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는 남자

2006.12.17 08:54

이윤홍 조회 수:446 추천:17

   장보는 남자


   아침일찍 멕시칸 수퍼마켓을 간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온갖 종류의 과일들과 채소들이 신선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고있다. 나는 문 바로 앞에 쌓여있는 오랜지 앞으로 다가간다. 그 중
  하나를 집어든다. 싱그럽다. 과일을 내려놓고 조금은 여유있게 천천히 마켓
  안을 돌기 시작한다. 오늘은 수요일, 매주 수요일마다 이 마켓에서는 청과물
  대 바겐세일을 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손님들이 카트를 끌며 가게안으로
  몰려들 것이고  순식간에 마켓안은  청과물을 사려는 아줌마들로 북새통을
  이룰것이다.
   나는 필요한 물건목록을 적은 종이를 꺼내들고 입구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물건을 고르기 시작한다. 오늘의 아보카드는 정말 크고 품질도 좋아 보인다.
  가격도 이정도면 되 팔기에 아주 좋다. 나는 품목에 적어놓은 곗수보다 몆개를
  더 집어 봉투에 넣는다. 옆에서 같이 아보카드를 고르던 뚱뚱한 멕시칸 아줌마
  가 조금은 신기한듯 힐끔 나를 보더니 씩- 웃는다. 나도 마주 웃어준다.
   이 마켓을 찾아오는 동양인은 거의 없는것 같다. 매주 수요일, 어떤 때는
  하루걸러 이 마켓을 오는데 그 때마다 매장안을 둘러봐도 동양인은 나 혼자다.
  그것이 그들의 호기심을 끄는지 매번 갈 때마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며 지나간다.
  엄마와 딸이 나를 쳐다보며 지나가다가 그만 엄마는 오른쪽으로, 딸은 왼쪽으로
  헤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양배추를 집어든다. 6파운드에 .99센트면 정말 대단한 세일이다. 나는
  필요한 것보다 서너개를 더 집어든다. 가개에서 팔다 남으면 집으로 갖어가면
  될 것이다. 수요일이면 언제나 나는 내가 필요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집어들고, 또 적어간 목록에는 없지만 물건을 보는순간 아하, 이것도 필요하지,
  저것도 필요하지, 하면서 마구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혼자서 속으로 웃는다.
  아내를 탓할일만은 아니구먼. 장보러 가면 늘 아내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꼭 더 많은 것들을 사오게 된다고 모처럼 멀쩡히 앉아 신문보고있는 나에게
  뜬굼없는 불평이다. 꼭 필요한것만 사야지하고 모질게 마음을 먹어도 막상
  마켓에 들어서면 눈에 뜨이는것 마다 다 필요하니 어쩌면 좋으냐고 괜히
  속상해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예 마켓을 하나 시작한게 아님간.    
   멕시칸 파를 사고난뒤 양파를 고르러 간다. 오늘은 빨간 양파, 노란 양파, 하얀
양파 모두 필요하다. 가게안은 벌써 멕시칸 아줌마들로 북적 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카트를 요리조리 조심스럽게 밀며 양파있는 곳으로 간다. 서녀명의 멕시칸
아줌마들이 양파앞을 가로막고 있다. 수다떠는 폼들이 같이 온 일행들인듯 싶다.
뒤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안될것 같아 슬그머니 팔을 앞으로 내민다.
한 아줌마가 돌아보더니 틈새를 만들어준다. 고맙다는 미소를 보내고 양파앞으로
다가선다. 양파를 고르고 있는데 오른쪽 왼쪽의 아줌마들이 바짝 조여온다. 다른
손님에게 또 자리를 만들어 주는 모양이다. 그 바람에 나는 양 옆 아줌마의 저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엉덩이 사이에 끼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양파들이 먼저 웃음을 터트리고 주위 아줌마들도 따라웃고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있는 아줌마들은 더 크게 웃으며 엉덩이에 힘을 준다. 나도 엉덩이에
힘을 주어보지만 어림도 없다.아, 상상해 보시라! 쵸리죠와 세비체* 그리고 온갖
치즈로 뒤룩뒤룩 살찐 여인들의 거대한 히프사이에 꼼짝없이 끼어있는  오척단신
의 대머리진 코리안을.
그래도 나는 전혀 개의치않고 양파를 고른다. 튼실하게 생긴놈이 저만치 있으면
팔을 길게 뻗어서는 오른쪽 왼쪽 아줌마의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그네들도
내 봉지에 아담하게 생긴 양파를 골라 담아준다. 오늘은 양파장사가 잘 될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세라노*를 사러 자리를 옮기는데 우리가게의 바로 뒷 집에 살고있는 엘마가
아이들을 줄줄이 데리고 마켓을 돌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냅다 흔든다.
내가 다가가 "하이"를 하며 아이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는데도 아이들은
무엇이 부끄러운지 엄마뒤로 숨고 카트뒤로 돌고 저 만치 달아나서는 물건뒤에
숨어 수즙은듯 나를 바라본다. 되게 숫기없기는! 꼭 나 어릴 때 나를 보는것 같아
혼자 씨익- 웃는다. 엘마는 내가 여기에서 야채를 사다 되파는것을 알면서도
하루에도 서너번은 우리마켓에 들러 야채를 사간다. 물론 왜 비쌰냐고 물어보는
일은 단 한번도 없다. 엘마같은 단골손님이 한 열 명만있어도 장사하기가 무척
편하겠다.
어지간히 야채코너를 돌고나면 조금 배가 고파진다. 그때쯤이면 저쪽 입구 한
옆에 자리잡은 멕시칸 베이커리에서 굽고있는 구수한 빵냄새가 솔솔 코끝을
간지른다. 나는 야채로 가득찬 카트를 끌고 빵코너로 다가가 방금 막 꺼내다논
따끈따끈한 빵 서너개와 라지 사이즈의 블랙커피  한 잔을 사든다. 그리고는
장 본 카트는 안에 놔두고 마켓입구 밖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로가서 앉아
빵과 커피를 즐긴다. 부드러운 아침햇살을 빵에 바르고 마켓으로 들어서는
아줌마들의 환한 미소를 커피에 타서 함께 먹는 그 맛이란!          
  아침일찍 멕시칸 마켓으로 장보러 가는 일은 즐겁다. 푸른 야채를 보는 일이
즐겁고, 싱싱하고 잘생긴 과일을 고르는 일이 즐겁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나
어릴적 용문동 시장의 아주머니들 같은 멕시칸 아줌마들과 함께 어울려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일이 즐겁다.
오늘도 나는 아내보다 먼저 장보러 집을 나선다.


*쵸리죠,세비체,세라노: 멕시칸 음식과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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