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을 기다린다

2007.02.01 01:16

이윤홍 조회 수:289 추천:23



              나는 가을을 기다린다





              너를 떠나보낸 여름이 아직도 당나귀 불알 붙잡고 늘어지는
              저 심사 때문만은 아니다
              동쪽으로 떠나온 행자가 목마름에 만난 주막집 처녀의 냉수
              한 그릇에 떠있는 구멍뚫린 낙엽보고 "아, 가을"
              가을을 눈치채는,
              욕십갑자 굴리고 굴려도 도통하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을
              문득 깨닫고마는 저 우둔 때문만은 아니다
              가을에는 누구라도 나의 그대가 되어달라는 어느 시인의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찡-해오는 바보같은 저 유치찬란한
              감상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가을을 기다린다
              서정주 정지용 김소월 김춘수 조병화 김현승 구상 고은  
              문인귀 정인교 백선영 홍혜경 김영교 정문선 오연희
              구루몽 릴케 등등등등
              숨이 찬다
              가을은 이제 색이 바래도 너무 바래 버렸다

              나는 가을을 기다린다
              가을 앞에 서서
              가을로 들어오는 시인들의 가슴을 막아야 한다
              다시는 가을을 노래하지 못하도록
              시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아야 한다
              불을 뿜는 화엄 숲으로 삥- 둘러쌓아
              가을을 보호해야 한다
              아, 가을이여
              아, 가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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