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제, 부르노

2007.02.14 02:17

이윤홍 조회 수:470 추천:44


           나의 사제, 부르노




책상위에 조금은 빛바랜 겉표지가 검붉은 오래된 작은 사진첩이 있습니다.
안쪽 한 면에는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우리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신 성모님이
다소곳한 자세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안쪽 다른 한 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쓰여 있는 증서가 한 장 꽂혀있습니다.

            축
        영       세

이 부르노!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 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 하십시오.
        데살로니카 전서 5,17-18
하느님의 자녀됨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1989, 3, 25일 부활 축일에
                노 신부
                 Myles A Roban

부르노 사제.
나는 부르노 성인을 모릅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분의 소식을 들은 적도 없고 만나 뵈 온 적도 없습니다.
그 분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아주 미미한 단 몇 줄의 설명뿐.
그러나 그 분이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부르신 그 날부터
나는 그 분과 하나가 되었고
나는 그 분의 아들이 되었고
나는 그 분의 제자가 되었고
나는 그 분과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나는 은총과 사랑 속에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부르노 사제와 내가 하나의 몸, 하나의 마음이 된 그 때부터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분을 찾아갑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낮이고 밤이고 그 분이 생각날 때에는
어느 때고 그 분을 찾아갑니다.
삭막하고 험악한 지형과 나쁜 기후 그리고 무엇보다도 쉽게 찾을 수없는
길 없는 길을 따라가노라면 문득 눈에 들어오는 저 작고 무섭게 폐쇄된
침묵과 가난 속에 광야의 한 점 바위로 서있는 수도원.  
소수의 인원만이 허용되고 각자 조그만 독방에 기거하면서 평생토록
성경을 필사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은둔자들의 은신처.
그 곳에서 나는 부르노 사제를 만납니다.
그 분을 만나 “사제님, 제가 왔어요.”하고 인사를 드리면 그 분이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오, 부르노가 왔구나. 어서 오너라.”
나는 부르노 사제와 마주앉습니다.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나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계신 분.
내 세례명이 불리 울 때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부르시는 분.
나는 그 분을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그 분의 이름으로 다시 태여 난 나를
생각합니다.
나를 생각하는 것은 곧 그 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나는
그 분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분을 닮으려고 애씁니다.
그 분과 함께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자 힘써 기도 합니다.
나는 부르노 사제의 이름 속에 담겨있는 또 하나의 부르노입니다.
나는 내 세례명이 불리 울 때마다 부르노 사제와 함께 불리우는 부르노입니다.

“만일 항상 관상 생활에 대한 어던 불만이나 의문이 있다면 카르투시안들이
실천한 공동체 생활과 은수생활이 극도의 참회정신으로 결합된데 대해서는
더 큰 수수께끼가 된다.“

“전적으로 관상을 목적으로 하여 그 회원이 고독과 침묵중에 부단히 기도하여
자진 보속하며 하느님에게만 의지하며 사는 회는 아무리 행동적 사도직의
필요가 절실히 요청될지라도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있어서 항상 뛰어난 역할을 담당한다.(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 7항)“

* 부르노 사제는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적은 없으나 교황 클레멘스가
  1674년에 그의 축일을 온 교회에 공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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