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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회개 없는 용서 없다

2016.12.15 06:32

최선호 조회 수:212

 

 

회개 없는 용서 없다

 

 

 

 구한말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맞서서, 우리 민족은 전통문화의 수호와 보전을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반도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려 했던 일제는 마침내 러시아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고 이를 미끼로 한반도 전역을 삼키려는 의욕을 드러냈다.

 선전포고와 동시에 2개 사단을 한반도에 파견하여, 서울을 비롯한 주요 지역을 군사기지라는 명목으로 점령하고 강제로 한.일 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여 외교,재정,군사,경찰,학부,궁내부 등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것이 1904년의 일이었다. 이어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여 외교뿐 아니라 내정까지도 깊숙이 관여하였으며 초대 통감으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하였다.

 일본의 국권침탈은 한국민의 의사를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감행되었다. 이를 반대하는 대신들을 협박하고 매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대를 풀어 전국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고종황제는 이에 맞서 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등을 특사로 파견하여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온 세계에 규탄하였다. 일제는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여 대한민국의 각부 차관을 일본인으로 임명, 실제적인통치권을 행사할 뿐 아니라 우리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버렸다.

 그들은 우리의 경찰권과 사법권을 뻬앗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까지 박탈하여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1910년의 일이었으니 이제로부터 꼭 100년 전의 일이다.

 이로부터 우리 민족은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굴욕과 압박에 매이게 된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울고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세월을 보내왔는가?

 침략주의와 강권주의를 밥 먹듯 자행하면서 외침에 능했던 일본은 힘없고 나약한 민족이라고 멸시와 천대를 일삼으면서 남자들은 징용으로, 여자들은 정신대로 끌어다가 노예처럼 부렸다.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려 들었고, 심지어 학교 운동장까지 갈아엎었다.

 정치적 탄압, 경제적 착취, 창씨개명 강요, 재산과 자원의 몰수, 뿐이랴! 무기제조에 혈안이 되어 쇠붙이 공출을 강요하고 심지어 성당의 종까지 떼어놓던 그 잔인한 모습을 무엇으로 씻을 수 있을까.

 가정을 지키며 자녀를 키워야 할 주부들을 쉬는 날도 없이 강제노동을 시키고도 부족해 수원 제암리까지 찾아가서 예배당 문을 봉하고 불을 질러 교인들을 화장하고도 진정한 참회와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자들이 일본인이다.

 신사참배와 황국신민 노릇을 강요하고 민족의 가슴에 어려 있는 신앙적 영성과 사회적 지도력마저 상실시키고 억압과 비판을 포승으로 묶었던 그때를 상기해 본다.

 그래도 우리는 일본을 용서하고자 했다. 개인은 개인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일본의 오만함을 보고도 이웃의 정을 나누려했던 게 우리 민족이다.

 그러나 용서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회개하는 자에게 주는 값진 선물이 바로 용서이다. 일본이 우리를 짓밟던 세대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지만 일본의 죄과는 그대로 남아 있다.

철저한 회개 없이는 100년이 아니라 1000년이 지나도 그들의 죄과는 용서받지 못한 채 역사의 갈피에서 떠돌고 있을 것이다. (2010.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