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비 내리는 날

2007.02.03 01:19

이윤홍 조회 수:305 추천:14



          사막에 비 내리는 날






          I

          바람이 분다
          사막으로 가는 안내책자를 펼치자 낙타 한 마리가
          다가선다
          속눈썹이 유난히 긴 낙타
          낙타와 함께 3등급 여관이 즐비한 뒷골목을 지나간다
          비릿한 여자 냄새 쉰 알콜냄새 지린 오줌 냄새가
          골목 구석구석을 배회하면서 늦은 밤 취객의 싸구려
          성욕을 자극시킨다
          길바닥에 달라붙은 신문지에서 오늘 하루 눈먼 욕망들이
          쏟아져 나와 온 몸에 달라붙는다
          모퉁이를 돌면서 쓰레기 더미를 걷어차자 생쥐 한 마리가
          튀어 달아난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제 정신을 지닌 놈
          서울의 혼은 어디로 간 것일까
          네온싸인이 휘황찬란한 시내를 벗어나 낙타등에 서울을
          싣는다
          무겁다 땅이 푹 꺼져 버릴 것 같은 무게에 나를 보태지만
          낙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 떠나자 사막으로


          II

          낙타가 팜플렛을 씹으며 와디를 따라 걷는다
          타는 목마름이 땅속으로부터 머리를 내밀고 갈라진 혀를
          사방으로 뻗고있다
          180도의 열을 삼키고 새까맣게 타죽은 뱀이 앞을 가로 막는다
          그 죽음 속에 깃 든 절망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손짓한다
          지독한 현기증속으로 떠오르는 오아시스
          서울을 내려놓고 달려가고 싶은데 모래바람을 용케 견디어온
          모습이 눈에 어려 덜리는 양팔을 벌려 힘껏 끌어 안는다
          어쩐 일일까 사라지는 환상 속에서 비틀거리는 나의 몸을
          서울이 받혀준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서울
          그 안

        
          III

          아 하, 이것이였구나
          곳곳에 넘쳐나는 바보온달이
          마음은 가로수에 걸린 줄도 모르고
          대로를 활개치며 걷고있지만
          그들을 사랑해줄 평강공주는 없어
          바보들이 마냥 바보가 되어가는 오늘
          저기 수로부인은 기다리고 있는데
          선뜻 나서 꽃 한 송이 바칠이 하나도 없어
          기다리고 기다리는 그 긴 세월을
          노인은 어디서 꽃을 따고 있을까
          나의 친구 처용이 돌아온다면 그가 돌아와
          밤새도록 서울장안 훠이훠이 휘 저으며 춤을 춘다면


          V

          와디가 사라진 곳에 서울을 내려 놓는다
          뜨거운 열기가 하늘 끝까지 달아오르며 사막이 타 들어간다
          서울을 덮고있는 허상들이 쩍-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터져 나간다
          불꽃이 솟아오르며 500도 화주를 들이 붓는다
          오, 저것은 서울의 혼을 부르는 불사조의  몸짓이다
          오, 저것은 서울의 혼을 부르는 처용의 춤이다

          VI

          바람이 분다
          모래색깔이 빠르게 변하고
          시시각각 사막의 얼굴이 바뀌어갈 때
          지평선 너머로 몰려오는구름.구름.구름.
          우르르우르르 물 끌어 모으는 소리
          번쩍번쩍 물길 트는 소리
          불타버린 잔해들이 모래속 깊숙히 살아진다
          와디가 굼틀거리며 살아나 서울 한 복판을 흘러간다
          팜플렛을 다 먹어치운 낙타가 사막 저편으로 살아진다

          VII

          명동에서 평강공주를 만나는 날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있는 낙타를 보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2 사막이 사막인 이유 이윤홍 2007.02.03 180
» 사막에 비 내리는 날 이윤홍 2007.02.03 305
140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습니다 이윤홍 2007.02.03 163
139 사랑이 왔다 이윤홍 2007.02.03 161
138 뿌리 이윤홍 2007.02.03 122
137 빗속에서 이윤홍 2007.02.03 160
136 빗소리 이윤홍 2007.02.03 192
135 불륜 이윤홍 2007.02.02 283
134 이윤홍 2007.02.02 147
133 이윤홍 2007.02.02 156
132 베드로 이윤홍 2007.02.02 133
131 벌래 이윤홍 2007.02.02 167
130 백곰 이윤홍 2008.02.14 612
129 당신의 판소리엔 길이 없다 이윤홍 2008.03.19 964
128 삼월 -1- 이윤홍 2008.02.26 545
127 발자국 이윤홍 2007.02.02 126
126 발보다 낮게 엎드려 -세족례- 이윤홍 2007.02.02 173
125 바람의 힘 이윤홍 2007.02.02 193
124 바람 털 이윤홍 2007.02.02 148
123 바람 이윤홍 2007.02.02 151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5
전체:
604,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