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1941~2010)평론가님 소천 (2월16일)

2010.03.07 06:04

서용덕 조회 수:642 추천:68

박영호 평론분과위원장 소천 본 협회 이사이며 평론분과위원장이신 박영호 평론가께서(향년 70세) 지병으로 2월 16일(화) 오후 4시 자택에서 소천하셨기에 삼가 부고를 드립니다. * 장례예배        일시; 2월 18일(목) 오전 10시 30분        장소; 한국장의사 (323)734-5656               (2045 W. Washington Blvd. LA, CA. 90018) * 장지; 할리우드 포레스트 론 (Forest Lawn)  /   (6300 Forest Lawn Dr. LA. CA. 90068) * 연락처; (213)327-9675   ------------------ ! 근조 謹弔 ! 천국으로 떠나신 박영호님의 명복을 기도합니다. 제가 사정상 장례에 참례 못하여 죄송하지만 유가족과 함께 애통합니다. 박영호님~! 좋은 천국에서 평안하시고 남은이들 위해 기도 부탁합니다. 샬롬~! 鐘波 이기윤 올림 --------------------------------- [삶과 추억] 평론가 박영호씨 별세 시인이며 평론가인 박영호씨가 신병치료중 6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장례식은 18일(목) 오전10시30분 한국장의사(2045 W. Washington Bl.LA)에서 열리며 장지는 할리우드 포레스트 론이다 고인은 경남 함양에서 출생 목포에서 성장했으며 동국대 국문과를 나와 계간 자유문학에 시로 월간 문예사조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시전문지 '미주시인' 주간으로 활동했던 박시인은 미주한국문인협회의 이사를 지내며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심사위원을 맡아왔다. 계간지 '미주문학'에 '미주한인소설연구'등을 집필하는 등 평론가로 괄목할만한 활동을 해 온 고인은 최근 한국에서 '미주한인소설연구'를 단행본으로 출간 미주 한인문단의 현주소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연락: (323)734-5656 (818)334-0101 (213)327-9675. ---------------------------------------- 이별은 다시만남의 전주곡                         -박영호님의 영전에-  /정해정 영호선생 ! 이게 웬일이랍니까? 내 허락도 없이, 나도몰래.  왜 이렇게 훌훌 떠나시다니요...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한 동네에서 자랐으며, 같은 학교에 다녔지요. 사춘기에는 학교가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미술반에서 함께 야외 스케치도 하러 다녔구요. 성인이 되어, 우리식구는 보따리를 싸들고, 태평양을 하늘로 건너 이민 길에 올랐답니다. 안개 속같은 불안한 이 미국땅에 발을 딛고, 어리둥절 하고 있을때 남편의 동창회 에서 자네를 다시 만날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낯설고 물 설은 이곳에서 자네는 당당하게 우리가족의 안내자요,후원자 였지요. 아니 가족이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네요. 더욱이 글을 쓰는 길을 함께 가게되어 나는 얾나 든든 했는지 모른답니다. 미주 문단에 들어와 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발표한 "미주 한인 소설 연구"는   정말 누구도 하기어려운 <공>이였습니다.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온 책과, 지금 만들고 있는 아름다운 "시집" 그들이 주인을 찾았을때의 서운함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평소 너무나 건강했고, 의지가 강하여 또래보다 훨씬 젊었지요. 거기다가 타고난 예술성으로 보기드믄 멋쟁이 친구였습니다. 폐에 작은 이상이 있었지만, 수술해서 말끔하다고~누구보다 깨끗하니 걱정 말라고 했었지요. '회복기념' 이라고 예쁘게 꾸민 집에서 친하게 지내는 문우들을 모아놓고,잔치를 했던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이렇게 훌훌 가버리다니요. 착하고 똑똑한 세 딸을 두고 어찌 눈을 감았나요? 예쁘고 정갈한 와이프를 두고 어찌 눈을 감았나요? 영호선생~~ 자네는 지금학이 되어 유달산을 날고 있는가요? 삼학도를 날고 있는가요? 아니면 완도의작은 섬위를 날고 있는가요? 아니지요 우리들의 가슴 속을 하얗게 날고 있네요. 오래도록... 오래도록. 영호선생~~ 아픔도 슬픔도 없는 평안한 나라에 먼저가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남편과, 이 세상에서 처럼 오순도순 잘 지네세요. 내가 따라 갈 때 까지. 영호선생~~       부디 편히 가세요.                                                -2010년 2월 18일. 친구 정해정 드림--- -------------------------- 모자를 쓰고 잠이 드셨네            -고 박영호 시인의 영정 앞에서- / 안경라 70년 먼 길 얼마나 고단하셨으면 모자를 쓰신 채 잠이 드신 걸까 아픈 싸움이 얼마나 싫었으면 흰 깃발 같은 국화 무수히 내어 걸고 모자도 벗지 않은 채 아예 저토록 깊은 침묵에 빠져 버리신 걸까 많은 날 홀로 울던 외로움의 쌀들을 씻어 슬픔의 밥 지어놓고 마지막 얼굴을 보여 주시는 박선생님. 저마다 만든 눈물반찬 들고 와 아득히 멀어진 거리, 이쪽에서 수저를 든다 저 혼자 이별을 모르는 듯 이마 반짝이며 건강한 영정 사진 바宕?검은 상복을한 채 말이 없고 어리고 여린 손주들의, 슬픔에 씻긴 화환처럼 하얀 고요 시인의 얼굴만큼 익숙한 모습의 저 모자 주인 가시는 곳 따라 가려는 걸까 깊은 상념 같은 머리 맡에서 끝까지 낭만의 자존심 지키려는 걸까 자는 듯 검은 잠 드신 시인의 한 줌 흙으로 돌아 갈 살과 한 권 시집으로 세상에 남을 생의 또 다른 이별 앞에서 가만히 몸 숙여 수저를 놓는다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67,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