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있는 그녀

2005.07.24 00:50

이성열 조회 수:401 추천:47

                                                  
"나한테 그런 책 좀 보내주고 하면 못써요?"
내가 시집을 냈다는 소리에 그녀는 신경질 적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기가 막혀 입을 쩍 벌리고 앉아 있었다. 도대체 그녀는 시라는 것을 좋아는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나에게 관심이 있긴 있는 걸까?
물론 나는 그녀에 대해 큰 기대는 갖지 않으려고 들뜨는 마음을 다잡아 눌렀다. 내가 무슨 복에 그렇게 돈 많고 능력 있는 여자를 차지하게 되겠는가. 올드미스인 그녀는 꽤 수완 있는 한의사로서 이미 살아 갈 터전은 다 잡아놓고 신랑만 들어오면 된다는 거였다. 돈도 이미 많이 모아놓고, 저 바닷가 근처에 구입해 놓은 집도 있었으며, 자동차도 벤츠나 캐딜락이 아니면 몰고 다니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시 나부랭이나 끼적거리는 가난뱅이 나로선 그녀를 얻게 되면 호박이 덩굴째 구르는 팔자가 된다고 다들 하긴 좋은 말로 수근들 대었다. 그런 팔자가 될지는 몰라도, 뭐 별 잃는 것이야 없을 터였다.
더구나 나를 보자 접근했던 쪽도 그 편이었고, 자신들을 들어내고 열을 올렸던 것도 그 편이었다.
먼저 그들은 교회에서 혼자 외롭게 떠도는 나를 보자 사귀고자 했다. 우선 그녀의 언니와 형부라는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허튼 소리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뭐 인상이 좋다는 둥, 가족은 어디에 있느냐는 둥 하며.
얼마 안 가서 그들은 나에게 만나서 차나 한 잔 하자고도 했다. 그렇게 해서 따라 간 다방에서 형부라는 사람이 단도 직입적으로,
"다름이 아니고 나에게 과년한 처제가 있어서 그라는데....." 하며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눈치는 챘었지만 모른 채 하기로 했었다.
"아-, 예."
"보아하니 미스타 명도 나이가 어리진 않겠고, 결혼도 때 맞춰 해야지...... 우선 집에 가서 와이프와 애들이 없으면 난 조금도 못 살 것 같아요. 허허......"
"그러실 테죠."
나도 가만있을 수 없어서 장단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내 생각까지 해 주던 것이다.
"그렇게 혼자 다니는 것을 보니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해서 내가 처제와 어떻게 줄을 대볼까 하는데-."
그러더니 자신의 처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즉 그녀는 학교 때부터 줄 곧 1 등의 자리를 내놓아 본 적이 없다는 것과, 생활력이 강해서 누구의 도움 하나 없이도 그 방면에 전문가가 되었고, 아울러 오늘의 위치에 도달했다는 거였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그녀는 그런 모든 게 얼굴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빈틈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며 맡은 일에 만은 자신이 있어 보이는 표정 등, 풍기는 것이 나이가 과년해서 조심하고 꼼꼼해 보일 수 있는 그런 인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자진해서 뱉어 내는 말들을 성의를 다해 들어가며 속으로는 교회에서 보게 되는 그 여자의 인상을 이렇게 그려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추호도 서둘 생각은 없었다. 비록 뭐 두 쪽 밖에 가진 건 없고, 장래를 보장해 줄 직업이나 희망은 없었어도, 아직 남자 나이 30이라 그런지 인생에 아무 두려움이란 없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그녀가 타고 다닌다는 벤츠 승용차도, 그리고 중산층이 모여 산다는 베이 지역의 그녀가 소유하고 있다는 주택도 나에겐 큰 관심거리가 되진 못했다. 적어도 생각은 그랬다.
나에게 관심거리는 그녀가 어떻게 나의 예술세계를 이해해 줄 수 있고, 같이 살아가면서 그것을 즐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굳이 예를 든다면 내가 산 정상에 올라가서 그 내려다보이는 자연경관을 보고 시적인 감흥으로 감탄할 때, 내 반려자인 아내가 그런 자연경관엔 관심도 없이 그곳에서의 불편한 문화시설이나 놓고 불평을 해댄다면, 이는 그야말로 동상이몽의 불행한 쌍두마차의 고된 여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골몰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맞은 편에 앉은 여자의 언니가 눈을 고추 뜨며 처음으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미스터 명이라고 했나요? 학교에서 전공은 무어였죠?"
나는 당황했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대답에 자신이 없었다.
"아- 저요? 저는 국-,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을 두려워했다. 빌어먹을-, 이 미국까지 와서 국문학 전공을 무엇에 쓰나. 영문학이라면 또 몰라도-, 그것도 전공이라고 다닌 건가? 하긴 우리 자신도 학교 때는 국문학을 '굶는 학' 이라고 스스로 호칭 했었으니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국문학 전공이라면 지금은 그래 무슨 일을 하세요?"
나는 다시 주저했다. 정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의 직업을 묻고 있었다. 제길 할-, 나는 다시 더듬었다.
"저, 지금...무얼 할까... 찾고 있는 중인데요. 우선 집에서 글을 쓰고 있거든요."

  이런 일이 있은 후에 교회에서 여자는 줄 곧 내 주위에서 얼씬거렸다. 그녀는 아직도 실업자인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긴 그녀는 30, 목 메달이도 다 지난 올드미스니까-. 그녀는 내가 속해 있는 청년회의 일엔 꼭 참가했으며, 기도회, 야유회, 구역예배 등에도 내가 가는 곳엔 빠지는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엔 꼭 나서서 참견이었고, 나의 동조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는 말다툼이라도 벌리려는 관심과 열성을 보여 주었다. 그 즈음 나는 그 동안 써 놓은 시를 모아 시집 하나를 발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쇼핑 쎈타 침구가게에서 나오는 그 여자를 우연히 마주쳤다.  더 없는 반가움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쩐 일이세요, 여긴-?"
그녀가 약간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아, 그냥-, 지나치다 들렀어요. 댁엔 어쩐 일이세요?"
"저도 그래요."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녀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저기 찻집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요?"
그녀는 왠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다음 에요, 오늘은 바빠서 그냥 가겠어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쑥 먹은 기분이 되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곧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이 있은 다음 주, 교회에선 여자가 결혼한다는 발표가 전격적으로 나 돌았다.
상대로는 청년회 소속의 막내인 C 군이었다. 그는 그녀보다 대여섯 살이 아래였고, 형과 함께 리커 상회를 경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과연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 그녀를 능력이 있다고 수군댔고, 또 한 편으로는 C군이 연상의 여자와 서둘러 결혼하는 이유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라는 말도 부지런히 오갔다.
나는 그제야 며칠 전 그녀가 침구가게에서 얼씬거리고 있었던 건 결혼을 결정한 후 혼수장만을 위하여서 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차 한 잔 하자는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바로 그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까지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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