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그 배면을 보다

2007.11.21 11:05

이윤홍 조회 수:648 추천:59



나뭇잎, 그 배면背面을 보다




그때까지 나는 나뭇잎의 앞면만을 보아왔다
지나가며 스쳐가며 그것이 나뭇잎의 전부인줄 알았다
나뭇잎들의 윤기 잘잘 흐르는 저 모습이 그들의 전부인줄
알았다

은성銀盛한 여름의 한 때, 숲으로 들어가
나무의 둥근 그늘을 만들고 있는 나뭇잎들 속에 섰다
그 때 내가 본것은 무엇이 였던가
나뭇잎, 그 배면背面에서 스며나오고 있는
너무도 엷어 차마 빛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너무도 엷어 차마 보인다 라고도 말할 수 없는
눈 시리도록 투명한 슬픔이 앞으로 앞으로 밀려나가서는
잎이 되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던
내가 바라보며 전부인줄 알았던 저 연 초록잎이 되고
있었다

한 순간
숲이 크고 길게 흔들렸는지
마치, 기다려 손 놓은듯 나뭇잎 하나 발밑으로 내려앉고
터진 잎새들 사이로 바람은 뒤척거렸던가
햇살은 어른거렸던가
환한 그늘이 바싹 말라가는 동안
다시 바라본 나뭇잎 배면은  
애벌래의 빈 껍질이 고치에 둘둘말려 붙어있는, 거칠은,
무광택의 배면일 뿐

숲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백년도 더 산 중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2 자벌레 이윤홍 2007.02.03 146
221 뱀 -이브 1- 이윤홍 2006.09.19 147
220 시간 찾기 이윤홍 2006.12.17 147
219 눈(2) 이윤홍 2007.02.02 147
218 이윤홍 2007.02.02 147
217 오후 이윤홍 2007.02.03 147
216 바람 털 이윤홍 2007.02.02 148
215 이별 이윤홍 2007.02.03 148
214 셀폰 이윤홍 2007.02.03 150
213 바람 이윤홍 2007.02.02 151
212 나뭇잎 하나 -이브 3- 이윤홍 2006.09.19 152
211 그림자 이윤홍 2007.02.01 152
210 가랑비 이윤홍 2007.01.31 153
209 월담 이윤홍 2007.02.03 153
208 프리웨이 이윤홍 2007.02.03 153
207 꽃(1) 이윤홍 2007.02.01 154
206 골목에서 놀고있는 아버지 이윤홍 2007.01.31 155
205 늦잠 이윤홍 2007.02.02 156
204 이윤홍 2007.02.02 156
203 이윤홍 2007.02.03 156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604,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