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그 배면을 보다
2007.11.21 11:05
나뭇잎, 그 배면背面을 보다
그때까지 나는 나뭇잎의 앞면만을 보아왔다
지나가며 스쳐가며 그것이 나뭇잎의 전부인줄 알았다
나뭇잎들의 윤기 잘잘 흐르는 저 모습이 그들의 전부인줄
알았다
은성銀盛한 여름의 한 때, 숲으로 들어가
나무의 둥근 그늘을 만들고 있는 나뭇잎들 속에 섰다
그 때 내가 본것은 무엇이 였던가
나뭇잎, 그 배면背面에서 스며나오고 있는
너무도 엷어 차마 빛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너무도 엷어 차마 보인다 라고도 말할 수 없는
눈 시리도록 투명한 슬픔이 앞으로 앞으로 밀려나가서는
잎이 되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던
내가 바라보며 전부인줄 알았던 저 연 초록잎이 되고
있었다
한 순간
숲이 크고 길게 흔들렸는지
마치, 기다려 손 놓은듯 나뭇잎 하나 발밑으로 내려앉고
터진 잎새들 사이로 바람은 뒤척거렸던가
햇살은 어른거렸던가
환한 그늘이 바싹 말라가는 동안
다시 바라본 나뭇잎 배면은
애벌래의 빈 껍질이 고치에 둘둘말려 붙어있는, 거칠은,
무광택의 배면일 뿐
숲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백년도 더 산 중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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