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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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끼에로는 대장입니다.

2006.11.14 13:14

최영숙 조회 수:408 추천:46

보리와 떼리, 또비 세 녀석들이 아침 일찍 찾아 온 날이면
다리가 온통 젖어 있습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이지요.
요즘에는 거의 밤마다 비가 내립니다. 녀석들이 넘어 온 산은
부옇게 안개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 젖은 발로 펄쩍 뛰어
오르는 바람에 옷도 여러 번 더러워졌지만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공사장에 일찍부터 나와 일하던 인부들이
소리를 내고 웃지요.
그런 어느 날, 슬그머니 등장한 누렁이 한 마리가 있었어요.
퉁퉁하게 살이 오른 이 녀석은 처음부터 만만치가 않았어요.
제가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치는 기색이 없이, 인상을 팍 쓰고
언짢다는 듯이 슬렁거리며 몸을 일으킵니다.
콧등에 가로로 상처가 나 있고 늘어진 양쪽 귀는 얼마나 물어 뜯겼는지
첨에는 파리가 앉아있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누렁이를 모른 척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 녀석들이 모두 누렁이에게 밥그릇을 양보하네요.
이 누렁이가 응! 소리만 내도 세 녀석들이 얼른 밥그릇을 놓고 피합니다. 어쩔 수 없이 끼에로라는 누렁이를 위해 밥그릇을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네 개의 밥그릇에 골고루 먹이를 나누어 주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명이 들려 왔어요.
세상에, 끼에로가 떼리의 한 쪽 볼을 물어뜯고 있잖아요.
금방 떼리의 얼굴에 피가 흘렀습니다. 전 마침 바닥에 떨어져 있는
철근 도막을 집어 들고 쫓아갔어요. 그러다가 멈칫 서 버렸어요.
아니, 겁쟁이 또비가 떼리 편을 들고 끼에로에게 달려들어서 녀석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네요. 싸움이 진정 된 건 순전히 또비의 공로였어요. 그 순간을 틈타 횡재를 한 건 물론 보리였지요.  
떼리는 분해서 계속 으르렁거립니다. 둘 사이에는 긴장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서로 꼬리를 잔뜩 세우고 이를 드러내고 있네요.
저는 철근 도막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야단을 쳤습니다.
“형제끼리 무슨 짓이야! 먹는 거 가지고 이렇게 또 싸울꺼야?”
그때서야 두 마리는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 일 후에는 제법 잘 지냈어요. 밤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고 밤마다 부엉이 우는 소리에 짖어대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또 하나 괴로운 일이지요. 저도 잠을 설치지만
다른 식구들도 부석한 얼굴입니다.
하지만 네 마리가 마당에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있으니 참 문제입니다.
결국, 30명 학생들이 같이 먹고 자는 이곳에서 안전을 이유로
스태프 미팅에서 결정이 내렸습니다. 절대로 이곳에 못 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주지 말라는 거죠. 저는 결정을
받아들였습니다. 학생들이 물리면 큰일이지요.
전 사실 그날 밤에 잠을 못 잤어요. 눈치 없는 녀석들은 별것도 아닌
소리에도 어찌나 짖어 대는지...
저 불쌍한 피조물들은 왜 지으셨는지, 저는 밤새도록 꿍얼거리며 불평했어요.끝내 베개에다 얼굴을 파묻고 울었습니다. 남편이 혀를 차댑니다.
다음 날, 저는 비상으로 사다 놓은 드라이 후드로 네 녀석들에게
마지막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아주 좋아하는 별식이거든요.
그리고 다른 스태프에게 부탁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나무토막 하나만
들고 나가도 지레 도망가는 녀석들이니까요. 그러자 순간에 네 마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주 멀리 갔는지 꼬리도 보이지 않더군요.
며칠을 그러니까 일주일이 지나도 오질 않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르비아 마을이 보이는 산등성이를 바라봅니다.
오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녀석들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먼발치 오솔길 나무 밑에서 끼에로가  절 바라보고 서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아마 늘 그 자리에 와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저는 그동안 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던 드라이 후드를 봉투째 꺼내 들고
달려갔습니다.
늘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던 녀석이 이제 귀를 날리며 달려옵니다.
오솔길에서 만났을 때 끼에로가 슬며시 몸통을 제 다리에 갖다 댔습니다. 그러고 한참을 가만히 있습니다. 저는 머리통을 툭툭 쥐어박았습니다.
“너 혼자 왔어? 못 됐네”
저는 끼에로를 데리고 사르비아 마을길로 뛰었습니다.
끼에로는 신이 나서 달립니다. 와중에도 제 손에 들린 봉투를 열심히
올려다봅니다. 잠시 달리다가 먹이를 조금 던져 줍니다.
“헤이, 끼에로, 너 네 집에까지 가는 거다, 응?”
하지만 녀석은 앞장서질 않습니다. 우리는 산이 흘러내린 곳에 있는 작은 시내를 건넜습니다. 오솔길 양 옆으로는 억새가 제 키보다 더 크네요. 야트막한 철조망도 지났어요. 그리고는 노란 야생화가 야단스럽게 피어있는 언덕길을 올라갔습니다. 왼쪽은 온통 옥수수 밭이었습니다.
언덕을 올라서자 사르비아 마을이 아스름하게 보였습니다.
우리 마당에서는 산하나만 넘으면 그 마을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나지막한 언덕을 두개나 더 넘어야 하네요. 해는 어스름해지고 슬며시 겁이 났어요. 저는 남아있는 밥을 모두 길 위에 쏟았습니다.
“이거 먹고 집에 가, 빠빠이...”
끼에로는 먹이를 향해 코를 박아대고 있습니다.
저는 서둘러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끼에로가 또 옆에 와 있네요. 이 욕심쟁이가 밥을 포기하고 올 수는 없는 일이지요. 제 손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자꾸 따라 옵니다. 저는 할 수없이 길가에서 썩은 나무토막을 집었습니다. 녀석과 중간 지점에 조심스럽게 던졌습니다. 주춤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어요. 그러다가 제가 움직이면 다시 움직입니다. 꼭 그만큼 간격을 두고 따라 오네요. 돌멩이도 던졌습니다. 여전히 쫓아옵니다. 그러다가 센터 쪽으로 가까이 오니까 한 자리에 앉아서 꼼짝하지 않고 있어요. 해가 기울자 끼에로가 검은 형체로만 보이네요. 오솔길에 마냥 앉아 있어요. 저도 마당 끝에 마냥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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