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2007.02.03 01:12

이윤홍 조회 수:122 추천:10

          뿌리


                                                                    

          나무 하나가
          피사의 사탑처럼 절벽 끝에 서 있다
          다가가 바라보니
          5피트도 안 되는 작은 나무다
          그 나무를 받혀주기 위해
          제 몸통 보다 훨씬 굵고 긴 뿌리들이
          절벽을 움켜잡고 있다
          밖으로 드러난 뿌리들이 절벽을 껴안고 있다

          처음부터 자신을 드러낸 것은 아니리라
          바위가, 그들이 힘겹게 뿌리박은 바위가
          백사장의 모래알로 내려서는 모습을 기억했으리라
          자리잡은 곳의 운명을 예감했으리라

         그 때
          뿌리는 긴장했으리라
          끊임없이 지나가는 시간의 어느 한 때
          이 우주의 허허 공간 한 부분을 채우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일이
          결코 예사롭지 않은 일임을 알았으리라

          미처 절벽을 파고들지 못한 뿌리들이
          촉수를 흔들며 허공을 움켜잡는다
          그 힘에 어쩔 수 없이 끌려오는 하늘이
          벌겋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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