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래 산다

2006.12.22 03:42

이윤홍 조회 수:240 추천:17

         산아래 산다


         산아래 섰다
        
         구름 풀어 온 몸 휘감고 서 있는 저 산이
         환하고 둥근 침묵 속
         눈부심으로 서있는 저 산이
         들어오라 부르는 날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녀를 만나고 아이를 얻었다

         산은
         이따금
         막무가내 들어서는 발길을 마다하진 않았지만
         언제나 내 스스로 풀이죽어
         멀리, 참으로 멀리 산을 떠나곤 했었다

         도시로 나와 아이를 키우고
         밥 한 그릇에 목숨 걸며 사는동안
         산을 바라보고
         산을 찾아가는 일이 자꾸만 뜸해져 갔지만
         비틀거리는 귀가 길에도
         산을 잊은적은 한번도 없었다

         사는 것이 물 흐르듯 흐르지 못하고
         사는 것이  무겹고 힘에 부칠 때 마다
         불쑥 다가서는 산에 끌려
         밤새 통음(痛飮)하고 길을 나서기도 했지만
         눈 뜨면 언제나
         도시 한 가운데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생(生)의
         햇살 삭는 순한 하루
         처자를 이끌고 산 아래로 나갔다
         아내는 고사리 캐고
         아이들은 도시로 돌아갈 생각하고 있는동안
         석양 빛 속으로 올려다 본 산
         산 한 가운데로 길 하나 나고 있었지만
         무른 눈 속으로 길 하나 나고 있었지만
         분분한 낙화(落花)사이로 구름다리 하나 나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산아래 서 있다

         이제는 산을 내려놓아야 하겠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2 비, 조금은 더 깊어진 침묵 속에서 이윤홍 2006.09.22 265
141 새해 이윤홍 2007.02.03 264
140 산다고 하는것은 이윤홍 2006.12.20 261
139 아담 -이브 5- 이윤홍 2006.09.19 260
138 여기있는 나는 마음이 없어 이윤홍 2007.01.08 255
137 들여다보면 다 보이는 돌멩이 이윤홍 2007.02.02 252
136 똑바로 서라, 무신론자야 이윤홍 2007.01.08 251
135 치매 이윤홍 2006.10.10 249
134 신용카드 이윤홍 2007.02.03 246
133 이윤홍 2007.01.26 246
132 내 마음의 작은 밭 이윤홍 2007.02.01 241
» 산아래 산다 이윤홍 2006.12.22 240
130 이윤홍 2007.02.02 231
129 정(情) 이윤홍 2007.02.03 228
128 노인, 그 깊은 그늘 이윤홍 2006.12.17 227
127 폐선 이윤홍 2007.02.03 220
126 실직자 K의 첫날밤 이윤홍 2007.02.03 219
125 잡초 이윤홍 2007.02.03 217
124 오늘 하루는 어제와 무엇이 다른가 이윤홍 2007.02.03 216
123 마리아의 눈물 이윤홍 2006.12.17 216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5
전체:
604,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