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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현대를 사는 우리의 방향

2016.12.15 05:55

최선호 조회 수:55

 

 

현대를 사는 우리의 방향

 

 

 

 

 전통적 도덕적 절제를 거부하는 미국의 몸짓이 노골화 되면서 안정을 저해하는 요인들이 편만하여 우리의 생활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경제 불황에서 오는 악조건 말고도 지난 88년엔 미국의 공적 제반 행사에 기도순서 생략, 90년엔 학교도서관 등에 성경 또는 성경과 관련된 서적을 제거하도록 미국법원이 결정을 내렸는가 하면 92년엔 빌 클린턴 대통령 후보자 공약에 ‘동성애자 군복무 허용’이 고개를 들었으며 의료보험으로 낙태를 조장하는 분위기까지 부채질하고 학교와 교회에서 콘돔을 배부하는가 하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마구잡이로 쏘아 죽이는 이 현실. 게다가 도덕이나 종교적인 가치는 오히려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마는 이 난국을 개탄치 않을 수 없다.

 소위 미국 대학을 대표한다는 Harvard에서는 보수 전통적 신학이 자유화 되고 Wall Street의 제도와 관례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몽롱하게 어지럽혔으며, 배급사상의 노예로 전락하는 맹종으로 이끌려왔다. 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 정가에 등장한 상 . 하의원들은 미국의 도덕적 절제(Moral Restraint)에 대해 대부분 비판적 시각에 혈안이 되고 현 대통령도 이들의 요구를 체계적으로 수용, 집행코자 계획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4.29 시태의 경우라든지 소수계 민족을 푸대접하는 미 주류 언론 및 이따금 제작해 내는 영화 따위를 보더라도 소수민족의 복지를 위한 예방책이나 사후처리가 거의 전무한 상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가 점점 어렵게 되고 따라서 개인의 신분이 자꾸만 위축되는가 하면 세속주의는 기독교 목회 및 선교사역의 영역에 종적으로 횡적으로 방해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미국은 청교도 정신과 개척정신이 결합되어 시민정신의 싹을 내고 거기서 민주주의가 형성되어 역사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19세기 말엽 또는 그 이후 20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현대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 및 기구주의(Instrumentalism)의 경향을 뚜렷이 나타내면서 실용주의 사상이 구석구석 깔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개인주의가 팽배한 나머지 이웃과 이웃 사이에 헐어낼 수 없는 담이 쌓이고 물욕에만 눈이 어두워 벼라별 기현상을 다 저지르고 있다. 또한 마약, 음주, 성범죄, 사기, 절도, 차별 등, 나열하기조차 어려운 범죄 행각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이런 세기말적 현상들이 치유의 맥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팽배하여 기승을 부리는 판도에서 과연 “말세구나!” 하고 감상(Sentimentality)에만 젖어 있을 것인가.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가치를 내가 내 자신에게 부여해야 한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가지 선한 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 한다는 인생관의 확립이 요구된다. 뒷짐 지고 어정대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처럼 인류를 위해 전체를 내놓는 생애를 본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개인과 개인이 모인 가정, 가정과 가정이 모인 교회, 교회와 교회가 모인 교단 교단과 교단이 모인 단체로서의 본래의 사명을 찾아 그 존재가치를 발현해야 한다.

 섣불리 성경을 안다는 이들이 겁 없이 복음의 가변성이나 내세워 현실에 영합하려는 미련함, 정치성이 배제된 순수한 복음운동을 뒷전으로 미루고 정치의 노예가 되어 복음을 팔아넘기는 일은 없는지, 조용히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시면서 “가나안에 동화 되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약삭빠르게 미국에 동화되기보다는 미국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일이 비로 우리의 사명이다. 미국의 노골화된 몸짓을 제도나 법, 총이나 칼로 구제할 수는 없다. 마지막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복음뿐이다. 복음으로 미국을 정복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그러자면 우리 모두가 성경을 바로 알고 정확하게 가르치는 운동을 먼저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구축과 확장을 지속적으로 펴나가자면 하나님 말씀에 충실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기독교신학에 위배되는 문제들을 바로 잡고 우리들 주위로부터 이것들을 깨닫게 하는 사역의 확산이 요구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우리가 먼저 삶의 변화를 체험하고 기독인으로서의 믿음의 본을 보여야 겠다. 그럼으로써 성경공동체를 통한 세속치유 및 인본주의 사고에 과감한 수정작업을 펴 나가야 겠다.

 다음으로 기독교 사상은 여타의 사상과 영합 또는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상이든지 정복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들을 이루어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 교회와 기독교 제반 기관이 말씀 안에서 연합하는 운동이 선행되어야 겠다. 속세를 향해 복음의 불을 질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바른 신학 아래 믿음의 체질화, 행동화를 이루면서 공동체를 구성, 인류 복음화에 앞장서는 것이 가장 바르고 빠른 길이다.

교회는 주님의 것이다. 그 귀한 사명을 잃고 세속의 것으로 존재하고 있다면 우리 주님 또 눈물을 흘리시지 않겠는가! (199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