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숙 전 보건사회부장관의 글

2006.05.26 07:37

나암정 조회 수:228 추천:8

그날 치마저고리 입은 권양숙씨는 보기 드물게 옷도 참하고 행동도 조신해 보였다. 하얀 백자 찻잔에 차를 따르는 손놀림도 서투르지 않고 하인즈 워드에게 권하는 모습도 괜찮았다. 정말 보기 드물게 눈에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아차’ 하는 이상한 장면이 벌어졌다. 아차! 원샷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 하얀 조선백자 찻잔을 손에 들더니 하인즈 워드를 향해 이렇게 권하는 것이었다. “자, 원샷!” 한 뉴스 TV에서 생으로 중계된 장면이다. 조선백자로 된 녹차 잔을 쳐들고 부딪치는 손짓을 하며 ‘원샷’을 외치는 이런 모습을 대통령궁에서 중계방송을 통해 보아야 하는 국민은 정말 서글프다. 一國의 대통령의 태도가 그렇게까지 천박할 것은 없지 않는가. 언젠가는 비행기 안에서 생일을 맞은 노무현 씨가 생일 케이크를 앞에 놓고 손가락으로 그 케이크의 위를 덮은 크림을 찍어서 입안에 쏙 집어넣는 장면이 비친 적이 있었다. 그 때에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우습고 본데없는 몸가짐을 하는 것에 대해 항간의 품평이 여러 갈래로 났다. 그래도 그 때 그것은 일부러 해보인 장난이나 농담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오히려 흉보는 사람들을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원샷’은 너무하다. ‘원샷’이라는 말이 영어이고 하인즈 원드는 영어를 쓰는 사람이므로 재미삼아 그렇게 한 것일까. 영어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닌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술잔을 들고 ‘원샷’하고 소리 친 뒤에 꿀꺽 삼키는 술 마시는 수법은 미국식이 아니다. 말하자면 영어권에는 없는 말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식 영어인 셈이다. 그리고 우아한 백자에 녹차를 드는 것에는 그 나름의 예법이 있다. 물의 온도, 차의 종류 등에 따라 격식이 다를 수 있는 도(道)의 경지를 즐기는 일이다. 하인즈 워드를 초청하여 차를 대접한 것은 허기를 메우거나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격식 있는 우리 문화를 곁들여 만남의 기회를 갖는 것에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조선백자에 녹차를 쳐들고 영어도 아니고 격식있는 우리말도 아닌 것, 천박한 술자리 용어를 손님 앞에서 쓴다는 것은 참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그는 매사에 왜 이렇게 생각없이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 일만이 아니다. 그의 정권이 내놓는 모든 정책이 1차 방정식만도 못하게 단세포적이고, 전혀 깊이가 있는 사고가 개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로 이어진다. 가령 강남의 투기를 잡겠다고 국민에게 “까불지 말라”고 협박을 하며 정부여당이 내놓는 정책방안이라는 것이 하나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생각이라는 것을 깊이 해보지 않고 내놓는 것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돈벌이에 생각 집중하면 투기 3,4세기의 로마에서도 투기라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영어의 투기라는 말인 스페규레이션(speculation)란 물은 라틴어 스페규라티오(speculatio)를 어원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원래는 철학용어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생각을 집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인생에 관한 진리에 생각을 집중하다 보면 철학이 되고 돈벌이의 진리에 생각을 집중하다보면 투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화가 있다. 그리스 철학사의 첫 번째 주자(走者)를 고대에 이오니아 지방이라고 불렀던 소아시아 서안의 밀레토스 태생인 탈레스로 치는 것은 학문적 정설이다. 그 탈레스가 어느 날 길을 걸으면서 깊은 사색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서 시궁창에 빠져 버렸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비웃으며 말했다. “철학자라는 사람들은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종들이다.” 이런 비웃음을 들은 탈레스는 사람들의 그런 비웃음을 반박할 수 있을 길을 궁리해냈다. 당시 그는 무엇인가를 근거로 해서 그 해에 그 지방에서 올리브가 많이 수확되리라는 것을 예측하게 되었다. 그런 예측을 한 그는 곧바로 밀레토스 주변의 모든 착유(搾油)장을 한 곳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세내어 버렸다. 마침내 올리브 생산이 늘어나 올리브 상인들은 그것으로 기름을 짜서 시장에 팔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찾아보니 모든 착유공장들은 이미 탈레스가 몽땅 세내어 버린 뒤였다. 이렇게 독점한 기름집들로 해서 탈레스는 많은 돈을 금방 벌 수 있었다. 그것으로서 “철학자는 쓰잘데 없는 생각이나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비웃던 사람들을 납작하게 만든 것이다. 생각을 깊이 집중해야 해답 철학은 생각을 깊이 하는 일로 이뤄진다. 생각을 깊이 집중한다는 것은 매사에 해답을 찾아내는 일의 본령인 것이다. 날고 기면서 투기를 해대는 사람들은 그 것만을 위해 머리가 터지게 생각을 집중해서 이익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투기대책을 비롯한 모든 국정은 집권자가 머리가 빠질 만큼 집중한 생각과 연구로 해답을 찾아야만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래도 실패 안하기가 어렵다. 어느 한 가지도 깊은 생각 끝에 찾아낸 것이 보이지 않는 행태를 날마다 거듭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너무 한심하다. 일요일이면 부부가 나란히 필드에 나가 “나이스샷"을 외치는 일에 너무 탐닉한 나머지 백자 찻잔에 담긴 녹차를 쳐들고도 불쑥 ‘원샷'을 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너무 생각이 없이 사는 대통령을 보면 살아야 하는 국민은 서글프다.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장관. 인터넷저널 '광야의 소리' 편집위원장 2006. 5. 25


When I Was Young / Steve Barak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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