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적 /김지하

2008.01.08 09:48

서용덕 조회 수:491 추천:40

시인 김지하 (金之河)  (1941~ 현재   )

1941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 졸업.
1964년 한일 굴욕외교 반대투쟁 으로 첫 구속 4개월 수감.
1969년 <황톳길> 등 5편의 시를 (시인)지에 발표.
1970년 오적 발표.(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하여 백일만에 석방)
1972년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 보통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수로 감형 석방.
1974년 <동아일보>에 옥중기를 발표하여 구속.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에서 ‘로터스’상 수상.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
1981년 세계시인대회에서 위대한 신인상, 부르노 크라이스키상 수상.
1980년 대 이후 ‘생명사상’과 전통 민중사상을 운동을 하였다.
1998년 ‘율려학회’를 발족하여 우리 민족의  고대사상과 전통문화를 고수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 <별밭을 우러르며> <이 가문날의 비구름>
            <꽃과 그늘> <중심의 괴로움> <화개>   산문집,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옹치격>  <동학이야기>  <생명>
            <생명과 가치>  < 대설,남> <율려란 무엇인가>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 옛가야에서 보내는 겨울편지>

* 의도필부도(意到筆不到)= ‘마음은 갔지만 붓은 아직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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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오적

김지하 시인이 언급한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일컫는데, 모두 개 견(犬)자가 들어간 한자를 이용해 시인이 조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한자의 경우 웹 문서에서 한자 지원이 되지 않는 점 양해바랍니다. 원문은 결정본 시전집 「오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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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 五賊 >

時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세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몰수몰
뭐든 자꾸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
옛날도 먼 옛날 상당 초사흗날 백두산 아래 나라 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이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롯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 시절에도 사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량상(賢君良相)인들 세살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녁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쪽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떠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獪의猿, 국獪의猿고礏 功無원,장성(長猩), 장차관  이라 이름하는.
간떵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 질기기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폭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 안에는 큰 황소불알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을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석 놈이 모여
십 년 전 니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  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이느니 황금이라,
황금 만 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 자 크레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듯 구름은 둥실
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아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秘傳)의 신기를 자랑해쌌는다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 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 해 입고 돈으로 모자 해 쓰고 돈으로 구두 해 신고
돈으로 장갑 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찌, 금단추, 금 넥타이핀, 금 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ㅇ뎅이,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뿅뿅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 바라 저 재벌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고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 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 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 파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 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여서 첩 삼아 밤낮으로 직신작신 새끼 까기 여념 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  쥔 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띔에 정보 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딸 샀다가
길 뚫리면 한몫 잡고
千원 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 임금은 언재나 외상 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 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 술수 빰치겟다

또 한 놈이 나온다.
국獪의猿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끊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 공약 휘휘 감고
혁명 공약 모자 쓰고 혁명 공약 배지 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 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이농(離農)으로!
건설이닷,  모든집은     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鄭仁宿을 철두철미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표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령들아, 표도둑질 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부압사 (兵不 壓 詐 ), 치자즉(治者即) 도자(盜者)요 공약(公約)
즉 공약이니 우매(遇昧) 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골프 좀 쳐야겄다.

셋째 놈이 나온다.
국獪의猿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신, 독사같은 모난 눈,  푸르족족 암한살,
콱 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 좀 봐라 하나 더 붙었다
이쪽 보고 히뜩히뜩 저쪽 보고 헤끗헤끗,
피등피등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 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 돼, 안 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 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 먹고
내가 언재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료정(料亭) 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  놈이 나온다.
키크기는 팔대장성, 제 밑에 졸개행열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에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탁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 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 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 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 먹고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 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 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떠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자 주어패어 영창에 집어넣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 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 마누라 화냥끼 노리게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어수(雲雨魚水) 공방전(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괴몰(神出鬼沒)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  나온다.
허옇게 백태 끼어 삐적 삐적 술지게미 가득 고여 삐져 나와
추접무비(無比)  눈꼽 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 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 팔려도 증산이닷,
아사(餓死)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 놓아 가미사마 배일하잣!
째진 북소리 째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 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 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 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 듣고 뒤쫓아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
자네 핸디 몇이더라?
오적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 추리것다
똥줄 빠지게 내빼버렸으니 요즘엔 제사 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것다
이리 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 몰씬몰씬 무르 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을 잡아들여라
추상 같은 어명이 꽝
청천하늘에 날벼락 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 내려 쏟아져 퍼부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 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 사돈네 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 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벌리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흟고 저놈 굴비 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 뜯고 물어뜯고 엎어메치고 뒤집어 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 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꺽고 깍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 지지고 노들강변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큰 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능어놓고 어흥—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된민중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이놈
네 이놈이 오적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바다이 다 합쳐서
오적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 합쳐서
풍속사범 오적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검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욱 좋다.
거지, 문등이, 사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 합쳐서
우범 오적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 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만은 아니어라우.

난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밥 못 먹어 돈 벌라고 서울 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벅은 그 죄밖에 없습넨다.
이리 바짝 저리 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 비행기 태워 공중잡이 고추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 건
아니랑께롱
한 마디뿐이것다
포도대장 할 수 없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 봐라
五賊 은 무엇이며 어디 잇나 말만 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 말 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이라 하는 것은 재벌, 국獪의猿, 고礏 功無원,장성(長猩), 장차관,
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소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러믄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라지우.

옳다 됐다 내 새끼야  그 말을 진작 하지
포도대장 하도 좋아 제 무릎을 탁 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버렸던지 무릅뼈가 파싹 깨저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死는 私요 功은 公이라
네몸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것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완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서라
안 비키면 오적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 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홀랑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사구나
우뢰 같은 저 함성 범 같은 늠름 기상 이완대장 재래(李浣大將 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은 듣거라
너희 한같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 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 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오니 오라를 받으렷다.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둘러보니
눈 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 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 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 가득
몇십 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 원짜리 정원수(庭園樹) 백만 원짜리 외국 개
천만 원짜리 수석비석 (瘦石肥石), 천만 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 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 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 식모 두고 경제학박사 회계 두고 림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영학박사 집사 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청치학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 속에 에아컨 넣고
새들 행여 추울세라 새장 속에 히터 넣고,
개밥 행여 상할 세라 개집속에 낸장고 넣고
대리석 양옥(洋屋) 위에 조선기와 살짝 얹어
기둥은 코린트式 대들보는 이오니아
선자추녀 쇠로 치고 굽도리 샷슈 내외분합 그라스룸 石造벽에 갈포 발라
앞뒷퇴 널찍 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어 알 메달아 부연 얹고
기와 위에 이층 올려 이층 위에 옥상 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風  본따놓고 목용탕은 토이기風  돼지우리 偉風당당
집 밑에다 연못 파고 연못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듯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철함롱, 봉 그린 용장, 용 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층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 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꺼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 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_인물(山水花鳥猢__人物 )
팔천팔백팔십 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와기,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이태리화기,
호피담요 씨운 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 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 카메라
촛불 켠 샨들리에, 피마주 기름 스텐라이트,
간접직접 직사곡사 천정 바닥 벽조명이 휘황캄캄 호화율율.

여편네들 치장 보니, 청옥 마리핀, 백옥 구두장식, 황금 부로취,
백금이빨, 밀화 귓구멍마게, 호박 밑구멍마게, 산호 똥구멍마게, 루비배꼽마게
금파단추, 진주 귀걸이, 야광주 코걸이, 자수정 목걸이, 싸싸이어 팔찌, 에메랄드 발찌, 다이야몬드 허리띠, 터기石 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 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 (無雙)이라!

왼갓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구멍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발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소고기 돈까스, 뙈지고기 비후까스,
피 안 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워서 금딱지로 싸놓은것,

바나나 식혜, 파인애플 화채, 무화과 꽃닢 설탕 버무림, 롱가리트 유과,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진빔, 선악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빼주, 보드카람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 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올랠 올짜로다
저게 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다 양심(良心)이란 두 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이리속으로 자탄지조하는 터에
한 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맛보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 두잔 헐레벌떡 석잔 넉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처먹었던지 이빨이 확 닳아 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네 부딪쳐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암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 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所信)껏 그 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나이다.
이 말 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 묶어 세운 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노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 (客愁)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 찾고 쪼각달 희게 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 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 쌋는데 어쩔꺼나
콩알 같은 꾀수 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 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 살다 서울 와 돈 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 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 사정 누가 있어 바로잡나
잘 가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 가거라
꾀수는 그 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 집 솟을 대문,
바로 그 곁에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 하매,
포도대장 이 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 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 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 집 속에서 내내 잘 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인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 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길이 전해오것다.

* 거죽은 같은 민족인데 바탕은 일제의 앞잡이들이고,
입으로는 민족의 앞날을 떠득고 백성을 염려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부정과 반역을 일삼던 교활하고 사악한 원숭이들인
재벌, 국희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5적으로 규정하여
이들의 본 모습을 신랄한 풍자시로 꼬집고 비웃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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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감상을 조금 적자면..
이 시는 1970년 5월 <사상계>를 통해 '담시(譚詩)'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발표, 파문과 물의를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오적(五賊)>은 일제 통치의 암흑기 속에서 쇠잔하고 소실되어 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졌다.

그러한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문학의 새로운 진로에 큰 빛을 던져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때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 못지 않게 양식과 가락에 대해서도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담시란,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는 짧은' 길이 속에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기습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 시'의 독특한 장르이다.
이러한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내용의 요청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그 정당성을 지닌다.

여기서 '오적(五賊)'이라고 못박은 사람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은 한마디로 말해서 일제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라 할 수 있다.

이 '오적'을 통해서 의도한 바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근대화된 질서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일제 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하고,
그런 후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통치 이념의 구현을 해야 한다는 방향 제시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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