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오늘:
1
어제:
1
전체:
281,054

이달의 작가

 

 

〈촌평〉

정희성 시인 / 한영옥 시인

                                             

정희성 45년 경남 창원 생. 시인 서울대 국문과 졸업. 70년〈동아일보〉신춘문예 시「변신」당선. 시집〈답청〉74.〈저문 강에 삽을 씻고〉78.〈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91. 〈시를 찾아서〉등.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 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 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싸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얼음을 꺼야 한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의 전문

                                       - 1 -

  정희성 시인은 현실에 매우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가지고만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예리하게 벼려서 현사(現寫)하여 현실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위 시에서 보듯이 쉽게 비유(metaphor)된 '한밤', '얼음', '물고기' 등은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현실을 담고 있는 매체들이다. 여기서 이 얼음을 꺼야 한다. 그래야 내가 바라는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눈을 감지 못하는 물고기는 싸우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나의 친구와도 연결되고 있다. 이는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벗어나려는 불굴의 힘이다. 이 힘으로 얼음을 꺼야 한다. 이 얼음이 바로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이다. 여기서 싸우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나의 친구는 얼음 밑에서도 숨을 쉬는 물고기 같이 어려운 환경을 이기며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내가 누려야 할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하고 있다.

 19세기 후반의 바이런, 보들레르 등의 비판적 사실주의자들은 역사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입장에서 현실비판에 용감성을 내비쳤다. 외부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시인 자신의 내면의 정신과 감정은 자신이 처해있는 사회현실과 인간관계를 냉철하게 비판 분석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불굴의 시정신으로 불의에 칼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을 한국시에서는 현대적 특성이 농후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8 ․ 15를 전후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이에 이육사 윤동주 김수영 시인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샛강바닥 썩은 물에/달이 뜨는구나/-〈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부분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아직도 돌을 들고/피 흘리는 내 아들아/-〈아버님 말씀〉의 부분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풀을 밟아라/밟으면 밟을수록 푸른/풀을 밟아라/-〈답청〉의 부분

/너는 죽고/죽어서 마침내 살아 있는/이 산천/사랑으로 타고/함성으로 타고/마침내 마침내 탈 것으로 탄다/-〈진달래〉의 부분

/그가 돌아오지 않는 땅에서 사는 내가 무섭다/그러나 나는 결코 잊지 않는다/오, 기억하게 하라/우리들의 이름으로 불러보는/자유, 나의 조국아/-〈不忘記〉의 부분

 위에 보인 시의 부분들에서 우리의 가까운 역사적 현실이 보이지 않는가! 이렇듯 정희성 시인의 시세계는 명징하게 들어나 있다. 시인은 시인 자신의 상상력이나 사고력의 역할에 의해 그 느낀바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다. 외부 사물을 시인의 상상과 결부시켜 시인의 내부로부터 다면화하여 밖으로 표출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외부적 사물→ 시인 상상의 세계→시적 표현에 이르게 된다.

 정희성 시인의 시에는 사회적 현실성과 역사성 위에 서정성이 짙게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큰 감동을 준다. 이는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아픔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유에서 자유를 찾는 일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이런 류의 시를 멀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2 -


한영옥 1950년 서울 생. 시인 성균관대학원국문과(문학박사).〈현대시학〉73년 천료, 한국예술비평가상 수상(97년) 천상병상 수상(00년) 성신여대 국문과 교수. 시집〈적극적 마술의 노래〉79년. 〈처음을 위한 춤〉92년. 〈안개 편지〉97년.〈비천한 빠름이여〉01년.


불붙는 적의로 떨리는 눈

치켜뜨고

무서운 힘으로 부푼 손바닥

치켜 올리고

천천히 천천히

오랫동안 그의 살을 파먹은

철천지원수에게로

다가선, 바싹 다가선

주인공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내려치려던 칼 같은 손바닥

구름처럼 부드럽게 띄우며

원수의 어깨를 깊이 끌어안는,

그런 뒤집어엎음이여

그렇게 뒤집어엎으라고

연방 꽃피고 잎 돋는 것들이여

분홍, 연두, 분홍, 연두

그 간절한 되 뇌임이여.

                        -〈분홍, 연두〉의 전문


 한영옥 시인의 여러 시편 가운데서 〈분홍, 연두〉한편을 택했다. 참신한 이미지와 그 구사가 매우 돋보였기 때문이다. 분홍, 연두는 색깔이다. 시인이 살려낸 시의 nuance는 예사

                                       - 3 -

롭지 않다. 그 대상물의 색채라든가 형상을 사실 그대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정신 속에서 분해되어 새로이 창조되는 미적(美的) 작업의 비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는 묘사된 회화라고 일컬어지는 까닭을 알게도 되고 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거나 개인의 심상에서까지 우러나는 시의 사회성을 여기서도 발견하게 된다.

 분홍과 연두는 '뒤집어엎음'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피어나는 이유를 갖고 있다. '철천지원수'의 어깨를 깊이 끌어안음이야말로 극적인 변화의 뒤집어엎음이다. 이로써 시인은 잘못된 사회, 인간관계를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혁의 도구는 총이나 칼이 아니라 꽃이다. 꽃이 피워내는 분홍과 연두이다. 그러므로 분홍과 연두는 인간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 아닐 수 없다. 꽃은 자꾸 피어야 한다. 그래서 분홍과 연두를 끊임없이 분출해내야 한다. 인간에게도 분홍과 연두가 있다. 사랑, 이해, 관용, 인내에서 인간의 분홍과 연두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시인이 손짓하는 metaphor이다.

 시는 "인생의 비평"이어야 한다는 영국의 비평가 아널드의 말이다.〈분홍, 연두〉는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비유가 제시하는 사물에 대한 암시의 깊이와 얕음에 따라 그 시의 가치가 정해진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만큼 비유는 시에서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분홍, 연두〉를 색깔로 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인생을 파고들어 그 속성에서 〈분홍, 연두〉를 찾아야 할 일이다. 

 /그대여, 구름이여./여기 남아 함께 울자/이상하게도 맑아가는 이 저녁에/ -〈구름 앞에서〉의 끝 연에서 보이듯이, 또 다른 시들에서도 한영옥 시인은 그의 시심을 자연에 기대어 나타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는 한영옥 시인 시세계의 단면이다. 이런 점은〈분홍, 연두〉와도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보인〈분홍, 연두〉는 극히 아름다운 시심에 세련된 표현기법의 조화로 이채롭게 번득이고 있다. (3-28-11 미주시협 세미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0 종교개혁 500 주년에 즈음하여(II) paulchoi 2017.08.13 149
89 종교개혁 500 주년에 즈음하여(I) paulchoi 2017.08.13 16
88 이육사(李陸史 1904-1944)의 <광야曠野> paulchoi 2017.08.05 31
87 눈물 속에는 미소가 있다- 방동섭 시집 [1] paulchoi 2017.07.04 168
86 7월의 언어 paulchoi 2017.06.30 32
85 조국에 바란다 [6] paulchoi 2017.06.17 230
84 표절설교/은혜설교 [1] paulchoi 2017.06.12 536
83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3] paulchoi 2017.06.01 326
82 시인과 문학-목회와 시 사이-조옥동 시인, 문학평론가 [4] paulchoi 2017.02.20 207
81 히브리문학에의 접근(II) [1] paulchoi 2017.01.30 363
80 문금숙 시인의 시 감상-최선호 paulchoi 2017.01.16 291
79 도서산책: 구약 성서인물에게서 듣다-이상명 지음- 최선호 최선호 2016.12.24 124
78 도서산책: <우리 함께 걸어 행복한 그 길> 송정명 목사 지음-최선호 최선호 2016.12.24 133
77 <축사> 김수영 시집 <바람아 구름아 달아>의 향기로움-최선호 [1] 최선호 2016.12.15 356
76 <축사> 하나님 안에서 인생과 자연을 사유하는 방동섭 시인-최선호 최선호 2016.12.10 238
» <촌평〉 정희성 시인 / 한영옥 시인 - 최선호 최선호 2016.12.10 433
74 <강좌> "성경을 인간의 문학과 동일시 해선 안 돼" - 최선호 최선호 2016.12.10 138
73 <평론> 재미 곽상희 작가가 꿈꾸는 남북통일의 꿈 - 최선호 최선호 2016.12.10 109
72 <나의 생각>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신앙민요”일 것 - 최선호 최선호 2016.12.10 194
71 <시평> 최선호의 시 "사도행전" - 송기한 시인 최선호 2016.12.10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