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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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보리'를 소개합니다.

2006.08.03 11:28

최영숙 조회 수:425 추천:74

보리는 굶주려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윈
개의 이름입니다. 비가 오는 날, 우연히 만난 누렁이를
이 곳 마야 아이들이 보리라고 부르길래 그냥 저도 보리라고
불렀습니다. 참 정겨운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꾸리'라고 부른 것을 제가 잘못 알아 들은 것이지요. 꾸리는
그냥 개라는 뜻이라네요. 그렇게 보리는 보통 개입니다.
저는 그녀석이 들개인 줄 알고 먹이로 유인을 해서 잘 사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법 살이 오르고 머리통이 커지기 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이곳 센터 앞을 지나가는 후줄근한
옷차림의 남자분을 향해 반갑게 달려가는 보리를 보았습니다.
보리의 주인이라네요. 주인은 보리 말고도 세마리의 개가 더
있었습니다. 이제는 네 마리의 개가 저를 따라 다닙니다.
먹이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녀석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
전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한숨을 쉽니다.
잡아 먹지도 않는 개들을 네 마리씩 키우며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보리 주인. 그 주인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게 뻔한데 저는 그저 개밥만 먹이면서 개만 살찌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희에게도 음식 찌꺼기가 나오지 않아서 네 마리 모두에게 배불리 먹이지 못했습니다.
개들은 배가 부르지 않으면 이 곳을 떠나질 않습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먹이를 기다리느라고 웅크리고 누워 있는 녀석들 때문에 가끔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이곳은 지금 하루에 한차례씩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지나갑니다. 마당에 서있으면 더 가난한 과테말라의 산등성이가 마주 보이는 곳입니다.
저는 네 마리의 개들에게서 위로를 받습니다. 먹이를 주는 동안 녀석들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비굴했던 눈들이 점점 당당해지면서 이제는 제게 머리를 비벼대고 응석을 부리기도 합니다. 음식 찌꺼기를 준 것 밖에는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보리는 꾸리가 아니라 '보리'가 되었습니다. 보통 개가 아니라 보리라는 고유한 이름을 가진, 그래서 제게 의미를 주는 특별한 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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