을 주려다
소스라치게 놀랬어요.

황홀하고
진한 핑크빛 입술이
어쩌면
무디고 싸늘했던
내 가슴에 다가 와
불을 지피고
파르르 떨고 있군요.

아름다운 꽃은
늙으면 모두
염치없는 할미꽃으로
거듭나는 건가요?

소녀의 핑크빛 소망과
소년의 산넘어 무지개가
망령처럼
다시들 피어나도
괜챦은 건가요?

깜빡깜빡하는
건망증도 즐기고
파뿌리같은 은빛머리에
기름도 바르고
늙어 냄새나는 겨드랑이에
향수도 뿌립니다.

울려 퍼지는 팡파레의
이명소리를 들으며
말탄 할아버지 왕자와
어여쁜 할머니 공주는 아!
환상의 궁전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또 한 편의 순애보를
연출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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