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눈물

2006.12.17 08:59

이윤홍 조회 수:216 추천:14

마리아의 눈믈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조금은 어색한듯 조금은 부끄러운듯 그리고 조금은 더
      당황스러운듯이. 그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외상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길건너 아파트에 오늘 입주했고 대각선으로 보이는 이층창문이
      그녀의 방이며 오늘저녘때 갚을 수 있다고 했다.
         매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안주는 외상이였지만 그녀의 간청이 너무 진지했고
      또 달라고하는것이 계란 한 줄과 우유였으므로 나는 그만 처음 마켓을 찾아온 그녀
      에게 외상을 주었고 그렇게해서 그녀는 첫날부터 나의 외상단골 손님이 되었다.
         사는것이 몹시 힘들어 보였다. 이십도 채안된 나이에 신랑도 없이 두 아이와 노모
      를 돌보는 일이 힘에 부치는것 같았다. 외상으로 물건을 집어들때도 몆번이나망설
      였고 더 싼것이 있으면 그것을 골라 들었다.
         주급을 받는 날이면 아이들과 함께 마켓으로와 밀린 외상을 갚고 장을 보아갔다.
      외상이 너무 밀릴때면 겁먹은듯 잔뜩 몸을 움추리고는 다음 주급일에는 꼭 갚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날이 갈 수록 앳띈 얼굴이
      상해 보였다. 그녀는 너무 일찍 가족부양의 무거운 짊을 짊어지고 삶의 밖으로 내몰
      린것 같았다.
          새해의 어느 날, 밤늦게 큰길을 가로질러온 그녀가 허겁지겁 외상을 달고 나갔다.
      양손에 플라스틱 봉지를 무겁게들고 주춤주춤 두리번 거리며 생(生)을 건너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마켓에 오지 않았다. 마켓문 닫을 시간쯤 밖에나가 바라보면
      그녀의 방에도 불이 켜있었으나 밤낮으로 창문을 가리고있는 커튼은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그녀가 아파트로 난 길을 따라 멀리 떨어진 마켓으로 가는것을
      보곤했다. 처음 얼마간은 그녀가 몹시 괘씸하고 화가났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녀를 이해하고 동정하기 시작했다.
          단돈 $21.97 때문에 이쪽으로 길을 건너오고 싶어도 못건너오는 저 단절감. 마켓
      마즌편 길로만 다녀야하는 저 보행의 서러움. 시원스레 카튼을 열고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저 답답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미안한 마음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내 마켓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져가는 발걸음.
          나는 그녀의 외상을 탕감해 주기로 했다. 그녀보다 그녀를 바라보는 내가 더 불편
      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나 또한 길 건느는 일이 쉽지않았다.
      내일은 내일은 하던것이 흘쩍 한달을 넘기고 말았다. 또 한달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오후의 한가한 시간을 틈타 그녀의 이층방으로 올라갔다. 문이 닫혀있었다.
      수다쟁이 베뜨리아가 나를 보더니 쫒아 올라와서는 마리아가 아파트비를 못내 쫒겨
      났다고 떠들어댔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계단을 내려오다가 멈춰서서는 내 마켓을 바라보았다.
      지금 막 이 아파트에 입주한 그녀가 두 아이와 노모를 방에 남겨놓고 쭈빗쭈빗 나의
      마켓으로 들어서는것이 보였다. 내려오며 다시 올려다본 방앞에는 자물쇠대신 그녀의
      커다란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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