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하는 사람들 (한국일보 정숙희 기자)

2008.01.22 18:13

서용덕 조회 수:426 추천:35

출처;미주한국일보 L.A판 등단하는 사람들                                  입력일자:2007-05-02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 부장 오랜만에 문화부로 돌아오니 몇년새 달라진 것이 있다. ‘작가’들이 굉장히 많아진 것이다. 웬 작가가  그리도 많은지 너도나도 시인, 수필가, 소설가라고 명함을 내민다. 책도 많이들 내고 출판기념회도 잦아서 문화면에는 신간소개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과거보다 삶이 윤택해지고 노년이 건강해지면서 생긴 현상인 것 같다. 사람은 먹고 살 걱정이 없어지면 문화와 예술활동에 눈을 돌리게 된다. 요즘 한인사회에 부쩍 많아진 작가들이 대개 중년과 노년층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제 사는 여유가 생기니 남들 보기에 멋있는, 또한 자신도 인생을 보람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작가 직함을 갖고 싶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문인이 되는 이유는 문학이 여러 예술분야 중 가장 빨리 쉽게 ‘작가’ 직함을 달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 미술, 무용 같은 분야에서 작가가 되려면 오랜 시간 갈고 닦은 훈련과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문학은 그 도구가 글이므로 한글을 깨친 사람이면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학교실을 다니면서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고, 열심히 습작활동을 하여 문단에 등단한다. 이때 숨어있던 재능을 발견하여 좋은 작품을 내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문학소녀의 꿈을 이루는 아름다운 작가들도 탄생한다. 그런데 요즘 등단하는 작가들 중 상당수는 글쓰기에 매진하기보다 문단에 돌아다니며 말 만들고 편 가르고 싸우기 바쁜 것 같다. 비슷비슷한 문학단체가 자꾸 생기고, 단체간 불화도 심하며, 신문에 한번이라도 더 나오려는 경쟁이 치열해서 서로 씹고 비방하기를 쉬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걸 하고 싶어서 작가가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작가의 대량생산은 한국서도 고질적 병폐라고 한다. 작가가 많아지는 이유는 등단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등단하는 방법은 세가지로,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 문학잡지의 신인상이나 추천제, 단행본 출판 등이 그것이다. 이중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 일간지 문예공모 당선이고, 문제가 되는 것이 문학잡지들의 경우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던 문학지들이 지금은 250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재정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에 변칙적인 경영을 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등단 장사’다. 매호 다수의 신인을 등단시키고 그들에게 책을 판매하여 잡지를 꾸려가는 것이다. 허영에 부푼 아마추어 문인, 시인 소설가라는 명칭을 사교적 장식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며 미주문단에는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한국 잡지사에 줄을 대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등단한 사람은 잡지구독자를 많이 모아야하기 때문에 전국각지의 친지에게 민폐를 끼치며 구독을 요구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잡지사들은 각종 이름의 ‘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는데 이때 돈을 기부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고, ‘편집위원’ 직함마저 돈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필력 1년도 안 되는 사람이 갑자기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이런 문인들의 수준이 어떻겠는가? 철자법이 틀리고 문장력조차 기본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수필이라 해서 읽어보면 자랑 일색의 신변잡기인 경우가 태반이다. 수필이란게 원래 신변잡기의 성격이 짙은 장르이지만 요즘 미주문단에서 발표되는 작품들은 이게 수필인지 일기인지 신세한탄인지 알 수 없는 글이 너무 많다. 시는 또 어떤가. 시가 아니라 산문인 경우가 다반사다. 긴 서술형 문장을 토막토막 끊어서 줄만 바꾸어 써놓고는 시라고 하니, 한숨밖에 안 나오는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백화점마다 여는 문학교실에는 유한마담들로 꽉꽉 들어차고, 놀러다니는 문학기행이 유행이며, 좋은 식당에 몰려다니면서 맛있게 교류하는 문인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문학이 허울 좋은 장식이 돼버렸다. 과거 문학은 배고픔과 고독의 산물이었는데 이렇게 배부르고 신나고 즐거운 삶에서 무슨 문학이 나올 수 있을까. 등단한 작가들이 이런 수준이라면 지금 세상에 등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등단하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또 요즘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작품을 발표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 진짜 문학하는 사람은 절대 등단하지 않는 풍토가 형성되기 전에 ‘작가’들이 잘 해야겠다. ----------------------------------------------------------------- 부끄러운 등단                         입력일자;2007-05-03                                        안주옥 (시인) 4월27일자 한국일보 오피니언란에 실린 ‘등단하는 사람들’을 읽고 문인이란 직함을 가진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기자의 지적은 마치 오래 묵은 수액 덩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듯 시원했다. 가장 마음이 아픈 지적은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헐뜯고 음해하며 비방하는 태도다. 우리의 모순된 삶을 일깨워 주고 깨달음을 통해 아름다움을 구현해 줘야 할 문학이 길을 잃고 있고 있는 듯한, 참으로 안타까운 병폐이기에 할 말을 잃는다. 허영에 부푼 아마추어 문인, 시인•소설가라는 명칭을 사교적 장식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미주 문단에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한국 잡지사에 줄을 대주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부끄러울 뿐이다. “문인들 중 철자법이 틀리고 문장력조차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 많다”는 날카로운 지적이 가슴을 찌른다. 이래서는 미주 문단이 비전을 가질 수 없다. 이같은 지적은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무기력한 미주 문단의 고질적인 병폐가 하루 빨리 시정돼야 하며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미주 문단은 장인적 밀도와 헌신으로 이민 문학을 선도하는 작품을 생산해 내야 한다. 그래서 한편의 시가 보석과 같은 매혹을 불러일으키고 한편의 소설과 수필이 인간과 자연에 존엄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열정이 문인들 사이에 넘쳐나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요즘 등단하는 작가들 중 상당수는 글쓰기에 매진하기보다 문단에 돌아다니며 말 만들고 편 가르고 싸우기 바쁜 것 같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조금 조급한 것 같다. 오래 문단을 지켜 오고 있는 터줏대감들이나 할 수 있는 행태이지 언감생심 신인 작가들에게는 적당치 않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 미주 문인들을 폄하하지 말라 입력일자:2007- 05-02                            한길수 (시인.평론가) 지난 4월27일자 한국일보 오피니언에 실린 ‘등단하는 사람들’이란 칼럼을 보고 이 글을 쓴다. 언론사에서 바라보는 문인에 대한 견해라고 확대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글의 시각은 잘못된 것 같다. 문인들과의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면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할 용의도 있다. 첫째, 해마다 등단하는 미주 문인의 수는 20여명 안쪽이라고 알고 있다. 마치 너나 할 것 없이 등단하는 것으로 알고들 있지만 그렇지 않다. 문단 등단이 다른 예술 분야보다 쉽다고 했는데 한국일보에서 문예공모전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모를 하는지, 그리고 당선자보다 몇 배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낙선하고 다시 많은 시간 의욕을 불태우며 차후를 도모하는지 담당 기자가 더 잘 알 것이다. 미주의 문인들도 작품을 위해 밤잠을 설친다. 문학적 성취와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둘째, 문인들은 등단을 통해 단체 활동을 하게 된다. 사회 규범이 그렇듯이 문학도 혼자 하는 행위가 아니다. 글을 쓰는 문인이 있으면 그 글을 싣는 지면이 있어야 하고, 읽는 독자가 있어야 한다. 물론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처럼 혼자 문학 활동을 하는 작가도 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과 대중적 공감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따라서 단체 활동은 보다 나은 문학을 위한 공유의 행위다. 문인이 되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받고 한국 잡지사에 줄을 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있으면 사회 정화를 위해 밝혀야 한다. 만일 그렇지 하지 않는다면 기자는 본의가 아닐지라도 문단을 음해하는 것이 된다. 또한 언론사는 공짜 글이나 작품을 가져다 지면에 실어 이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셋째, ‘문학이 허울 좋은 장식인가’ 하는 문제다. 더러는 등단하고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들어간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 그러나 삼류 문예지에 등단했지만 후일 좋은 작가로 오래도록 일반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을 쓴 이도 있다. 담당 기자는 과거 이야기를 하는데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지 묻고 싶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누리던 문학을 말하는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암울했던 이야기를 하는지 아니면 고도의 고도성장을 추구하던 독재정권 하의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문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부정을 보면 몸을 던져 의를 보여준 예는 너무나 많다. 오늘날 현실은 문인이 대중을 선도할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음지에서 있거나 가난과 굶주림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이들이 적어도 문인들이 아니겠는가. 완성도를 높이지 못하는 문인에게 변명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력하자는 이야기이다. 문인들의 문인다워야 하고 해야 할 몫이 분명하게 있는 것을 안다. 마지막으로 문인들이 지금보다 좋아지고 나아져 갈 수 있도록 용기와 격려를 주고 따뜻한 위로를 준다면 문학의 힘이 극대화 될 것으로 본다. ------------------------------------------------------------------ 문단의 환부 도려내야 한다                                        글: 송정룡(시인) 5/15(화) /07 지난주 한국일보의 오피니언 난이 뜨거웠다. 지난4월24일자 데스크칼럼 ‘등단하는 사람들’과5월2일자 반박 글 ‘폄하 하지 말라’라는 두 의제를 놓고 볼때 결과부터 이야기 하자면 전자는 사실이지만 내용전체가 문인 모두를 편하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밝혀져야 하고 치부는 세상에 들춰내 살을 도려내는 자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 인간의 욕망을 3가지로 이야기한다. 즉 생존욕, 정욕, 명예욕인데 그중 생존욕과 정욕은 창조주가 주었으나 명예욕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이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딴 생각을 한다는 비유에서 한 말이리라. 그런데 이 명예욕이라는 것이 체면이 없는 것이라서 주인을 잘못 만나면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는 도깨비 같다는 것이다. 미주문단에서도 그런 꼴불견을 자주 보게 된다. 문인이랍시고 언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작품게제를 구걸하여 발표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장의 기본 작법도 모르는 황당한 것들이다. 이런 유치한 글을 읽은 일반독자들이 비난하고 흑평하는 것을 나는 자주 들었다. 물론 이같이 빈약한 글을 게제한 신문사도 그 허물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지역감정을 들추며 편을 갈라 패거리를 만들고 남을 비방하며 아무데나 얼굴 내밀기를 좋아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사람이 문단의 감투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미주 문단을 대표하는 ‘미주문학’지가 있다. 미주문학은 본국정부의 지원금과 문인협회 회원들의 회비로 발행하고 있는데 문학지는 등단을 한 전문  문인들만의 작품만을 발표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명사라는 이유로 등단치도 않고 문학의 전문성도 없는  사람들을 권두언처럼 맨 앞장에 올려놓는 편집의 무지를 범하고 있다. 문학지는 어느 저자거리에 돌아다니는 광고지가 아니다. <발언대>   입력일자 2007-5-26 --------------------------------------------------------------------- 진정한 문학가                                     글; 김영중(수필가) 요즈음 문학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학의 작 품성이나 관계에서는 논란이 많다. 목소리는 높은데 내용이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등단이 좁은 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개방되어 문학가로서의 자질이 없어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돼었다.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문예지를 통해서 신인들이 양산되고 있고, 신문에 신춘문예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만 간다. 개중에는 참 좋은 작품을 써서 등단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기본적 수업도 거치지 않고 몇 편의 작품을 쓰고 문학지 추천으로 등단하여 물을 흐리는 문인들, 작품을 마구 써서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발표하며 독자들을 혼란시키는 문인들, 그들과 같이 어울려 문학인의 긍지를 훼손하는 문인 등 문학인들의 자성이 있어야 한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은 것은 문인사회가 잘못 돼어 가고 있다는 빨강불 신호이다. 문단 내에 파벌간이 파워게임이 생기고, 치열한 대립과 갈등, 균열로 기존의 문학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며 훼손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을 갖는 작태들이고 문인들 스스로가 문학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소나기’를 통해 순수로 빚어진 애틋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황순원 선생은 그가 봉직하던 대학으로부터 수차례 학장 보직과 문학박사 학위 수여의 제의와 권유를 받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교수면 됐지,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며 작가면 됐지 문학박사는 또 뭔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잠언 같은 그 말은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문학의 본질을 준열하게 보여주고 작가정신의 투명성을 천명한다. 일찍이 몽테뉴는 “글 쓰는사람을 만들어가고 또 읽는 이를 감동시키고 교화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고 또 문학가의 사명”이라고 했다. 문학을 하며 글 따로, 행동 따로 한다면 그것은 세상의 시장원리와 다름없다. 문학은 승고한 창작활동의 소산이다. 진정한 문학가는 현대사회의 정신적인 빈곤을 문학으로 채우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가치의식이 확실한 좋은 작품을 먼저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예민한 풀잎 같은 감성과 이성으로 시대와 사회를 직시하고 진실한 양식을 가지고 삶을 표현하는 작품, 문제를 제시하고 또 문제를 해결하고, 감동을 주는 작품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작가적 자세와 문학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때 진정한 문학가로서의 위치도 정립되고 문인다운 대접도 받게 될 것이다.    -------------------------------------------------------------------------- 상이 너무 많다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 부장> 마켓의 와인 섹션에 가보면 어깨에 금박 띠를 두른 와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와인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고 자랑하는 와인들이다. 와인을 잘 모르던 시절엔 이런 경력이 대단한 줄 알고 얼른 사다 마셨는데 지금은 그런 와인일수록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와인 대회가 수없이 많고 상도 엄청 많다는 것은 업계에서 다 아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매년 실시되는 주요 와인 컴피티션이 40여개, 각 대회마다 메달을 타는 와인이 분야별로 수십종이다. 싸구려 와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2달러짜리 찰스 쇼(Charles Shaw) 샤도네가 ‘2007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페어 와인대회’에서 더블골드 메달을 수상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와이너리들은 와인대회에 나가지 조차 않고, 신생 와이너리나 이름없는 와인업체들이 어떻게든 이름을 내보려고 출전한다. 그리고 여러 와인대회에 부지런히 출품하다보면 어디선가는 반드시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TV방송국들은 매년 연말 인기대상 시상식을 갖는다. 전체 TV방송을 망라하는 시상이 아니라 자기네 방송사 드라마와 배우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잔치이므로 별 의미도 없지만, 거기에 더하여 참으로 보기 딱한 일이 매년 벌어지곤 한다. 후보는 서너명 밖에 안 되는데 공동수상이 너무나 잦은 것이다. 잦은 정도가 아니라 한사람이 수상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두명도 모자라 심지어 세명이 공동수상하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상을 탄 사람이 멋있어 보이기는커녕 상을 타지 못한 사람이 무안하고 불쌍해진다. 뿐만 아니라 시상 분야가 어찌나 많은지 결국은 한 해동안 수고한 모든 배우와 제작진이 골고루 상을 타곤 한다. 상이 아니라 위문공연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달 한국에서 나온 토막뉴스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늘그막에 붓을 잡은 73세의 문인화가가 작품공모전에서 한 해에 무려 112회나 수상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화가 김진홍씨는 2004년 1월10일 ‘명필 한석봉 전국서예대전’에 3개의 문인화를 출품, 특선과 입선의 영예를 안은 뒤 그해 국제 미술대전, 대한민국 열린 서예대전 등 57개의 공모전에 출품한 112개 작품이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노익장에 놀라기보다 미술공모전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는 뉴스다. 이런 수상에 과연 ‘영예’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미술상 못지 않게 많은 것이 문학상이다. 한국에는 수백 개의 문학상이 있다고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문예지에서 운영하는 문학상만 무려 41개다.‘동인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황순원 문학상’처럼 권위 있는 문학상도 있지만 동호인들끼리 상을 주고 받는 군소 문학상도 많고, 문예지들이 계속해서 상을 제정하기 때문에 문인들조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학상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이런 문학상들은 작품성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기보다 연장자 순으로 선정하거나 협회에 돈을 기부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일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미주 한인문단에도 적지 않은 문학상이 있다. 그 중에는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상도 있지만 가까운 문인들끼리 ‘나눠먹기’ 식이라고 비웃음을 사는 문학상도 있다. 많은 경우 문단 연배에 따라 돌아가면서 받고 있으니, 그런 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문인들마저 의구심을 보인다. 최근 이곳 문단에서 2개 문학상의 수상자 선정이 있었다. 선정 과정에서 관계자들 사이에 알력과 다툼이 매우 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심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자기 편을 미느라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는 일, 또 후보에 오른 문인들이 상을 타기 위해 치열하게 로비하는 일은 올해뿐 아니라 문학상 발표 때마다 있는 일이다. 시심을 벼러 글을 써야할 문인들이 원로들을 찾아다니며 아부하고 로비하면서까지 받을 가치가 있는 상인지 정말 궁금하다. 인정에 약하고 혈연지연학연에 지배받는 한국인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상을 수여하는 일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꾸 상을 만들고, 연중 도처에서 각종 시상식이 열리는 것이다. 상을 주고 격려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너무 많아서 그 가치가 떨어진다면 상을 주는 의미가 대체 어디 있는가. 입력일자:2007-05-02-------------------------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 부장 출처: 한국일보 미주 L.A판 ---------------------------------------------------------------------- 윤: 3회의 추천을 거쳐야 비로소 추천 완료가 되던 때지요. 추천위원도 오직 몇몇 분이었고. 그러니 자연 시인의 인구도 많지를 못했었고,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지요. 수많은 잡지에 수많은 시인이 등단을 하지요. 시인의 수가 많아졌다는 우리의 시단 현실은 엄밀하게 말해서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 말씀을 들으니, 요즘은 정말 등단하는 시인의 숫자가 정말 많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군요. 1990년대 이후 시 전문지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각 잡지에서 자기 식구 늘리기의 한 방편으로 신인을 대량 양산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오히려 독자의 수는 줄어드는, 참으로 기이한 상황을 맞고 있다 하겠습니다. 지금의 등단 시스템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윤: 등단이란 추천해 주는 선생님이 계시고, 이 선생님으로부터 추천을 받는 신인이 있는 것을 말하지요. 추천을 한 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추천을 해준 신인의 스승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생 누구의 추천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지요. 그래서 누구는 목월 선생의 제자다. 누구는 미당 선생의 제자다. 누구는 석초 선생의 제자다. 그런가 하면 소설에서도 누구는 김동리 선생의 제자다. 황순원 선생의 제자다.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며칠 전에는 목월 선생의 제자들과 동리 선생의 제자들이 경주 ‘동리 목월 문학관’ 문제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이 사라졌어요. 다시 말해서 문학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사승(師承)의 관계를 이룰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런 모습이 오늘에는 사라진 것이지요. 첫째 등단을 시키는 분에 과연 그 만한 자격을 지녔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잡지를 하나 운영하면 너도나도 추천을 하는 소위 선생님이 되니, 추천을 받는다는 것은 등단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지, 정말로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이지요. 지금은 명예욕이나 허영심이 많은 문학 지망생들이 ‘나는 어느 선생님께 꼭 추천을 받아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작품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_이 글은 유명 시인이 XX문학상을 받으면서 인터뷰한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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