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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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평양 일기(日記) 1

2020.04.29 11:38

이산해 조회 수: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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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북중 정상회담 만찬 (사진 출처 / 구글)

 

 

 

2020년 4월 2일. 목요일. 오후 12시 30분.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

 

국제선 활주로 8번 램프에 대기중인 고려항공 여객기가 관제탑의 비행 이륙허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객기 후미에는 북한의 인공기(人共旗)가 표기돼 있었다. 

 

여객기는 러시아 투폴레프사(社)가 제작한 TU-204 기종이었다.

이륙을 불과 5분여 앞 둔 여객기 안에서는 여승무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탑승 정원이 140명인 실내에는 1백 여명의 승객들이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승객 다수가 중국인이었다.

물론 서양인들도 일부 섞여 있었다.

 

늘씬한 몸매에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또렷한 여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다가와 간들어진 미소를 날리며 안전벨트 착용을 확인했다.

스피커에선 기장의 안내 방송이 재생됐다.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기장은, ‘비행기가 곧 이륙할 것이므로 안전수칙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사라지자 여객기 양 날개에 부착된 제트 엔진터빈이 엄청난 굉음을 토해내며 이륙 채비를 서둘렀다.

여객기 유리창 밖은 자욱한 미세먼지로 한치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다.

 

몸으로 느낄 정도로 엔진의 가속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 여객기는 관제탑의 이륙 신호가 떨어지자 활주로를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고는 눈깜짝할 사이에 공중으로 떠 올랐다. 

 

45도 수직으로 솟아오른 여객기가 고도(高度)속으로 빨려 들자 마이크로 폰을 손에 쥔 여승무원이 승객들 앞에 섰다.

 

마치 스튜어디스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승무원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는 여승무원들을 대표하는 캡틴이었다.

 

캡틴이 말했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네까. 반갑씁네다. 저는 손님들을 목적지인 피양(평양)까지 안전하게 모실 고려항공 승무원 목련화입네다.”

 

순간, 승객 가운데 경상도 말투를 거칠게 쓰는 사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사내는 싱가폴 국적 한국인이었다.

“이보소, 아가씨! 방금 머라캐쏘? 목련화라꼬요…그게 이름인겨? 꽃인겨?”

사내가 정색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돌발적 상황을 맞은 캡틴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재빠르게 변신한 그는 양쪽 볼에 보조개를 만들며 재치 있게 대응했다.

“목련화는 제 이름입네다. 성씨가 목씨고 이름이 련화라 한단 말입네다.”

 

승무원의 이름이 빚은 해프닝으로 한국어를 이해하는 승객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몰라 뻘쭘한 표정인 중국인들과 서양인들도 뒤늦게 이유를 파악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승객들의 소요(騷擾)가 가라앉자 목련화가 말했다.

“베이징 서우두공항을 12시 30분 정시에 출발한 저희 고려항공 TU204는 2시간 후인 2시30분에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네다. 비행 도중 몸이 불편하시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경우 주저하지 마시고 말씀해 주시라요.”

목련화는 덧붙여  ‘잠시 후에는 간단한 식사가 제공될 것’이며,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라고 했다.

 

한국어로 안내방송을 한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영어안내방송을 이어갔다. 

 

구름 위로 올라선 여객기는 불규칙한 상승기류로 인해 좌우로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조종간을 잡고 있는 파일럿의 노련미가 별로인 것 같았다. 

 

한편 고려항공 여객기가 비행 한지 대략 10여 분이 지나자 승무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승객들에게 기내식과 음료를 권했기 때문이다.

기내식은 햄버거와 샌드위치 두 종류였다.

 

팔짱을 낀 채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연청음에게도 승무원이 다가섰다. 

허리를 살짝 굽힌 승무원의 목덜미 부위에서 재스민 향내가 흩뿌려졌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냄새였다.

 

승무원이 말했다.

“손님. 드시고 싶은 음식과 음료가 있으시다면 날래 말씀하시라요.”

 

투박하고 생경한 억양 때문에 적잖이 당혹스러워 한 연청음이 어눌한 한국말로 말했다.

“식사는 햄버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음료는 생수를 주문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네다.”

승무원의 흔쾌한 대답이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더 필요한 거 없습네까?”

연청음은 대답 대신 손사래를 쳤다.

 

주문한 햄버거는 보기보단 제법 먹을 만 했다.

기내식이 최악이라고 악플을 단 여행자들의 댓글은 웬지 잘못된 선입견인 것 같았다. 

 

지금 이순간, 상당수의 승객들은 엄지척을 해 보이며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역시, 카더라는 믿을 것이 아니다.   

 

기내식을 먹고 난 뒤 후식으로 커피 한잔을 비워냈다.

장(腸)을 채운 음식들이 만들어 낸 포만감으로 몸이 나른해졌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눈꺼풀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참 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고려항공 여객기가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때는 정각 오후 2시 30분.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지상낙원

 

여객기가 관제탑이 지시한 램프로 들어와 멈추자 대기하고 있던 트랩이 출입문에 달라붙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승객들이 술렁거렸다.

그러고는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객들이 자리를 벗어나자 승무원들도 따라 나섰다. 

승무원들이 잰 걸음으로 출입구로 가 승객들을 트랩으로 안내했다. 

승객들 속에 섞인 연청음도 트랩을 밟고 내려와 대기중인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활주로와 분리된 전용 차도를 달려 승객들을 입국심사장입구에 쏟아 냈다.

 

입국심사대의 안내요원을 따라 ‘외국인 심사’라인에 선 연청음은 비로소 긴장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풍문으로만 들었던 철(鐵)의 장막에 들어섰기 때문 였다.

 

입국 심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막힘이 없었다.

물 흐르듯 했다.

역시 코리안들의 빨리빨리 기질은 어느곳에서나 일맥상통이었다.

 

연청음의 차례도 순식간에 띠리왔다.

딱딱한 표정을 한 입국 심사관이 턱으로 연청음을 불렀다.

사내의 모습이 아침에 마누라와 한바탕 싸우고 나온 듯 사나운 꼴이었다.

 

창구로 다가선 연청음이 여권과 입국심사증을 디밀었다.

여권을 받아 든 사내가 여권의 표지와 속지, 입국사증을 번갈아 주시했다.

한동안 여권과 관련 서류를 훑어본 사내가 연청음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한국사람입네까, 아니면…”

 

입국심사관이 이렇게 물은 까닭은 연청음의 여권이 캐나다 여권이었기 때문 였다.

사내의 의도를 알아 챈 연청음이 어눌하게 말했다.

“캐나다 시민인 한국 사람입니다.”

 

입국 심사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입국허가사증에 스탬프를 먹였을 뿐이었다.

 

연청음은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유는, 여권이 아닌, 입국허가사증에 인증을 한 것이 생소했기 때문 였다.

 

LA국제공항에선 여권에 스탬프를 먹인다. 

 

한편 독수리 여권(미국 시민) 소지자인 연청음이 캐나다 여권으로 북한을 여행한 계기는 미국 여권으론 북한입국이 불가능해서 였다.

 

왜냐?

 

지난 2016년 북한에 17개월 간 억류됐다 풀려난 뒤 숨진 미 대학생 웜비어 사망사건으로 미국과 북한이 척(隻)진 후 미국인의 북한 여행이 전면 금지된 것이 발단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이같은 조치를 발빠르게 간파한 연청음이 북한 여행을 위해 소지한 캐나다 여권을 사용한 것이다.

  

별탈없이 공항 터미널을 빠져 나온 연청음은 청사 앞에 대기한 단체여행 관광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3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꽁지머리 여성이 여행객들을 맞았다.

가이드였다.

 

운전석에는 하관이 빠른 주걱턱의 운전기사가 백미러에 시선을 처박고 승객들의 움직임을 훔치고 있었다. 

 

버스 안에 몸을 구겨 넣은 승객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탑승 정원이 52명인 버스의 좌석은 빈틈없이 만석이었다.

 

버스 안에 소요가 가라앉자 가이드가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로 폰을 입에 가져갔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소프라노 톤으로 말했다.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지상낙원이며,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위원장 동지께서 이끄시는 저희 북조선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네다.”

이렇게 말머리를 후린 가이드는 관광객들이 평양투어에서 지켜야 할 준수사항을 장황하게 늘어놨다.

관광객들은 숨을 죽인 채 가이드가 쏟아내는 다양한 준칙(準則)을 암기하느라 분주한 눈치였다.

가이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인과 서양인들을 위해 따로 준비한 인쇄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무미건조한 가이드의 안내방송은,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숭배와 김정은의 지도력을 칭송하는 체제 선전으로 마무리했다.

 

가이드가 마이크로 폰의 스위치를 끄자 승객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누구인가는 브라보를 외쳤고, 또 다른 무리는 김정은 동지 만세를 연호(連呼)했다.

그런가 하면 여기저기서 낄낄대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시끌벅적 했던 버스 안 분위기가 이내 가라앉자 버스가 출발을 서둘렀다. 

관광객이 머물 호텔로 가기 위해서였다.  

 

양각도 특급호텔    

 

연청음은 5성(星)급인 양각도 호텔에서 체크인 했다.

여행사측이 3박4일간 단체 예약을 한 것이다.

연청음은 25층에 위치한 더블베드룸을 배정 받았다. 

대동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1층 로비에서 관광객들에게 방 열쇠를 나눠 준 꽁지머리 가이드는 다시 한번 직업정신을 발휘했다.

호텔 이용에 관한 부연(敷衍)설명을 한 것이다. 

  

가이드는 호텔 이름이 양각도(羊角島)인 유래에 대해서도 말했다.

대동강에 자리한 퇴적섬의 생김새가 마치 양의 뿌리를 닮았다 해서 붙어진 이름이라 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호텔은 모두 48층 규모였다. 

현대식으로 축조(築造)된 호텔에는 1천여 개의 객실이 갖춰졌다.

연청음이 지불한 숙박비는 하루에 165달러(유로 150유로EUR).

5성급 특급호텔치고는 그다지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한편 가이드가 물러간 뒤 연청음도 여장(旅裝)을 풀었다. 

 

여행용 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며 상념에 젖었다.

세상과 단절된 세계에 들어섰다는 설렘과 불안감의 엄습이었다.

여짓껏 지구별 곳곳을 떠 돌았으나 결코 두려움을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헌데, 평양에선 웬일인지 알 수 없는 불안이 마음을 교란시켰다. 

괜스레 쓸데없는 만용을 부린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도 했다.

허나 어쩔 것인가.

인생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샤워를 한 후 간편한 복장을 한 연청음은 호텔 뷔폐 식당에서 요기(療飢)를 했다.

예정된 저녁 식사 코스였다.

뷔폐식(食)은 식욕을 부추겼다.

맛갈스런 음식들이 푸짐해서 였다.

종업원들의 서비스도 수준급이었다.

 

연청음은 맛과 서비스에 감득(感得)했다.

그는 팁으로 1달러 지폐 두 장을 놓고 나왔다.  

 

다음날 아침

1층 로비에 집결한 일행은 첫 관광 코스인 대동강변 나들이를 떠났다.

인솔자는 꽁지머리였다.

여자는 수더분하게 생겼다. 

헌데, 외모와는 달리 성격은 까칠했다.

시종일관 발정난 암케처럼 굴었다.

덜 부드러웠으며, 유연함도 없었다. 

웃음에도 인색했다.

어쩌다 웃더라도 입술 가장자리만 웃었다.

마치,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짓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녀가 측은해 보였다.

연민의 정도 느꼈다.

 

애니웨이….

그녀를 따라 들어선 대동강은 고즈넉했다. 

주변 사위(四圍)도 생동하는 봄기운으로 충만해 있었다.

맑고 푸른 강물에 반영된 하늘은 청명했다.

공기도 박하사탕처럼 상큼했다.

기온은 대략 20도를 웃돌았다.

멋진 날이었다.

 

강변로에는 수많은 행락객들이 한가하게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특히 평양은 개방된 공간이었다.

각본에 짜여 움직이거나 또는 과장된 몸짓으로 일상을 사는 유치한 모습은 엿볼 수 없었다.

 

서울과 천사의 도시(LA)에서 맛보는 여유로움이 이곳에도 있었다.

물론 1백프로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도 많다. 

 

김일성 부자의 우상숭배와 시내 곳곳에 내걸린 체제유지를 위한 플래카드 슬로건 등이 그랬다.

평양 주민들이 저마다 옷깃에 달고 있는 김일성 부자 배지에서도 사회주의의 섬뜩한폭력이 엿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동강변 산책에 나선 주민들의 발걸음은 날렵했다. 

표정도 행복해 보였다.

이들에게는 체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이는 평양 시민들 만이 누리는 특권이며, 호사(豪奢)일 것이다.

북한에선 아무나 평양 시민이 될 수 없다.

 

목자를 따르는 양떼처럼 무리 지어 가이드를 따르는 관광객들은 주변

풍광에 취해 틈만 나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스마트 폰에도 셀카를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흥에 겨워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대동강 풍광 속에 녹아들고 있을 때였다.

 

불과 5미터 여 전방에서 한 여성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널브러졌다.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를 목격한 주변의 시선들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널브러진 여성을 주시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진 여자는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하나같이 경직돼 있었다.

그 누구도 성큼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단지 엉거주춤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디서건 착한 사마리아인은 존재한다.

일행 가운데 젊은 동양인 사내가 대열 속에서 나와 여자에게 성큼 다가갔다.

 

사내는 곧바로 무릎을 끓고 여자의 코와 입에 귀를 바짝 대고 호흡을 살폈다.

엄지와 검지 중지로 손목과 뒷덜미의 맥(脈)도 짚었다.

침착하고 능숙한 행동이었다.

 

여자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내는 다음동작으로 여자의 신발과 양말을 벗겨냈다.

그러고는 발바닥의 혈(穴)를 찾아내 지압을 하기 시작했다.

손끝에 힘을 주어 서너 차례 지압을 반복하자 사지가 늘어졌던 여자가 꿈틀거렸다. 

동시에 잃었던 정신도 되찾았다.

 

사내의 움직임을 숨죽인 채 엿보고 있던 일행들이 여자가 깨어나자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떠나갈 듯 박수를 쳤다.

 

게슴츠레 눈을 뜬 여자가 영문을 모른 채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때마침 여자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가이드가 여자를 부축했다.

그리고 조근조근한 어투로 사내가 한 일을 말했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이드는 턱으로 생명의 은인을 가리켰다. 

다름아닌 연청음이었다.

 

한편,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인민보안성(경찰)요원들은 현장에서 벌어진 상황을 가이드를 목격자로 지목해 진술을 받았다.

 

요원들은 여자를 위기에서 구한 사내에게 따져 물었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는 거였다.

헌데, 공권력이 보인 태도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한 생명을 구해준 사마리아인을 죄인 취급하 듯 다뤘기 때문 였다.

윽박지르는 듯한 말투와 험악한 인상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여자에게 접근했느냐’는 대목에선 할 말을 잃었다.  

 

사내는 공권력의 어처구니를 불쾌하게 여겼다.

물론 이들의 안하무인이 인습(因習)의 차이 일수도 있다

투박하고 딱딱한 말투, 경직된 표정은 북한 사회주의의. 단면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래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하기야 천사의 도시(LA)에서도 공권력의 섬뜩한 남용은 흔한 일이다.

 

북한인민보안성 요원들의 시건방진 태도는 연청음이 남조선 출신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허나, 여기가 어딘가. 멀쩡한 미 대학생을 간첩으로 몰아 끝내는 목숨을 앗아간 폭력 국가가 아니냐.

 

연창음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공권력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기로 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맞다.

 

사내를 순찰 차 보닛으로 몰아 세운 보안성 요원들은 거친 평양사투리로 다양한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공권력은 연청음의 이름과 나이, 직업, 거주지, 가족관계,군복무 여부,결혼 여부, 평양을 방문한 목적, 서울에는 자주 가는지에 대한 여부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공권력은 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청음을 향해 1시간 여에 걸쳐 질문공세를 폈다. 

공권력은 그러고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음인지 가이드와 잠시 귀엣말을 주고 받은 뒤 이내 찬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바닥에 널브러졌던 여성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한동안 을씨년스러웠던 현장 분위기가 수습되자 일행들은 다시 한번 영웅적 행동을 한 연청음을 추켜 세우며 환호했다. 

 

평양 체류 이틀 째

아침 햇살이 커튼을 비집고 룸 안으로 들어왔다.

청명한 날씨였다.

시계는 오전 8시를 가리켰다.

 

오늘은 아침 9시부터 평양시내 투어에 나선다.

 

연청음은 관광 길에 나서기에 앞서 몸단장을 서둘렀다.

리바이스(LEVIS)버튼식 청바지와 격자형 체크무늬셔츠(Abercrombie & Fitch)로 옷 차림새를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라이카 Q2 디지털 카메라와 투미(TUMI)백팩도 챙겼다.

시계는 늘 착용하는 에르메스(Hermes)스마트 워치 대신 스포티한 벨 &로스(Bell & Ross)에어왓치를 손목에 찼다.

신발은 영국에서 제조한 뉴 발란스 (New Balance)MTL 575를 신었다.    

 

거울에 반영된 캐주얼 조합이 심플해 보였다.

 

모자는 LA다저스 야구모자를 착용했다.

(하지만 모자 착용은 허사였다.

모자를 쓴 모습을 본 가이드가 손사래를 치며 “날레 벗으시라요!”하며 정색을 했기 때문 였다.가이드가 이처럼 경끼를 일으킨 것은 모자에 LA 영문 표기가 있어서 였다.연청음은 모자를 벗어 백팩에 구겨 넣었다.)

 

외출 준비는 완벽했다. 

연청음은 흡족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순간, 벽걸이식 교환 전화에서 벨 소리가 요동을 쳤다.

연청음은 뒷걸음으로 다시 방으로 돌아와 전화기를 집었다.

송수화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수신됐다.

“지금 날래 1층으로 내려 오시라요!”

꽁지머리였다.

 

1층 로비에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평양시내 관광 투어 때문 였다.

 

연청음이 모습을 드러내자 가이드와 두 사내가 성큼 다가섰다.

가이드가 말했다.

“이분들은 국가보위성(國家保衛省)에서 나왔습네다. 잠시 선생과 나눌 말씀이 있다하십네다.”

 

여기까지 말한 가이드는 두 사내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꺽고 예를 표한 뒤 뒷걸음으로 물러섰다.

 

두 사내 중 인민복장을 한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이 연청음되십네까?”

“그렇습니다 만…”

사내가 말했다.

“놀라지 마시라요. 저희가 선생을 뵙자한 이유는 이렇습네다.”

“….?”

“어제 선생께서 대동강 산보(투어)를 하던 중 어느 여자분을 치료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순간, 사내가 연청음의 손을 덥석 움켜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사내는 그러고는 연청음을 향해 허리를 꺽었다.

또다른 사내 역시 황급히 허리를 90도로 꺽고 예를 표했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은 연청음이 의아해하자 인민복과 함께 한 체격이 좋은 떡대가 말했다.

“선생께서 어제 저희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따님을 구하셨다는 전갈을 듣고 선생을 찾은겁네다.”

그제서야 자초지종을 알아 챈 연청음이 말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행이 제가 의학을 공부했던 터라 실신한 여자분을 응급조치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저를 찾은 이유가 뭡니까?”

인민복이 말했다.

“우리 부장님께서 선생을 꼭 뵙고 싶다며 모시라 해서 이렇게 온겁네다. 괜찮으시면 오늘은 관광 일정을 거두시고 저희와 함께 가시라요.”

 

막강한 비밀조직에서 파견된 두 사내를 대하고 있는 연청음은 또 다시 개같은 기분이었다. 

 어제는 인민보안성, 오늘은 국가보위성이라니…..

 

연청음은 입을 다문 채 두 사내를 노려 보았다.

속으론 평양 구경을 하러 왔다가 간첩으로 몰려 사망한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떠 올렸다.

 

빌어먹을, 평양!

 

연청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꽁지머리 가이드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리고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선생께선 아무 걱정을 아니 하셔도 됩네다. 이분들이 오신 목적은 여자분의 아버님께서 선생을 모셔 오라 했기 때문이야요. 그러니 염려 놓으시고 날래 가시기요.”

 

여자는 두 사내의 대변인처럼 말했다.

 

연청음은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곳은 천사의 도시(LA)가 아니다

‘우리식 북한’인 것이다.  

 

30분 뒤

연청음을 태운 검정색 벤츠 S500 승용차는 평양 시내를 이리저리 휘돌아 한적한 주택가로 들어섰다.

그리고 한눈에도 웅장한 대저택 앞에 차를 세웠다.

 

회색 화강암으로 벽면을 치장한 저택은 작은 성채를 연상 케 할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내가 묵직한 철문 옆에 부착된 CCTV에 얼굴을 들이대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선생, 들어가시기요.”

인민복이 팔을 뻗어 집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연청음이 두 사내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현관문이 있는 곳에 다달았다. 

현관문 앞에는 5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이 세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여자의 어머니였다.

 

거실로 안내된 연청음은 또 다른 여성과 대면했다.

대단한 미모의 젊은이였다.

표현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머리는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숱이 많은 짙은 흑발(黑髮)이었다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 지적이면서도 강인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까만 눈동자,전혀 흐트러짐 없이 균형 잡힌 골격,홍채(紅彩)를 띤 가늘고 엷은 입술에는 자부심과 자제심이 배어 있었다. 

또 한 약간 치켜 올라간 입꼬리에는 색기(色氣)가 넘쳐났다.

그런가 하면, 단단하게 솟아 오른 젖가슴과 곡선을 타고 흐르는 하체는 다산(多産)의 표징(標徵)이었다.

여자는 청아하고 싱그러웠다.

미인도처럼.

 

연청음은 여자의 외모를 빠짐없이 머리 속에 스캔했다.

헌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여자의 어머니도 아름다웠다. 

비록 얼굴에는 세월의 나이테가 드리워 있었으나 미(美)의 흔적은 실루엣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여자의 DNA는 필시 어머니의 복제품일 것이다.

연청음은 거실에서 또 다른 사내와 대면했다.

 

거구였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체구였다.

190센티미터쯤 돼 보였다.

사내는 붉은 대추색 얼굴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착용했다. 

촉나라의 명장 관우를 연상케 했다.

짙고 굵은 송충이 눈썹에 귓밥도 부처처럼 넉넉해 보였다.

 

거실로 들어선 사내는 다짜고짜 연청음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우악스럽게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기쁜 내색을 했다.

 

뿔테안경이 포옹을 한 채 말했다.

“선생이 내 딸내미를 구했시요. 이 은혜를 어찌 갑씀네까!”

연청음은 그제서야 딸내미가 대동강에서 쓰려진 여성임을 알았다.

 

한바탕 소란을 핀 뿔테안경이 여자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이보라우, 어서 인사드려야 안카써? 날래 하라우!”

다소곳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여자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주다혜라고 합네다. 어제는 너무 고마왔시요. 뭐라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할지….”

여자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어머니도 연청음을 향해 목례를 하며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뿔테안경을 비롯한 가족이 이토록 연청음을 환대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대동강변에서 심장마비 쇼크로 널브러진 여자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는 것이다.

여자가 질식사 하기 직전 연청음의 즉석 의술로 뇌출혈 차단과 마비된 심장 박동을 재개 시켜 극적으로 살려 냈다고 했다.

 

뿔테안경은, 딸을 응급 시술한 병원 전문의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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