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배우기

2006.11.28 10:21

이윤홍 조회 수:830 추천:23

골프 배우기


         골프를 배우기로 했다. 아니다. 골프를 다시 치기로 했다. 십년전 창고에 넣어둔  
       골프가방을 꺼내니 골프채는 없고 거미들만 새까맣게 기어나온다. 분명히 같이
       두었는데. 그러고보니 매일 골프채를 어디선가 보고있는 생각이 난다. 뒤뜰로 가
       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드라이브 1번은 나팔꽃이 휘감고있고 페어웨이 우드는
       토마도가, 아이런 9.8.7.6.5.4.3은 이 꽃 저 꽃 덩굴손 꽃들이 꼭잡고 놓지를 않는다.
         주말마다 아웃도어 장이서는 사이프러스 칼리지로가서 중고채를 사는게 어떠냐
       고 했더니 오프로가 펄쩍뛴다. 중고채 이것저것 아무거나 사서 마구 휘두르다가는
       운동은 커녕 알게모르게 몸의 곳곳에 부작용만 일으킨다는 것이다. 나는 골프채가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 문제라고 우긴다. 박박 우기면서 칼 못쓰는 서투른 칼잡이가
       칼 타령하지 나같은 도사는 녹이 잔뜩 슨 칼만 있어도 명검들고 빌빌거리는 칼잡이
       얼마든지 꺽을 수있다고 했더니 해보란다. 나중에 어디어디가 아프다는 소리만
       하지말랜다. 그 말을 들으니 중고품 사고싶은 마음이 슬며시 사라진다.
         오프로는 독학으로 1년만에 싱글이된, 골프의 천재다. 미셀위처럼 어린나이에
       골프를 시작했더라면 틀림없이 타이거 트리는 되었을 사람이다. 내가 미국에 온
       첫 해에 오프로가 선물로 사준것이 골프채 한 세트와 벤호겐의 "골프기초 다섯단계"
       인가 하는 책이다.
          워낙 운동소질이 유별난 나는 골프에서도 유별을 어김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지 1년만에 오프로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제자를 받아 배움을 베푼중에 나같은 제자는 정말 처음이라는거였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였다면 아, 얼마나 기쁜 일이였겠느냐마는, 나는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오프로의 말대로라면 골프역사이래 무릎이 아파 골프를 중단
       하는 사람은 프로와 아마를 통 털어서 내가 처음이라는 거였다.
          오프로가 구해준 중고 골프채(그것은 핑-아이3였다.)를 둘러메고 나는 다시
       골프장으로 나갔다. 감개가 무량했다. 칼을 놓고 무림을 떠났던 무사가 우여곡절끝에
       다시 칼을 집어든 심정이 이렇다고나할까. 어두운 밤하늘을 쌩쌩 가르며 날라가는
       공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탁- 트이는게 속이 다 시원했다.
          옛날의 보고 배운 기억을 되살려 아이런 7번을 꺼내 잡았다. 순간, 방금 멧돌에 갈은
       칼날같은 예리한 시퍼런 감(感)이 번개처럼 번쩍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프로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 한 마디도없이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무언(無言)의 가르침이라, 좋다. 이번만은 해내리라.
          내가 채 휘두르는것을 보는 친구마다 한 마디씩 안 하는 친구가 없다. 골프채 같다고.
       꼭 내가 골프채 같이 움직인다고. 칭찬인지 아닌지 도무지 감이 안잡히는 코멘트인지라
       언중유골인지, 언중무골인지를 알 수가 없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회심의 미소만
       얼굴가득 지어보인다.
           2달 쯤 지났을 때 나는 갑자기 내가 골프채를 갖고 노는것이 아니라 골프채가 나를
       갖고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 내가 골프채에 끌려다니고 있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오프로도 보기싫고 친구들도 만나기가 싫어졌다. 아흐, 무사의 절망이란
       바로 이런것인가. 나는 골프채를 뒷마당으로 팽게쳐 버렸다. 다시는 골프채를 잡지
       않으리라.
          열흘도 훨씬 넘게 오프로와 친구들의 러브 콜에도 묵묵무답이였던 어느 날 밤 나는
       뒤뜰로 나섰다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아이런 하나를 집어 들었다. 7번이였다. 나는
       그것을 머리위까지 올렸다가 무시무시한 힘으로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온 몸의 힘이
       쭈-욱- 빠지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골프채를 휘두르며
       나무에서 소리없이 떨어지는 꽃잎들과 함께 윤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꽃나무들과 함께 18홀을 18번이나 돌았다.
          친구들이 모두 나를 보고는 힘이 많이 빠졌다고 칭찬들이다. 오프로도 겉으로는
       전혀 내색은 안하지만 나의 스윙폼을 보면서 무척 흐믓한 표정이다. 나는 요즈음
       신이 날대로 나고있다. 오프로가 손짓 몸짓 얼굴표정만으로 알려주는 교외별전(敎
       外別傳)을 단 하나도 빠트리지않고 습득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무척 기특
       하다.
          핑-소리도 전에는 핑- 비음(鼻音)이 났는데 요사이는 핑- 가볍고 맑은 청음(淸音)
       소리가 난다. 예전에는 누가 나에게 잘 하는 운동이 있느냐고 물으면 숨쉬기라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십도 훨씬 넘어 다시 배우는 골프. 누군가가 다시 물으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젊잖게 " 골프, 골프 좀 치지요. " 라고 대답할 꺼다.

       그런데
       아,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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