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녘의 마켓풍경

2006.12.18 04:59

이윤홍 조회 수:354 추천:17

    금요일 저녘의 마켓풍경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그들은 돌아온다. 저멀리 지친몸을 끌고오는 긴 그림자
   들이 보이고 집집마다 아파트마다 하나 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하면 잠시나마 마켓
   은 부산스러워진다.
     마켓을 들어서면서 그들은 올라(holla)를 외쳐대고 손을 흔들고 함박웃음을 보이
   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이 마켓안 가득히 채워놓는것은 지린 땀냄새와 하루의
   피로다.
     그들은 잠시 망설인다. 호주머니속 깊숙히 쑤셔넣은 하루치 품삯은 아무리 만지
   작거려보아도 어제와 다를것이 없다. 어깃장 부리는 허리를 달래며 비오듯 쏟아낸
   땀방울의 10/1에도 못미치는 이 호주머니속의 가벼움을 오늘도 그들은 당해내지
   못한다.
     방금 막 썰어낸 시뻘건 생육(生肉)을 바라보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만다. 하여
   그들이 사는것은 거의 매일 똑같다. $1.25하는 또띠아 한 팩과 치즈 한 조각. 두개
   에 $1.50하는 싸구려 캔맥주. 그리고 아이들을위한 .50센트 짜리 스넥 서너개.
   그게 전부다.
     그러나 내일은 공휴일. 옆집에선 아마도 바베큐 파티를 할지도 모른다. 유쾌하게
   떠들어대는 소리와 웃음들. 춤과 음악과 노래쯤은 참을 수 있는일. 그러나 창문
   틈새로 스며들어오는 냄새, 오, 저 냄새만은. 이런날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인가. 마켓을 나서다말고 그들은 돌아선다. 과용은 했
   지만 큰 맘먹고 사든 이 고기 몆점은 오늘밤, 그리고 내일 하루치 행복이 될 것이
   다.
     한 때의 아낙네들이 들어서면서 마켓은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문앞에서 만나
   는 이웃과 인사를 주고받는 걸로 시작해서 그녀들은 안면있는 모든 손님들과
   오늘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나누기 시작한다. 혼자 바빠서 이리뛰고 저리뛰는
   부처(bucher)에게도 연신 말을 건네면서 이것저것 고기를 주문한다. 그녀들이
   데리고 온 고만고만한 크기의 아이들은 마켓안을 온통 휘젖고 다닌다. 매일 올
   때마다 장보러 오는것인지 수다떨러 오는것인지 구분이 안가는 아줌마들. 금주의
   세일품목만 골라 집으면서도 몆번을 망설이는 그녀들. 이웃 마켓과 비교해서 단돈
   몆푼이라도 비싸다는 생각이들면 바구니에 담았던 물건도 가차없이 내려놓고마는
   이 아줌마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귀밑까지오는 커다란 웃음을 보인다.
   마켓안에서 요리저리 달리다 내 앞으로 오는 아이들에게는 부처의 미소로
   하나씩 꼬옥 껴안아준다. 나를위해 그녀와 아이들이 여기 있는것이아니라 그녀들
   과 아이들을 위해 내가 여기있는 것이므로.
     정가표가 붙어있는 야채 한 다발을 집어들고와서는 깍아달라고 조르는 그녀들
   을 보면 나 어린시절 어머니따라 용문동 재래시장으로 꽁치 한 마리 사러갔던
   일이 떠오른다. 어물전 입구에서부터 가격을 물어보고 옆에있는 낮모르는 아주머
   니들이 생선 고르는 일에도 참견하시고 또 다음가게. 그리고 또 다음 가게. 그만
   지루해진 나는 시장전체를 두 바퀴나 돌고 다시 어물전앞으로 왔을때도 어머니는
   양은대야에 생선 몆마리 놓고 앉아있는 할머니와 흥정을 하고 계셨다. 그러고보면
   가난한 한 때를 지나가고있는 아낙네들의 장보는 모습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생각
   이든다.
     술독에 빠진 남편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마리아는 오늘도 눈물 한 바가지는
   쏟아낸 모양이다. 일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살기가 힘들어진다는 그녀는 삼십도
   안된 나이에 오십도 훨씬 넘어보인다. 찬거리 몆개와 고기 한점. 그리고는 빠지지
   않고 집어드는 40온스 짜리 맥주 한 병. 술병을 꺼내오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가난에 폭삭 삭아보인다.
     장보는 아낙네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저녘이 조금 더 깊어지면 또 한 부류의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애인은 있지만 아직 결혼하지않은 아미고들과
   오늘밤은 꼭 걸 프랜드 하나 만들고 싶은 젊은 친구들이다. 이 시간이면 창녀들도
   마켓을 들락거리며 오늘밤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다.
     젊은 친구들의 돈 씀씀이는 기혼(旣婚)층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친구들은 하루
   뼈 빠지게 일해 번 돈을 하룻밤에 다 써버리기도 한다. 내 마켓안에 있는 맥주로
   도 성이안차면 이웃 나이트 클럽으로 몰려가 밤새도록 마시고 춤추고 논다. 내일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없어보인다.
     10시가 지나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진다. 뒤늦게 술을 사러 거리를 가로지러
   달려오는 아미고들마저 떠나고나면 나는 소등을하고 마켓을 나선다. 마즌편 아파트
   의 창문으로 보이는 저 순한 불빛들. 이제 그들도 곧 잠이들 것이다. 오늘 하루치
   가난을 돌돌 말아베고 밤이 주는 위로와 안식으로 정신없이 들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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