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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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또비" 얘기를 안 할 수 없군요.

2006.11.02 12:02

최영숙 조회 수:251 추천:50

또 다른 강아지 얘기 입니다.
또비는 보리, 떼리와 함께 다니는 회색의 허약한 개입니다.
산너머 사르비아라는 마을에서 제 주인을
따라 이곳 공사장까지 쫓아오던 마르고 겁이 많은 녀석입니다.
사람 발자국 소리라도 나면 어느새 멀리 달아나 버려서 얼굴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녀석인데 밥을 주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꼬리를 잔뜩 사린 채 다가와 허겁지겁 먹고 부리나케 도망갑니다.
그나마도 혼자 찾아 올 때 이야기이지요.
다른 녀석들하고 몰려 오면 밥그릇 근처에도 못오고 말지요.
보리나 떼리가 으르렁 소리를 내며 밥 그릇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번번이 그러길래 하루는 저도 머리를 썼습니다.
보리와 떼리 밥을 먼저 주고 또비한테는 이름을 부르며 던져 주기
시작했습니다. 보리와 떼리가 그것마저도 빼앗으려고 달려 들면
얼른 보리, 떼리 이름을 부르며 작은 부스러기를 던져 줍니다.
물론 또비에게는 큰 덩어리를 던져 줍니다.
어느 날, 저는 또비의 목덜미에 작은 풍선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틱이지요. 얼마나 배불리 또비의 피를 먹어댔는지
틱의 배가 부풀어 올라서 엄지 손톱만한 크기로 자라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 들어서 잡아주고 싶었어요.
얼마나 쓰리고 가려울까, 하지만 가까이 가기만 하면 으르렁
소리를 내어서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는 또비가 보리와 떼리 틈바구니에서
당당하게 밥그릇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날, 또비 가까이에서 이름을 부르며 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얼굴은 예쁘지 않았어요. 보리는 마치 진도개 같이 잘 생겼거든요.
꼬리도 동그랗게 말려 올라간데다 눈 위에 생긴 긴 상처로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보리에 비하면 이 녀석은 입이 주욱 빠져 나온데다
귀도 처저 있지요, 보리의 노르스름한 털에 비하면 이건 상대도
되지 않아요.마치 색갈 빠진 회색 털실 같았어요.
목덜미의 틱은 여전히 맹꽁이 처럼 부풀어 있고요.
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맨손이었지만 그냥 둘 수 없었어요.
슬그머니 목덜미로 손을 가져갔습니다. 그르렁 소리를 내며 또비가 한 발 물러갔습니다. 저는 긴장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목덜미에 손을 대고 살살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녀석도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었어요. 더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틱의 몸뚱이를 잡고 탁 뽑았어요. 그리고 바닥에 놓고 밟았습니다. 벽에까지 또비의 피가 튀었습니다. 그런데 전 한마리 틱을 손에 잡는 순간에 또 다른 틱들이 그곳에 모여 있는 것을 손 끝에서 느꼈습니다. 다시한번 또비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가만히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번만 더, 또비야.
그러자 제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네요.
그날, 다섯 마리의 틱을 녀석의 목덜미에서 잡아냈습니다.
얼마나 오래 붙어 있었는지 그 자리의 피부가 검게 죽어 있었어요.
아직 제 밥그릇을 여전히 빼앗기지만 그래도 요리조리 옮겨 다니며
먹이를 챙기고 있습니다.
두 녀석이 으르렁 소리를 내면 대드는 법이 없이
밥그릇을 양보합니다. 그래서 저는 따로 슬그머니 또비의 입에다
고기덩이를 물려 주곤 합니다.
그러고 나자 또비의 털 색갈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몸통은 흰색과 회색이 골고루 섞인데다 무릎 아래로는 하얀 털이
제 색을 찾아 갔습니다. 비죽 나온 입도 가만히 보면 까만 색으로
반질거려서 어린 강아지처럼 순진해 보이는 구석이 있답니다.
먹을 때가 되면 산을 넘어와 저를 기다리느라고 앞발을 모으고
얌전히 앉아 있지요.
고 하얀 발을 드러 내놓고 아주 얌전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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