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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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떼리"를 소개합니다.

2006.09.21 06:56

최영숙 조회 수:250 추천:62

떼리는 보리의 형제입니다.
보리가 저에게 와서 머리를 들이대고 몸을 비벼대며
어리광 부리는 것을 저만큼 떨어져서 바라보던 녀석입니다.
먹이를 들고 쫓아 가면 제가 다가간만큼 도망을 치지요.
도망을 치면서도 그냥 가는 법이 없습니다. 살기 띤 눈으로
절 향해 금방 공격이라도 할 듯이 하얗게 이를 드러냅니다.
그런다음 꼬리를 잔뜩 사린 채 불안한 눈빛으로
멀찌기에서 절 지켜봅니다.
먹이를 바닥에 내려 놓고 제가 얼마큼 뒷걸음을 쳐야만 다가섭니다.
그럴 때 "떼리"하고 이름을 부르면 제물에 놀라서 으르렁 이빨을
드러냅니다.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녀석의 이름을 부르고 음식을 바닥에 내려 놓고
물러섰습니다.
어느 날, 먹이를 내려놓는데 넝큼 달려와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 반가워서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자 떼리가 갑자기 으르렁 소리를 내며 공격 태세를 취했습니다.
"너어어, 이제 다시 오지 마!"
전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슬금 슬금  
눈치를 보더니 마지못한 듯이 물러갔습니다.
배 주위는 노르스름한 색인데 등판은 까만 개입니다.
사나워서 그런지 다리에도 흉터가 여럿 있고 눈매도 곱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불만으로 똘똘 뭉쳐서 인상이 별로 좋지않은 타입이지요. 개도 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저녁은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늦은 시간에 문단속을 하다가 추녀 밑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떼리를 보았습니다. 어쩌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놓친 모양이었어요. 떼리는 그대로 앉아서 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비를 피하지 못한 탓에 홈빡 젖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전 수건을 갖고 나와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이곳 개들은 각종 병균을 갖고 있어서 상당히 위험합니다.
떼리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저는 수건을 등판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이 녀석이 옆으로 쓰러지며 배를 드러냈습니다.
항복한다는 표시지요. 저는 이리저리 굴리며 맘껏 빗물을 닦아냈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비 그친 하늘을 가리키며 집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출입문 앞에 그대로 앉아 있는 녀석을 발견했습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더니 제게 꼬리를 흔들고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을 제 다리에다 슬그머니 갖다 대었지요. 저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어디를 가든 쫓아 다닙니다. 그곳에 그냥 있으라고 하면 거기에서 절 기다립니다. 얼마나 꼬리를 흔들어대는지 마치 허리가 동강이 날 듯합니다.
며칠 지나자 다른 식구들이 지나가도 달려가 머리를 비벼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경계하던 눈 빛도 변하고 털에서도 윤기가 납니다.
이제는 쓰다듬어 주는 손을 떼기라도 하면 앞발을 들고 아예
저를 툭툭 칩니다. 그러면 할수없이 손을 올려 놓기라도 해야지요.
꼬리도 당당하게 올리고 사람들이 지나가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제가 소리를 지르고 막대기를 들어도 발밑으로 파고 들어와
몸에 감깁니다.
모래 마당위에 또 하나의 위로가 지펴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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