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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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인간 바이러스

2020.03.27 11:50

이산해 조회 수: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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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죽음의 승리" 피터 브리겔 作



"이 재앙(페스트)이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함이었소.”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LA Peste)’에서 파늘루 신부가 강조한 대목이다.

 

흑사병(黑死病)


지난 14세기 때 유럽을 휩쓴 끔찍한 전염병이었다.

흑사병은, 25백만 명의 유럽인을 떼 주검으로 몰았다.

이 염병(染病)으로 유럽의 인구 3분의1이 줄었다.

 

흑사병이 창궐(猖獗)하자 민심이 흉흉해졌다.

사방도처에서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애꿏은 유대인들만 피해를 입었다.

이들이 병을 퍼뜨렸다는 이유였다.

 

뿐만 아니다.

온갖 미신(迷信)이 판을 쳤다.

주술과 푸닥거리, 동물 내장을 이용한 점쾌 등

 

흑사병으로 아수라장이 되자 교회는 돈벌이에 나섰다.

교인들은 흑사병을 하늘이 내린 천형(天刑)’’이라 생각하고 체념했다.

그러고는 죽어서라도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를 눈치 챈 교회가 기발한 아이디어에 착상했다.

행운의 부적이란 천국행 티켓을 판 것이다.

교회는 종이쪽지에 불과한 티켓을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흑사병이 휩쓸고 간 거리 곳곳에는 시체들로 넘쳐났다.

널브러진 인간 시체들은 시궁창 쥐들의 먹잇감이 됐다.

그리고 인간 시체를 먹은 쥐들은 전염병 균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이는 유럽 전역이 페스트 균에 노출된 계기였다.        

 

한편 부르주아 계급 인사들은 썩은 시체에서 발현하는 고약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고급 향수를 뿌려댔다.

향수는, 농노들이 봉건 영주들에게 받는 품삯보다 수배에 달하는 사치품이었다.

 

흑사병의 파급력이 갈수록 기승을 더하자 주민들은 도시를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특히 노동인력을 필요로 하는 농촌의 인구 이동은 더욱 심각했다.

 

농민들의 수가 대폭 감소한 농촌은 날을 거듭할 수록 경작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노동력을 상실했기때문 였다.

 

흑사병은 유럽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등 악순환을 거듭했다.

 

이처럼 사회 기반을 지탱하는 기층민 인력이 대폭 감소하자 전혀 예상치 않은 급변(急變)화가 생겼다.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과시하며 기층민 위에 군림 했던 토호(土豪)들이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교회의 무소불위도 무너졌다.

 

민중들은 더 이상 토호들의 싸구려 노예가 아니었다.

또 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으로 부터 자유로워졌다.

 

토호들의 몰락과 교회의 권위 실추는 자본주의와 인본주의라는 새 패러다임을 초래했다.

신의 저주라고 했던 흑사병이 고통과 함께 가져다 준 뜻밖에 선물이었다.

'신은 때때로 뛰어난 지혜와 행복을 고통의 보자기에 싸서 인간 세상에 내려 보낸다' 했다.

 

흑사병의 감염경로처럼 유럽에 퍼진 인간중심의 인본주의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메인스트림으로 확고하게 자리 매김했다.

메인스트림은 르네상스의 일란성 쌍둥이였다.

 

르네상스는 흑사병의 피해가 극심했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동했다.

그리고 르네상스는 우울하고 어두운 기억(흑사병)을 문예부흥이라는 찬란한 빛으로 몰아냈다.

 

레오나드 다빈치, 에라무스, 세르반테스, 세익스피어 미켈란젤로 등 문화 예술가 거장들과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는 르네상스의 세례를 받은 동시대의 천재들이었다.

 

유럽인들에게 지옥의 맛을 단단히 보게 한 흑사병은 인간의 교만함을 일깨웠다.

그리고 인간을 무지와 속박으로부터 해방 시켰다.

 

공포와 저주가 가져다 준 아이러니였다.

 

흑사병은 14세기 때, 흑해의 항구도시 카파를 침공한 몽골제국의 칸이 병법을 쥐어짜낸 결과물이었다.

본명이 자니베크인 칸은 몽골제국 킵차크 칸국의 10대 황제였다.

 

흑사병의 가공할 파괴력을 알고 있던 칸은 흑사병으로 사망한 몽골군사들의 시체를 투석기에 실어 성안으로 날려보냈다.

칸이 세균전을 펼친 것이다.

 


흑사병은 매우 가파른 속도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스트리아, 댄마크 등 전 유럽을 휩쓸며 떼주검을 양산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이동 경로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쥐떼와 비행기가 실어 옮겼다는 차이가 있을 뿐.

 

1347년 유럽에서 창궐한 흑사병은 발병 5년 후인 1351년이 돼서야 비로소 진정됐다.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은 25백만 명의 인구감소를 회복하는데는 무려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인간의 지혜가 하늘을 찌른다는 21세기 광학문명(光學文明)시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위력은 어떤가?

 

코로나19는 중국 우환에서 발병돼 전세계로 확산됐다.(물론 중국정부는 펄쩍 뛰며 미국의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있다)

코로나191년이 지난 3월 27일 현재 지구별 전역을 휩쓸며 인간벌레들을 공포에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시정인(市井人)들은 코로나192의 흑사병 창궐이라고 비유했다.

날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전염 속도 역시 지난 14세기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진단이다.

 

지역 확진(確診)이 가파르고, 갈수록 사망자 수도 대폭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설마 흑사병 때처럼 수천 만명이 떼 주검을 당할리는 없겠지만, 결코 방심할 수는 없다.

 

우연찮게 14세기 때도 페스트 발병으로 곤욕을 치룬 이탈리아가 또 다시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최첨단 의료 시스템을 갖춘 선진국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이다. 

빠른 속도로 수많은 확진자가 속출 했고 또 한 죽어 나갔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가 최근에(324)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 전체 누적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는 최소 20만 명이며, 사망자수도 1만 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유럽은 현재 지구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48,3%, 사망자수의 61,4%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작금의 유럽은 제2의 흑사병(패스트)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어떤가?

한마디로 매우 심각하다.

 

오늘 자(3월26일)로 미국은 세계 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국가가 됐다.

 

존 홉킨스대학이 26일에 발표한 미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 통계에 따르면 모두 8 50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128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세계 1위였던 중국(81782)을 제친 수치다.

 

전세계 감염자 수는 26일 현재 471000명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현재 확진자 수가 하루에 1만명을 초과하고 있다.

가파른 통계다.

 

현재 미국내 신규 확진자의 6%는 뉴욕과 인근 메트로폴리탄 지역(뉴저지, 커네티컷 주)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 미국내 코로나19 전체 환자수 56%도 뉴욕과 주변 도시에서 파생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로 인한 미국내 전체 사망자수의 31% 역시 뉴욕과 주변 대도시권역에서 발발(勃發)한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한창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남의 집 개싸움 구경 하 듯 느슨한 태도였다.

 

헌데, 코로나19가 대한민국과 일본, 유럽을 순식간에 전염시키자 화들짝 놀란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파발마(擺撥馬)에 비상시국임을 암시하며 염병 차단에 나섰다.


그러나 코로나19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파발마를 비웃기라도 하 듯 국경선을 넘어 워싱턴 주()를 휩쓸며 미 전 지역에 바이러스를 흩뿌렸다.

 

그 결과 미국인들이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악몽이 전개됐다.

위 행간에 나열한 수치들이 그것이다.

 

현재 뉴욕을 비롯한 천사의 도시 LA와 시카고, 메릴랜드, 버지니아 등 미국내 주요 대도시에서는 주민들의 외출금지가 공지했다.

미국내 15개 주와 30개 지방정부에서 주민 16600만 명에게 ‘자택 대기’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따라 미 전체 인구(32700만 명)51%가 영향권에 들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절반이 셧 다운하고 경제 동력을 멈춰 세우면서 예기치 않은 실직자가 급증했다.

코로나19 발생초기에 커다란 피해를 입은 캘리포니아의 경우 100만 개 이상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 1929년 대공항금융위기와 1970년 오일 쇼크 때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코로나19가 퍼뜨린 사회혼란 여파는 미국내 한인사회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사회활동일시금지 조치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들과 일용근로자 등 주로 한인들을 상대로 하는 이들의 금전적 피해다.

물론 이같은 노동력 금전적 손실은 비단 코리안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미국내 여타 민족들 역시 코로나19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 한 상태다.

 

일부 재력가들을 제외한 대다수 한인들에게 있어서 코로나19 쇼크는 말그대로 악재일 것이다.

 

허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했다.

이 기회를 틈 삼아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새로운 추동력(推動力)이 될 것이다.

 

진부하게 느낄 수 있겠으나, 인간 세계는 복음서와 경서(經書)에도 기록돼 있듯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재앙이 반복되고 있다.

재앙은 인간들이 빚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다.

전쟁과 / 기근(飢饉) / 염병(染病) / 자연재해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태껏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도 재앙을 극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

흑사병의 결과물인 르네상스와 세계2차대전이 낳은 광학문명은, 재앙이 가져다 준 인간승리 였다.


코로나19는 대한민국에서 치뤄지는 4.15 총선 재외국민 투표를 사실상 무효화 시켰다.

주정부가 발동한 자택 대기 행정명령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특정 후보 낙선운동을 공공연히 벌여 온 일부 한인들은 허탈한 심정으로 총선 결과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렇듯 코로나19의 위협으로 미국내 대부분의 도시가 장기간 셧다운 될 기미를 보이자 다혈질인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 파발마를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적과 역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전투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부활절 전에 미국을 재가동하고 싶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의에 찬 파발마가 전송에 실려 퍼지자 주변 인사들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에 열이 받친 트럼프가 재차 파발마를 띄었다.

이 나라는 셧다운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이렇게 운을 뗀 대통령은 손사래를 친 상대를 향해 훈계조로 덧붙였다.

자동차 사고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지만, 그렇다 해서 운전을 금지 하지는 않는다.”

 

자칭 만물의 영장이며 우주를 관장한다는 지구별 인간벌레들이 보이지 않는 적을 대치한 상태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였다.

뒤늦게 나마 적을 무찌를 백신을 개발한다고 하나 그마저도 용이하진 않을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엄청난 시련을 겪은 대한민국 사회는 바이러스의 고통을 감내(堪耐)하며 높은 시민의식을 지구별에 알렸다.

▲헌신적인 의료봉사와 ▲확진자들의 솔선수범 그리고 사재기가 없는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들의 반듯한 매너 마스크 파동을 의연하게 대처한 일 등 대한인(大韓人)들의 성숙된 모습이 코로나19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세계인들이 대한인(大韓人)의 기개(氣槪)를 높이 평가한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한편 코로나19로 곤욕을 치루고 있는 미국도 사재기와 인종혐오 테러 등 몇몇 불손한 꼴불견을 제외하곤 비교적 무난한 시민사회의 동정(動靜)을 보이고 있다.

 

우선 주목할 만한 변화는 극성스런 사재기 열풍이 점차 수그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도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마켓에서는 사재기 현상으로 생필품이 조기에 품절 되는 등 꼴사나운 광경이 이어지고 있다.

 

허나, 이같이 잘못된 파렴치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

날을 거듭할 수록 생필품 생산자와 유통업자들이 사재기 혼란을 가급적 줄이기 위해 제품 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한편, 유통의 확충을 극대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빵을 구입하기 이른 새벽부터 마켓 앞에 진을 치고 줄을 서야 했던 코로나19 창궐 초기와는 달리 3월 하순 현재는 다소 늦은 시각에도 마켓 매장 빵 진열대에서 원하던 빵을 구입할 수 있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이는 상당수 미 현지인들이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매너가 성숙 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코로나19는 독서 열기를 전염시키는 역효과(?)도 낳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뉴스공급원인 AP통신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외출 금지가 시행되자 뜻하지 않게 집안에 갇힌 주민들이 독서에 탐닉하며 무료한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마존 등 전자책(e-BOOK)구매 온라인 매체들은 최근 들어 가파르게 급 상승세를 보이는 전자 책 판매실적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보도가 뒤따른다.

 

글쟁이인 필자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참에 기회를 빌어 권유한다책 좀 읽으시라는 당부(當付).

한시도 스마트 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코리안들.

마약과도 같은 스마트 폰을 잠시 접어두고 시선을 책에 가져가시라.

책이, 삼국지이건 또는 길치 인생을 위한 우회로이건 복음서이건 간에

영혼을 살찌우는 책이라면 한권쯤 펼쳐 들고 정서(情緖)를 보듬는 것도 멋진 일상이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동안 소원했던 가족애사(愛史)도 코로나19 발병 사태를 계기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등한시 했던 부모 형제 자매 자식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껄끄러웠던 관개를 덜어내는 흐뭇한 현상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긍정적 사회변화는 21세기 현대인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한 코로나19의 역설(逆說)이다.

마치 흑사병의 역설같은 것 말이다.

 

신종 코로나19는 믿거나 말거나 흑사병처럼 신의 저주일 수도 있다.

물론 진실의 팩트는 살아 있는 동물(박쥐, 뱀 등)들을 산채로 잡아 즉석에서 회처먹은 현대인들의 야만적 행동의 결과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코로나19 발병의 기저(基底)에는 현대인들의 오만함과 방탐함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 하는 비틀린 자아 인식이 하늘의 준엄한 형벌을 자초했다는 설이다.

현대인들은 이에 대해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할 것이다.

괴상망측한 요설(饒舌)’이라며 힐난을 퍼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 한번쯤 자아(自我)를 보듬고 자기반성의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하늘을 찌를듯 한 인간의 교만한 마음이 키워낸 악질 염병이 아닐까.

 

이산해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