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0
전체:
43,635

이달의 작가

미안한 마음에

2006.11.26 14:29

이용우 조회 수:512 추천:46

최영숙 선생님,
요즘 머리도 지끈거리고 속도 부글거려서 고것 식혀보려고 오랫만에 문학서재를 들어왔습니다.
그래 두어 집 다니며 최영숙 선생님 보리,떼리,끼에로에 푸른하늘 은하수까지 읽다가 보니 쬠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열형 라디오에서 줏어 올린 시에서 보니 나도 축복을 곱빼기로 받은 인간이 이리 게을러서 되것능가 그거지요.
그래서 요 아래에 우리집 풍경 한자락 끄적였습니다.
방선생님께 안부 전해주시고 안녕하시길...

<주의사항>
아래 글은 최영숙 선생님과 서울 추위에 떨고 있을 나마스테, 그리고 라디오 시를 올린 성열형께만 권한을 드립니다. 그 외에 무단으로 청독하시는 분들께는 저작권법령에 의해 10불의 벌과금을 추징합니다. 항의와 불만성 리풀은 일체 받지 않사오니 이 점 해량 있으시기 바람니다.

`
`
`
`
`
`
`
`
`
`
신중히 판단하십시요
`
`
`
`
`
`
`
`
`
`
`
`
`
`
`
`
`
자~아 그럼...
`
`
`
`
`
`
`
`
`
`
`
`
`
`
`
`
`

<숙제>

“아빠, 칼럼버스가 올 때 스페인 퀸 네임이 뭐야?”
“뭐라구?”
후식으로 망고 껍질을 벗기던 나는 과도를 쥔 체로 식탁에 펼쳐진 그린이의 과제물을 넘겨다 봤다. 타이틀이 <American History Homework For 4th Grade> 였다. ‘홈웤’ 이라는 글자를 보자 얼굴부터 달아 올랐다. 이제부터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하며 아이의 숙제를 해결하려면 진땀깨나 흘려야 한다. 오늘 숙제는 미국의 역사이다.  그래도 첫 문제가 아는 것이어서 우선은 어깨를 폈다. 한국말과 영어가 뒤섞인 그린이의 어눌한 질문 1번은 ‘컬럼버스가 미국대륙을 발견할 당시의 스페인 여왕 이름은 무엇인가’ 였다.  
“일 번 답은 이사벨라 여왕이야. 퀸 이사벨라.”
“이사벨라? 유 슈얼?”
그린이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정말이야? 하며 곁눈질로 흘긴다. 1, 2 학년 때까지 만도 아빠 말이라면 두 번 되묻지 않던 아이다. 그런데 3 학년을 거쳐 지난 9월에 4학년이 되면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불신의 눈길을 보내온다. 자존심 상한다. 요 강아지가, 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톡, 튀어나오려 한다.  
“그래, 이사벨라 여왕이야.”
나는 착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번만 더 의심하면 화를 낼 거 라는 메시지를 째린 눈에 실어 보내며 울컥 하는 열기를 내려눌렀다.
“오케이, 넥스트!”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시원하게 다음 문제로 넘어가잔다. 아홉 해 넘게 아빠손에 끌려다니더니 어느새 강아지도 구렁이가 다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심쩍은 아빠의 실력을 검증한다. 내 표정에 담긴 진실성의 척도를 제 나름의 방법으로 확인 해 보고 넘어가는 것이다. 아빠의 분위기가 저런 정도라면 백과사전이나 영한사전을 뒤적거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신뢰를 하겠다는 말이다. 실소가 터지려 한다. 그래도 웃으면 않된다. 다음 문제가 앞의 것처럼 쉽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넥스트는 콜드월을 익스플레인 하는 거야. 씨이,오,엘,디이,더블유,에이,아알. 콜드월, 그게 뭐야?”
스파게티처럼 엉기는 발음을 못알아 들어 ‘다시 말해봐’ ‘스펠링이 뭐야’ 하고 두 번 세 번 묻는 것을 아는 아이가 이젠 으례 또박또박 스펠링을 불러준다. 말은 입으로 하며 그린이의 눈은 내 얼굴에 껌처럼 달라 붙는다. 콜드월(cold war)이라니, 남북전쟁이나 인디언전쟁은 알아도 ‘차가운 전쟁’ 이란 말은 처음 듣는다. 시민권 시험에도 없는 문제다. 속은 찔끔했지만 겉은 태연으로 덮었다. 그러나 영악한 강아지는 냄새를 맡는다. 당장 내놓지 못한다는 건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식은 아는 것을 지체없이 말하는 것이다.
“너는 콜드 월이 뭐라고 생각해?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을 것 아니야. 숙제는 네 힘으로 해야지 답을 전부 아빠에게 물으면 어떻게 해.”
궁지에 빠지면 써먹는 평범한 방법으로 자빠지는 체면을 붙잡는다. 그린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짜증난 표정을 한다. 빨리 숙제를 끝내고 디즈니체널을 봐야하는데 아빠의 무지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빼앗긴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미국의 교육방법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실증을 느끼지 않고 즐거움을 갖게 하기 위해 3학년까지는 재미 있는 게임과 놀고 즐기는 교육을 지향한다. 토, 일요일에도 숙제가 없다. 그러나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 서서히 강도높은 교육을 시작한다.
- 4학년부터는 한국에서 교육받은 부모들은 아이들 숙제 봐주기도 힘들대요. 과제물이 많아지고 수준도 훨씬 높아진다고 하더라구요. -
언젠가 PTA미팅(학부모회의)에서 그린이 클레스의 엄마들이 그렇게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그랬다. 제 2 외국어로 선택한 한글과 수학까지는 그런대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역사, 과학 같은 것은 모르는 것이 태반이다. 영한사전과 영영사전을 함께 펼쳐놓고 대조를 해가며 답을 찾지만 그럴 때마다 머리에 쥐가 난다.  
“우선 망고나 먹고 딕셔너리를 보자.”
“노, 딕셔너리 먼저 볼래.”
“먼저 먹어.”
“싫어.”
“먹어!”
“.....”
억압에 눌려 어쩔 수 없이 포크를 잡는 강아지의 입이 한 주먹이나 튀어 나왔다. 찡그린 눈자위가 불그레 하다. 이제 망고 한 쪽이 입에 들어감과 동시에 분함과 설움의 눈물 방울이 쪼로록 볼 위로 흐를 것이다. 시간 맞춰 시청하는 디즈니체널을 못보게 된 아쉬움에 눈물은 더욱 방울이 커질테지. 그래도 제 손으로 사전을 뒤지고, 제 기억과 머리로 숙제를 해결하도록 버릇을 들여야 미래가 아니, 노후가 편하다.
그린이의 표정을 곁눈질하며 나도 망고 한 쪽을 집는다. 달다. 입이 달면 설움이 조금 씻긴다. 힐끗 보니 망고를 먹는 강아지의 볼따구가 살짝 균형을 잡는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3 뵌것 같아요. 오연희 2006.12.23 337
172 성탄절의 축복을- 박영호 2006.12.18 233
171 자랑스런 엘 떼리 최영숙 2006.12.10 297
170 [re]이상한 국수 최영숙 2006.12.08 449
169 자장면 곱배기 나마스테 2006.12.07 466
168 회람 이용우 2006.12.06 214
» 미안한 마음에 이용우 2006.11.26 512
166 끼에로는 대장입니다. 최영숙 2006.11.14 408
165 [re] 늦국화 배달 최영숙 2006.11.09 241
164 늦국화 배달 박영호 2006.11.08 315
163 두울 선생님 최영숙 2006.11.06 243
162 마야 템플입니다. file 최영숙 2006.11.03 289
161 "또비" 얘기를 안 할 수 없군요. 최영숙 2006.11.02 251
160 [re] 하늘 호수 최영숙 2006.10.11 280
159 하늘 호수 나마스테 2006.10.10 297
158 "떼리"를 소개합니다. 최영숙 2006.09.21 250
157 양해 이성열 2006.09.06 267
156 고향(2) 박영호 2006.08.22 312
155 '보리'를 소개합니다. 최영숙 2006.08.03 425
154 꼬미딴, 치아파스, 멕시코 최영숙 2006.07.20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