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두 마리, 저 한 마리
2006.10.03 14:21
새 두 마리, 저 한 마리
연 아흐래 내리고 있는 비로 하늘이 지워졌다
그 옛날
누군가가 토기에 새기던 빗살무늬를
오늘 저녁 빗줄기가
물먹어 풀어진 풍경위에 굵고 가는 사선(斜線)으로
음각(陰刻)하고 있다
그 사이로 새 두 마리가 날아간다
땅 끝까지 축- 처진 허공을 밀고 나가기가 힘든지
물 속의 내 그림자보다 더 낮게 천천히 날아간다
어둠은 제 시간보다 먼저 사위(四圍)를 덮어오는데
그들의 보금자리는 어디 쯤 있는 것일까
온 길 보다 갈 길이 먼 듯한 저 날개짓
문득 당신을 본다
당신의 아주 작은 허전함조차
채워주지 못하고 지나온 우리의 긴 세월을
그 때문에 오히려 이렇듯 가볍게 여기까지 왔노라고
미소짓던 당신
그 미소의 뒤안에서 쌓이고 쌓이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날을 가슴속에 묻고 또 묻었을까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고
나란히 날고있는
전생(前生)에서 얻은 날개 뚝- 떼어놓고
한 날개 한 몸으로 날고있는 당신을 본다
빗살무늬 사이의 새 두 마리, 저 한 마리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2 | 2월, 짧아서 더 소중한 | 이윤홍 | 2007.02.10 | 459 |
181 | 장보는 남자 | 이윤홍 | 2006.12.17 | 446 |
180 | 물소리 | 이윤홍 | 2004.04.01 | 442 |
179 | 삽 | 이윤홍 | 2006.12.29 | 424 |
178 | 고해성사 - 가시 십자가의 노래 - | 이윤홍 | 2006.12.18 | 416 |
177 | 가로수, 일요일 아침의 | 이윤홍 | 2007.02.03 | 399 |
176 | 그리스도의 목마름 | 이윤홍 | 2007.02.01 | 369 |
175 | 그리스도의 멍에 | 이윤홍 | 2007.02.01 | 367 |
174 | 피의 가게부 | 이윤홍 | 2007.02.03 | 361 |
173 | 밤의 소리 | 이윤홍 | 2003.12.30 | 359 |
172 | 금요일 저녘의 마켓풍경 | 이윤홍 | 2006.12.18 | 354 |
171 | 새해 아침의 엽기적인 그녀 | 이윤홍 | 2003.12.30 | 353 |
170 | 헛것 | 이윤홍 | 2004.01.27 | 347 |
169 | 새해에는 | 이윤홍 | 2003.12.31 | 343 |
168 | 그리스도의 마음 | 이윤홍 | 2007.02.01 | 339 |
» | 새 두 마리, 저 한 마리 | 이윤홍 | 2006.10.03 | 338 |
166 | 마켓에서의 비밀스런 데이트 | 이윤홍 | 2007.02.02 | 319 |
165 | 귀걸이 | 이윤홍 | 2006.11.15 | 319 |
164 | 데스 마스크 | 이윤홍 | 2007.02.02 | 317 |
163 | 그리스도의 벗 | 이윤홍 | 2007.02.01 | 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