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싹쓱싹

2003.06.09 23:16

솔로 조회 수:99 추천:3

제 고향 여자 친구들끼리 제 얘길 했나봅니다. 그 얘길 나눈 한 친구가 제게 이멜을 보냈습니다. 어린이 회의 시간. 주제는 농촌답게 어떻게 하면 보리를 잘 벨 수 있나 였다고 합니다. 회장이 얘기를 꺼내니까 김동찬 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쓱싹쓱싹 베면 됩니다!" 했다나요. 싱거운 소리에 배꼽잡고들 웃었다고 합니다.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끼리만 읽는 작품만 쓰지 않고 일반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요.
미국내 한국문학을 하는 우리들은 본국의 문인들에 비해 유리한, 혹은 불리한 조건이 있는지요. 그렇다면 그 조건을 이용, 혹은 극복할 수 잇는 방법은 없나요.
문학토방을 누구 말마따나 어떻게 하면 더 영양가 있게 할까요.
최근 한국의 국문학 연구하는 사람들이 미주의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요.
미주문학이 본국문학에 비해 뒤쳐졌나요. 앞설 수는 없나요.
문학의 형태가 다양화해지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잇다고 하는데 과연 과거의 문학형태만을 고집하고 다른 시도들에 무신경해도 될까요.
문인 숫자는 작은데 협회가 열 몇개가 되는 엘에이의 문단 현실 속에서 쌈박질 하는 것 말고 함께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잇는 일은 없나요.

이런 질문을 던졋더니 이성열 부회장님은 잘 쓰면 다 해결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쓱싹쓱싹 쓰면 된다고 도사같은 대답을 하십니다.
물론 정답입니다. 그러면 다 되는 거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쉽나요.
미국생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잇나요. 라고 누가 묻는다면 쓱싹쓱싹 하면 된다고 대답하면 될까요. 어떤 정치가가 정치가들 모임에서 우리 정치에 문제가 많다. 정치의 발전과 나라의 번영을 위해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잇나 의논해보자 하고 얘길 꺼냈다면 쓱싹쓱싹 잘 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얘기해버릴 수 있을까요.
문학은 결국 외로운 싸움이니 정치와 이민생활과는 다르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이 하는 일인데 문학이 예외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조금 다를 수는 있겠죠.
끊임없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거치지 않고, 많은 변화와 시대의 변천에 무딘 고착된 패러다임을 가지고 과연 좋은 글을 쓸 수가 있을까요. 한, 두편은 가능하겠죠.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겁니다.
개인에게서처럼 어떤 그룹에도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동물인 개인이란 결국 어떤 그룹 속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일테면 우리가 문학토방을 한다 미주문학을 낸다 월보를 보낸다 문학행사를 한다 하는 여러 일들이 우리 개인의 즐거움이나 자기발전만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선생님은 진열장의 시라는 프로그램에도 결국 시인들만 참석하더라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나마 그런 눈물겨운 노력들이 이만큼 문학을 버티게 하고 잇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는 얼마나 즐거워햇습니까. 문인들에게 얼마나 힘을 주었겠습니까.
좋은 글을 쓰면 다 알아주고 읽어준다고요. 좋은 글이 혼자서 발을 달고 걸어간다고요.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개인으로는 할 수없는 많은 일들,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진열장에 글을 올리고, 평론을 싣고, 미주문학을 만들고, 잡지를 만들고, 토론하고, 교육시키고, 상금을 주어서 등단시키는 일들을 꾸준히 해온 결과로 '좋은 글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요.
만일 제가 어느날 문단으로부터 도망간다 하더라도 문단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에게 냉소만을 보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50%는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할 것같아요.
어제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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