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두 마리, 저 한 마리

2006.10.03 14:21

이윤홍 조회 수:338 추천:19



      새 두 마리, 저 한 마리



      연 아흐래 내리고 있는 비로 하늘이 지워졌다
      그 옛날
      누군가가 토기에 새기던 빗살무늬를
      오늘 저녁 빗줄기가
      물먹어 풀어진 풍경위에 굵고 가는 사선(斜線)으로
      음각(陰刻)하고 있다
      그 사이로 새 두 마리가 날아간다
      땅 끝까지 축- 처진 허공을 밀고 나가기가 힘든지
      물 속의 내 그림자보다 더 낮게 천천히 날아간다
      어둠은 제 시간보다 먼저 사위(四圍)를 덮어오는데
      그들의 보금자리는 어디 쯤 있는 것일까
      온 길 보다 갈 길이 먼 듯한 저 날개짓
      문득 당신을 본다
      당신의 아주 작은 허전함조차
      채워주지 못하고 지나온 우리의 긴 세월을
      그 때문에 오히려 이렇듯 가볍게 여기까지 왔노라고
      미소짓던 당신
      그 미소의 뒤안에서 쌓이고 쌓이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날을 가슴속에 묻고 또 묻었을까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고
      나란히 날고있는
      전생(前生)에서 얻은 날개 뚝- 떼어놓고
      한 날개 한 몸으로 날고있는 당신을 본다

      빗살무늬 사이의 새 두 마리, 저 한 마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 고추 밭 이윤홍 2006.10.10 270
21 치매 이윤홍 2006.10.10 249
20 부부 이윤홍 2006.10.03 177
» 새 두 마리, 저 한 마리 이윤홍 2006.10.03 338
18 하늘 이윤홍 2006.09.25 181
17 비, 조금은 더 깊어진 침묵 속에서 이윤홍 2006.09.22 265
16 아담 -이브 5- 이윤홍 2006.09.19 260
15 이브 -이브 4- 이윤홍 2006.09.19 126
14 나뭇잎 하나 -이브 3- 이윤홍 2006.09.19 152
13 능금 -이브 2- 이윤홍 2006.09.19 143
12 뱀 -이브 1- 이윤홍 2006.09.19 147
11 물소리 이윤홍 2004.04.01 442
10 헛것 이윤홍 2004.01.27 347
9 나, 불 댕겨버릴까 봐 이윤홍 2004.01.22 493
8 사랑 예보 이윤홍 2004.01.15 474
7 깊고 푸른 밤이 이윤홍 2004.01.10 464
6 새해 아침에 이윤홍 2004.01.04 513
5 목숨 이윤홍 2004.01.02 535
4 새해에는 이윤홍 2003.12.31 343
3 밤의 소리 이윤홍 2003.12.30 359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604,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