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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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불안에서 북춤으로,

2008.05.17 13:47

최영숙 조회 수:373 추천:65

오늘, 5월 18일, 워싱턴에 있는 한국 무용단에서
선교 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이 있어서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온 뒤로 한국 무용단의
공연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학생들이 문화 축제
행사로 단기간에
습득한 실력으로 발표하는 것을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북춤을 출 때였습니다.
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쌍북채를 들고 북의 복판을
두드리다가 궁편을 타다닥 치고 올라가는 순간부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북소리는 점점 커지고 빨라졌습니다.
제 가슴 속에서는 마치 빨간 햇덩어리가
용트림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곳에 가기 전까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불안에 대해서,
그리고 연이어 쓰촨성 지진을 이야기하며,
그리고 다시 그가 말한 믿음에 대해 얘기하다가,
거기에 연관하여
세기말을 사는 우리의 우울함에 대해서 논하다가,
파킹랏에 차를 세워 놓고도 고민 많았던 사무엘과
아브라함을 생각했는데....
그 북소리를 듣는 순간 저는 왜 그랬을까요, 눈물이 났어요.
그 단순한 박자와 리듬이, 하루 종일 고민했던
일들을 향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두들겨
대기 시작했어요.
북소리처럼 명료하고 단순하고,
그냥 신이 오르는 그런 시간 보낸 지가 언제였는지.....
아니면 모르겠어요, 두레패에 끼어 태평소를 불던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저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한 것인지도....
나중에는 그 분들이  달아오른 얼굴로
신명나게 북을 두드려댔습니다.  
저 분들처럼 신명나게 글을 써봤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스스로가 즐거워 저절로 어깨에 흥이 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렇게 쓰는 거라고, 가슴에서는 뭉클 뭉클 햇덩어리가
치밀어 오르고 어깨는 신명으로 들썩거리고
얼굴은 달아오르고,
이제 관객은 잊었습니다. 저 좋아서 두들깁니다.
몸은 북소리와 하나 되고
쌍북채는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하늘로 치솟던 북채가 힘을 다해 내려오는 듯
하다가 공중에서 한 장단을 먹으며 떨어지는
여유와 멋까지.
그런 거라고 고개를 계속 끄덕였습니다.
갑자기 키에르케고르가 멀어지고 사무엘이 떠나고
아브라함이 짐을 쌉니다.
그리고 마침표로 징이 한 번 울었습니다.
사위는 숨죽인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징소리 한 번이 모든 것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래야 될 것 같았습니다.
글쓰기는 징소리처럼 여운을 길게 남기며 끝내야겠지요.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어거스틴 애비뉴에 돌아와 짐을 풀고
그동안 비어있던 방의 먼지를 털어내고
한달여를 앓았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떠나있던 시간들이 망각 속으로 뭉텅 빠져 들어간
느낌이네요.
그리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잊지 않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습니다.
강철심장이 소원이었던 치아파스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게 되었던 것도
여러분들의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리며
북춤에서 배운 교훈을 명심하겠습니다.
건강하시길....."

최영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