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의 비결 / 정민

2008.06.12 14:00

서용덕 조회 수:472 추천:44

아첨의 비결  
                        
                                             수필가  .정민

옛날 어떤 사람이 병들어 아내에게 약을 달이게 하였는데,
어떤때는 많고 어떤때는 적어, 양이 일정치 않았다.
화가 난 그는 첩에게 약을 달이게 하였다.
첩이 달여 오는 약은 늘 일정 하였다.
그는 기뻐하며 첩이 더욱 사랑하였다.
어느 날 첩이 약을 달이는 모습을 살짝 엿 보았더니 많으면 땅에 쏟고,
적으면 물을 타는 것이었다.
이것이 첩의 약이 늘 일정한 양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연암 박지원의 ‘마상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물을 타서일정하게 한 첩의 약과,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내 논 본처의 약중 어느 것이 약효가 있었을까. 그런데도 그는 겉으로 드러난 약의 양만 보고 첩을 더욱 사랑하였다.

연암은계속해서 윗사람에게 환심을 사는 아첨의 비결을 말한다.
아첨에는 세 단계가 있다.

가장 으뜸가는 상첨上諂은 몸가짐을 신중히 하고 얼굴빛을 바로하여 말을 삼가며,
명리에 욕심이 없고 교유에 뜻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여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중첨中諂은 비위에 맞는 말만 골라하여 자신의 마음을 표시하고, 그 틈을 잘 타서 자기 뜻을 전하는 것이다.

가장 천박한 하첨下諂은 신발이 닳고 자리가 해지도록 입만 쳐다보고 낯빛을 살피면서, 하는 말마다 옳다고 하고 하는 일마다 훌륭하다고 하는 것이다.

요컨대 가장 고단수의 아첨은 겉으로는 무관심한 듯하면서
역으로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반대로 하수의 아첨은 노골적으로 비굴하게 굽신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첨의 경우, 처음에는 듣기 좋아하다가도 나중에는 싫증이내서
상대방을 천박하게 여기게 되고 종내는 ‘저자가 놀리나’? 하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세의 목적으로 ‘아첨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유념해야 할 비법이다.
이를 찬찬히 살펴보면 자신의 속셈을 감추면 감출수록 아첨의 등급이 올라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하첨의 방법이 성공하고 먹혀들어간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세상에는 속이 훤히 다 들여다뵈는 아첨배와 모리배로 들 끓는다.
오히려 고차원의 상첨이 멋있게 보일 지경이다.

이런 와중에서 아첨의 길을 버리고 우직하게 제자리를지키는 사람은 혼자 외돌토리 바보가 되기 쉽다.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고 적응력도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아첨배들의 발길에 짓밟히기 일쑤이다.

그래서 우직한 본처보다 교활한 애첩이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다.
본처의 진실은 알아줄 안목 있는 남편도 없으니, 애첩이 본처를 몰아내고
급기야는 집안을 다 말아먹는 사태로 번지게 될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경우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세상에는 그럴듯한 겉모양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썩지 않는 곳이 없고 곪지 않는 데가 없다.
일신의 영달과 보신만을 생각하는 자들이 행세하는 이 세상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본처의 우직스러움은 어디 가서 찾을 것인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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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천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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