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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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쓰는 여자의 남편

2010.01.24 21:46

최영숙 조회 수:629 추천:105

<이 서재 주인의 남편되는 사람이 올리는 글 입니다.>

나는 잠결에 아내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머리를 들어 시계를 보니 4시가 조금 넘은 새벽이었다.
잠꼬대가 심하군, 하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아내는 잠시 자는 듯 하더니 다시 더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고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 하였다.
잠을 포기한 나는 아내에게 왜 그렇게 웃었는 지 이유를 물었다.
꿈을 꾸었다고 한다.

아내와 내가 문학 캠프에 참석 하였다.
캠프 순서에 “심금식”시인이 쓴 시를 내가 낭송을 하게 되었단다.
그 시인의 소개란에는 “저는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라는 글이 적혀 있었고 어깨까지 내려온 생 단발머리에 청색 진 남방을 입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는 말이었다.

“아는 사람이야?”
내 물음에 아내는 간단하게 아니, 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름하고 사진까지 나와?”
“꿈이라니까....”

다시 꿈 이야기이다.

내가 시를 받아들고 감정을 실어가며 낭송을 시작 하였다.
“오늘 같은 날에는 눈물이 나네....”
잠시 시낭송이 멈춰져서 다음 소절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드르르릉 드르릉 드르릉 드릉...”
시 낭송이 이상한 소리로 들려와 아내는 깜짝 놀라 잠을 깨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나의 코골이였다.

아내는 웃느라고 제대로 얘기 전달도 못하더니 나중에는 내게 요청을 했다.
첫 소절을 한 번 낭송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잠이 덜 깨었지만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나머지, 가르쳐 준대로 웅얼웅얼 낭송을 했다.

듣고 나더니, 내가 꿈속에서 읊던 시의 박자와 음높이가 코골이 소리와 딱 맞는다고 다시 웃어댔다.
그러면서 나머지 소절을 마쳐보라는 요구를 해왔다.
그 또한 피할 수 없음을 잘 아는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창작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같은 날에는 눈물이 나네
와사비를 먹었나 눈물이 나네
양파를 너무 깠나 눈물이 나네
....그냥 서있어도 눈물이 나네.”

코골이도 아름다운 시낭송으로 들리는 그 적응력.....하지만 꿈속에서도 글속에 빠져 살다보니 심금식이란 생면부지의 여인도 나타나고. 글쓰기가 힘들구나... 생각하다가 그 꿈을 음미해보니 나도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그만 웃고 말았다.

내친 김에 잠자다 당한 또 다른 이야기를 공개 하고자 한다.

어느 날 곤하게 잠을 자고 있는데 아내가 내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일하는 시간이 길어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본 탓에 이러는가 보다하고 측은한 맘으로 참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쓰다듬는 게 아니라 손가락 끝에 힘을 주고 꾹꾹 눌러대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강도가 심해져서 이맛전을 아프게 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까지도 참고 있었다. 아내의 손가락이 내 콧속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니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잠결이지만 너무 황당하여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내가 눈을 뜨더니 오히려 더 놀란 얼굴이었다.
“아! 꿈이었어? 아휴! 다행이다! 무서워서 죽을 뻔 했어...”
그러더니 쿨적거리고 울기까지 했다.

아내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혼자서 멀리 가게 되었다.
돌아와야 하는 길에, 밤은 깊어지고 사방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다가, 그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도와 줄 사람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깜깜한 어둠 속에 공중전화 부스가 보였다.

아내는 내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빨리 데리러 와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전화기의 번호판을 누르는 순간 전화번호가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다가 어떻게 번호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지막 번호판이 고장이 나서, 누르면 튀어 나오지를 않고 눌러진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아내는 조바심이 나서 올라오지 않는 그 마지막 번호판과 씨름을 하던 중에 누가 손을 탁 치는 바람에 잠을 깨었단다.

아무리 눌러도 신호음이 떨어지겠는가...
마지막 번호판이 나의 콧속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자다가 벼락 맞는 일이 부지기수이지만, 아무려나 아내가 푹 자고 일어나기만을 바란다.
꿈 없이 깊은 잠을 자보는 게 소원이라고 아내가 말해도, 그 꿈들이 어쩌면 글쓰기의 자양분은 아닐지,
위로를 해본다.

http://blog.daum.net/lettersfrom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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