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글쓰기 충고

2010.02.21 10:20

서용덕 조회 수:337 추천:43


옛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글쓰기 충고’  

조선 시대 지식인들은 어떤 글을 좋은 글로 생각했을까?
최근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포럼)를 펴낸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대표 한정주씨는
“조선 시대 지식인이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도 지금과 비슷하다”며
“그들의 충고는 지금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이수광, 이익, 허균 등 당대를 풍미했던 지성인들이 제시하는 ‘글쓰기 충고’를 들어보자.

간략하고 쉽게 글을 써야

400년 전에도 글쓰기의 미덕은 간략하고 쉽게 글을 쓰는 것이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어렵고 교묘한 말로 글을 꾸미는 건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게 아닌 문장의 재앙(災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글이란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쉽고 간략하게 짓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고 평가 받는 정조는
서경(書經)에서 필요 없는 글을 몽땅 들어내고 단 100편만을 취한 공자를 예로 들며
“글은 복잡하고 번거롭기보다 간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한 점도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고치고 또 고쳐야

많은 조선 시대 지식인들은 한 번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쳐야 비로소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충고한다.
문장이 뛰어나 조선 중기의 사대가(四大家)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장유는
당나라의 문장가 백낙천을 예로 들었다.
백낙천이 지은 시는 물이 흐르듯 막히는 것이 없어 고치고 다듬은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후세 사람이 원고를 구해 살펴보니 글을 매만지고 뜯어고친 흔적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은 송나라의 문장가 구양수를 예로 들었다.
구양수는 글을 지으면 가장 먼저 벽에 붙여놓고 시간 나는 대로 고쳐 결국 마지막 완성 단계에선 처음 쓴 글자가 한 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의 글을 두고 여러 번 고칠 시간이 없다면 설화문학의 대가인 유몽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처음 글을 지을 때는 마음속에 사사로운 뜻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글의 결점과 병폐를 보기 어렵다”며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야 공정한 마음이 생기므로 좋은 문장과 함께
그 글의 결점과 허물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른 뒤 글을 고치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글을 써야

조선 시대 가장 위대한 서예가로 꼽히는 김정희는
“글을 쓸 때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평소 자신을 찬사하는 편지를 많이 받았던 그는
“나처럼 하잘 것 없는 사람을 높이고 꾸며 비로봉 꼭대기에 올려놓으려고 하는데,
지나치게 높이는 말은 결국 사실과 다르게 기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유 역시 “자신의 말이 빠진 문장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송기의 ‘열전’을 읽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장유는 ‘열전’을 읽으면서 말을 억지로 만든 듯 세련되지 않고 형식도 맞지 않으며
품격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장유는 “글엔 자신의 생각이 배어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험 없이 좋은 글 나올 수 없어

많은 경험 역시 좋은 글의 바탕이다.
조선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는 어릴 적부터 글을 좋아했다.
그는 옛사람들의 책을 구해 읽으면서 오래도록 마음으로 기억하고 입으로 외운 다음 시험 삼아 써 보곤 했다.
그러나 이산해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글의 모양새는 갖추었지만,
비루하기 그지없어 볼 만한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세상 견문을 넓히지 않고 쓴 글이 조잡하고 놀라울 것이 없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초기에 45년간 여섯 왕을 섬긴 서거정 역시
“사마천의 문장은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는 여행 속에서 배운 것”이라며
“여행이나 생활 속에서 배우지 않은 글은 곧 부패하거나 낡아버리기 쉽다”고 말했다.
공부 못지 않게 다양한 경험이 글쓰기에 중요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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