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자를 수는 있어도

2004.04.21 10:10

이성열 조회 수:373 추천:39

이발사가 내 머리를 다 깎았을 때
나는 다시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내 주위의 모두는 왜 나로 하여금
머리를 깎게 하는 걸까?
어릴 땐 엄마와 누이가
사춘기 땐 학교에서
그리고 국가까지 나서서
마치 잔디 기계가 잡초를 밀어 버리듯
우리 머리를 깎지 못해 안달했다.
지금은 내 아내조차도 머리를
깎으라고 내 등을 떼민다.

하지만 나는 머리 깎기를 싫어한다.
삼손처럼 힘을 잃어서가 아니라
바뿐 중에 이발소에 가서 앉아 기다리고
내 신체의 일부를 남의 수중에 방치해 놓고
처분만 바란다는 건 내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이발 후 군인이나 죄수처럼
부자연스런 모습도 나는 좋아하질 않는다.

머리를 깎지 않으려 저항한 사람은
나 뿐 만이 아니다. 일종의 전통이다. 우리
조상들은 머리를 깎지않고 상투를 얹었다.
그들은 머리카락도 팔 다리처럼
신성하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의 일부로 믿었다.
19세기 말, 일본 식민지 하의 정부는
모든 남자들의 머리를 자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그들은 당국에 저항했다.
"가단두, 불가단발"을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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