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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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시객(詩客)

서부지역 코리안 시인 협회가 주관한 35 시객(詩客) 개최됐다.

장소는 LA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정론직필 미주지사 대강당이었다.

6 스퀘어 규모의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룬 행사에는 미주 전역과 아시아, 한국 및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는 문인(文人)들이 몰려들어 한껏 흥취(興趣) 돋구었다.

시인들의 신작(新作) 발표와 낭송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시객의 밤이 파안대소를 동반하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즈음이었다.

행사장 입구에 남녀가 들어섰다.

남녀 가운데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는 중동계 여성이 행사 요원을 향해 방패 배지를 보이며 말을 걸었다.즐거운 행사장에 불쑥 끼어들어 미안해요저는 소피아 형사고옆에 분은 스티브 형사예요.”

난데없는 공권력 출현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행사 요원이 형사에게 시선을 주었다.동양인이었기 때문 였다.

순간 혁 형사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저희가 찾아온 이유는 오늘 행사에 국대남 시인이 참석할 것이라는 귀띔 때문입니다.”

행사 요원이 말했다. 시인님은 행사장 귀빈석 앞줄에 앉아 계세요.”

행사 요원은 혁 형사에게 시인을 모시고 오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수초 .

감색 더블슈트 정장에 체크무늬 넥타이로 외형을 갖춘 국대남 시인이 형사 곁으로 다가왔다.

영문을 몰라 해하는 국시인의 표정을 읽은 스티브 형사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LAPD 살인계 소속 스티브 형삽니다 옆에 동료는 소피아 형사고요.”

국대남 시인은 그제서야 형사의 방문을 이해했다.다름아닌 살해당한 석비 시인 때문일 것이다.

국시인도 손을 내밀어 혁형사의 악수를 받았다.그가 혁 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헌데어찌해서 저를 찾으셨소?”

혁형사가 답했다.선생께서도 아시다시피 석비 시인의 피살건()때문입니다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뭣합니다 만현재LAPD 살인계에서는 선생을 유력 혐의자 선상에 올려 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순간 국대남 시인이 입술을 실룩 거리며 언성을 높였다.때문에 주변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꽂혔다.

국 시인이 말했다.이봐요혁 형사님방금 뭐라 하셨소내가 석비 시인을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 명이라고요?”

혁 형사가 말했다. 다운 하십시오어느 범죄사건이나 원치 않았어도 용의자는 있기 마련입니다. LAPD 선생을 용의선상에 이유는 선생께서 평소 석비 시인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지냈다는 주변 진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선생께선 심지어는 석비 시인을 죽여버리겠는 극언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말에 어폐(語弊) 있습니까?”

“……..?”

답이 없으신 것은 인정한다는 묵언(默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따라서 선생께서는 묵비권을 행사할 있고 변호사를 선임해 자기 방어 권을 행사할 있습니다오늘은 우리가 즐거운 행사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충분히 즐기시고 이틀 다운타운에 위치한 LAPD 파커 센터로 걸음 해주십시오.”

억양은 매우 단호 했으나 최대한 예를 갖춰 상황을 설파한 스티브 형사는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머리 속에 스캔했다.

굳은 표정의 국대남 시인은 충격 때문인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세 사람의 말이 길어지자 이들 곁으로 문인들이 다가왔다문인들은 걱정스런 시선으로 시인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몰려든 동료 문인들이 자신의 어깨와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하자 시인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스티브 형사님너무 갑작스런 상황이어서 황망할 따름이오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없구려아무튼 내가 석비 시인 살해사건에 혐의자로 지목됐다 하니 어쩔 없는 노릇이구먼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 이틀 후 경찰서에 출두 하겠소.”

상대에게 확약을 끌어 낸 스티브 형사는 다시금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정론직필 신문사를 빠져나온 소피아 형사가 크라운 빅토리아 조수석에 앉아 벨트를 조이며 파트너에게 말했다. 형사 나리. 다음 코스는?” 형사가 말했다. 도우(John Doe:신원 불명의 사람을 지칭) 찾아야겠지!그래서요?”소피아가 말한 문제의 히스패닉계 아가씨를 잡으려면 우선 오렌지 카운티에서 암약하는 라티노 갱스터 그룹 '서던 블러드(Southern Blood)' 접촉해야 행동대원 가운데 정보원이 있거든.”믿을만 ?”물론이지!” 여자야남자야?”남자.”

스티브 형사는 하이웨이 74 오르테가 램프에 들어서자마자 개스페달을 힘주어 밟았다.순간 기름을 흠뻑 흡입한 8기통 엔진이 미친듯이 회전하며 크라운 빅토리아를 앞으로 밀쳐냈다.

크라운 빅토리아가 하이웨이를 질주하는 동안 형사는 라디오 FM 주파수를 재즈(Jazz)스테이션에 고정 시켰다.운전석과 조수석 문짝에 부착된 스피커에선 레드 가란드 트리오가 연주하는 'We Kiss In Shadow(그림자 속에 입맞춤)"멜랑콜리하게 흘러 나왔.

 

 

곱슬머리

형사가 갓길에 차를 정차한 곳은 대형 나이트 클럽이 위치한 번화가였다.

스타더스트(Stardust)라는 간판을 내건 나이트 클럽은 이른 영업시간 탓인지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혁과 소피아 형사는 정문을 돌아 후문으로 갔다.

그러고는 클럽 개장 준비에 한창인 주방을 통과해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클럽 안은 낮은 조도의 조명 때문에 사방이 어두웠다.

하지만 형사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소피아 형사를 이끌고 클럽 귀퉁이에 자리한 사무실로 들어섰다.

붉은색 인조 가죽으로 덧댄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은발의 백인 남자와 검정색 티셔츠 차림의 건장한 덩치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형사를 째렸다.

덩치가 형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니들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지대체 뭐하는 씹새 들이야?”

가소롭다는 표정의 소피아 형사가 허리 춤에서 청동 방패를 꺼냈다.

“LAPD살인계 소속 형사몇가지 물어볼 것이 있거든 얌전히 대답해.”

소피아 형사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윽박 지르듯이 말했다.

어안이 벙벙해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방패를 번갈아 째렸다.

이번에는 스티브 혁 형사가 입을 열었다.이곳에서 시큐어리티(경비) 일하는 하비야 페르난데스는 어디 있나?”

정장이 말했다.무슨 일이지 친구를 만나려 하나?”

형사가 덧붙였다.토는 달지마. 그냥 예스 오 노만 대답해.”

 

2분여

곱슬머리에 매부리코인 건장한 풍채의 히스패닉계 사내가 형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티브 형사와 눈이 마주친 곱슬머리가 아는 채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어 나리어찌 이곳까지 귀한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오랫만이네친구.”

형사도 보일 듯 말 듯한 입가 미소를 보였다. 그러고 턱으로  소피아 형사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동료 형사라네.”

사람은 자리를 옮겨 클럽 근처에 위치한 iHOP레스토랑으로 갔다.

자리를 안내한 웨이트레스에게 커피를 주문한 3사람은 잠시 잡담을 나눈 형사의 정색한 질문에 분위기를 바꿨다.

형사가 말했다.

이봐하비야질문에 앞서 노파심에 말하 건데절대 거짓말은 하지 말고 진실만을 말해주게친구도 알다시피 성깔이 어떤지는 알고 있겠지?”

스티브 형사님한동안 무탈하게 지냈는데빌어먹을….갑자기 나타나서 뜬금없이 겁을 주고 그래요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순간, 소피아 형사가 마닐라 봉투에서 사진 장을 꺼내 곱슬 머리에게 디밀며 말했다. 여자 알지?”

컬러 인화지에 필사된 여성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 곱슬 머리가 사진에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글쎄어디서 같기도 하고 아닌 같기도 하네이렇게 생긴 여자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곱슬머리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능을 치자 형사가 퉁명스레 말했다.이봐,하비야. 지금 짓거리나 한가한 때가 아냐 알고 왔어그러니 괜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털어놔만약 자네가 모르쇠로 발뺌하면 자리에서 은팔찌를 채워 카운티 교도소로 보내 버릴 거야네가 이번에 (형무소) 들어가면 20 동안은 햇빛을 없어무슨 말인지 알겠지?”

협박조의 윽박지름을 귀담은 곱슬머리의 안면에서 경련이 일었다.얼굴도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눈의 초점을 잃은 곱슬머리가 소피아의 손에서 사진을 빼앗다시피 거칠게 낚아챘다. 그의 시선이 사진에 꽂혔다.

동시에 곱슬머리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 블랙 로즈(Black Rose)우리 갱스터 그룹에서 행동대원으로 활약하고 있지여자지만 엄청 잔인하고 포악해냉혈한(冷血漢)이야.한마디로 인정사정 없어이여자피만 보면 흥분해서 길길이 날뛴다고.”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여자를 어디에서 만날 있지?”

곱슬머리가 덧붙였다.자세히는 몰라. 블랙 로즈를 만나려면 베벌리 힐스로 가야 될 걸.”

베벌리 힐스….?”

스티브 형사의 말이었다.

곱슬머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블랙 로즈의 애인이 코리안 이거든들리는 소문에는 가이(Guy) 제벌 2 유학생이라는 거야.”

소피아 형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이봐. , 코리안 가이의 주소를 알고 있어?.”주소는 몰라하지만 베벌리 힐즈 어디쯤인지 기억은 .”

스티브 형사는 곱슬 머리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목을 움켜 쥐었다.

그러고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주차한 크라운 빅토리아로 데려가 뒷자리에 구겨 넣었다.

운전대를 잡은 스티브 혁 형사가 파트너에게 말했다.”베벌리 힐스로 가자구.”

 

 

국대남 시인

한편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를 대동한 국대남 시인이 약속대로 오전 11시께 LAPD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더블슈트 정장 차림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착용한 시인은 스티브 형사가 안내한 취조실로 들어섰다.

대형 스파이 거울이(밖에서 안의 동정을 훔쳐볼 있는 유리)창들에 부착된 취조실은 무미건조했다.

형광(螢光) 조도(照度) 밝게 실내에는 바랜 회색 철제 탁자와 4개의 철제 의자가 놓여 있었다.

3면의 벽은 자해(自害) 예방키 위해 두터운 천으로 덧댔다. 천장은 정사각형 플라스틱 실링으로 마감했다.

취조실 밖에는 살인계 소속 경감(Police Captain) 경위그리고  반장인 캡이 취조실 안을 스파이 유리를 통해 훔쳐보고 있었다.

취조실 테이블 중앙을 차지하고 앉은 스티브 형사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시인께선 사건 당일 어디에 계셨습니까?”

형사가 앉은 위치 왼편에 변호사와 어깨를 나란히 국대남 시인이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석비 시인이 비명사(非命死) 당일 나는 전라북도 전주(全州) 거주하는 막내딸과 함께 있었소그날은 딸아이가 둘째 손녀를 출산하는 날이기도 했소.”

스티브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혁 형사는 벽에 걸린 붙박이 구내 전화기를 집어 들고 어디론가 통화를 했다. 상대는 소피아 형사였다

형사가 말했다.다링. 즉시LA공항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서 국대남 시인의 출입국 날짜를 확인해줘.오케이!”

소피아 형사가 송수화기를 내려 놓자 형사가 스파이 유리창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LA 출입국 관리소의 회신(回信) 전송되는 동안 질문을 이어갔다.

변호사는 간간이 시인을 향해 곤란한 질문은 묵비(默秘)해도 된다..’ 주위를 준 뒤 형사의 질문에 응대(應對)했다.

형사는 주차장에서 살해 당한 석비 시인과 시인의 평소 대립관계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특히 시인이 공개 석상(席上)에서 드러내놓고  시인을 죽여 버리겠다.’ 대목을 추궁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인간은 감정의 동물이오누구라도 열을 받으면 마음에도 없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소. 역시 같은 기분에서 소리일 누굴 죽이겠다는 끔찍한 생각을 본적이 없소더구나 석비 시인은 싫든 좋든 나와 같은 문우(文友) 아닌가.”

 

30

LA 출입국 관리사무소로부터 전송 통보가 접수됐다.

국대남 시인의 공항 출입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스티브 혁 형사가 말했다.

선생의 말씀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다만때로는 천사도 악마로 돌변하 선한 자도 살인을 저지릅니다이것은 어쩔 없는 인간의 속성(屬性)이지요아무튼 선생께선 그만 귀가 하셔도 무방합니다잠시나마 심려를 끼친 양해를 구합니다.”

형사가 코리안 출신 디텍티브(Detective:형사)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오아무튼 나의 알리바이가 입증돼 홀가분하 구려.”

국대남 시인은 스티브 형사를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동행한 변호사와 파커 빌딩을 벗어났다.

(계속)

이산해 / 추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