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오늘:
1
어제:
1
전체:
1,255,515

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목격자(2)

2022.01.16 15:03

이산해 조회 수:190

 

2a7756980b2132bee9c04ed3db2961e6.jpeg

사진: UNKNOWN

 

다음 아침

정기구독을 하는 조간 신문이 배달됐다.

대한민국 최대 종합 일간지 정론직필(正論直筆)신문 이었다.

신문은 문제의 살인사건 기사를 종합 면 톱 기사로 편집해 게재했다.

스트레이트와 해설을 곁들인 5단 크기의 기사(記事)였다

머리글과 소제목은 이랬다.

전직 국회의원 탁 모씨 정체불명의 괴한이 쏜 총에 맞고 사망

사망 당시 내연 녀 우 모씨와 남산 소나무 공원에서 밀애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신문 기사의 리드와 종지부는 이렇게 갈무리 했다.

현재 수사당국은 범인 색출에 전력투구 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 이렇다 할 단서를 남기지 않고 행방을 감춘 살인범의 신원 파악이 불가능해 사실상 범인 색출이 장기간 미궁에 빠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수사당국은 목격자의 결정적 제보가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줄 것으로 판단, 1억원의 현상금을 내걸고 현상 수배에 착수했다.

 

현상금 액수를 읽어 내린 사계절의 입이 떡 벌어졌다.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신문과 방송은 이례적으로 전직 국회의원 살해사건을 연일 보도했다.

살해된 피살자가 일반인이 아닌, 전직 다선국회의원 출신이란 점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튼 수사당국이 그동안 보여왔던 미온적인 수사태도와는 달리 매우 신속하고 발빠르게 이 사건에 대응했다.

경찰청은 피살된 전직 국회의원의 거주지인 관할서는 물론 서울 전역에 산재한 경찰서를 독려하며 수사의 철저를 가할 것을 주문했다.

수사당국은 탐문 수사를 통해 피살자에게 평소 개인적 앙심을 품었거나 또는 과거 비슷한 범죄 전력이 있는 혐의자들을 은밀히 내사해 조사를 벌였다.

그런가 하면, 조폭 출신 폭력 전과자들을 상대로 사건 당일 알리바이 여부를 캐 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엄청난 수사 인력을 동원해 이 잡듯 전국을 뒤졌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마치 수사 당국을 비웃기라도 하 듯 그 어떤 실마리도 드러내지 않았다.

수사 요원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백방으로 뛰었으나 지지부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벼라 별 수사 기법을 동원해 범인 검거에 주력 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건은 원점에서 맴돌 뿐이었다.

미궁(迷宮)속에 단단히 몸을 숨긴 범인이 수사 당국을 조롱한다는 더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언론에서는 경찰의 지리멸렬한 수사 난항을 탓하며 전직 국회의원의 피살사건이 자칫 완전범죄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냈다.

 

수사가 겉돌자 초조해 진 피살자 유족들은 현상금을 1억에서 2억으로 올렸다.

거액의 현상금을 통해 범인 검거 율이 높아지기를 유도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살인사건 수사가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낭비하자 이에 발끈한 국회가 여야 할 것 없이 초당적으로 목청을 돋구었다.

엊그제까지 만 해도 개와 원숭이처럼 상대를 향해 으르렁대던 여야의원들이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전직 국회의원 피살 사건에는 한 목소리가 됐다.

이들은 국회가 팔짱을 끼고 수사 진척을 관망만 할 수 없다'며 수사당국의 최고 책임자를 법사위에 불러냈다.

그러고는 호통을 치며 닦달했다.

허연 대 낮에, 그것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공원에서 전직 국회의원이 살해를 당했는데도 범인은 커녕 모기 새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는 수사당국은 대체 뭐하는 집단이냐고 힐난을 퍼부었다.

핏대를 새운 국회는 덧붙여빠른 시일 내에 범인을 체포하지 못할 경우 수사당국의 최고 책임자는 옷 벗을 각오를 해야할 것이라고 엄포까지 곁들였다.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처럼 국회에서 온 갓 수모를 겪은 최고위책임자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부하 들을 조져 댔다.

범인 검거에 나 선 수사 요원들에게 경고 한다. 앞으로 열흘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모두다 사표를 내고 집에 가 부엌일이나 해라.이는 결코 공갈이 아니다.”

최고 책임자의 엄포를 귀담은 일선 수사 요원들은 저마다 안절부절하며 전전긍긍 했다.

다혈질 인데다 괴팍한 성격인 그의 스타일을 잘 아는지라 경고를 듣는 순간 오금이 저렸다.

씨발! 전직 구케의원이 피살됐다 해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 놓은 형국 이라니....니기미, 더러워서 짭새 노릇 못해먹겠구만!”

밤잠도 자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길거리에서 발 품을 팔며 탐문 수사를 펼치고 있는 수사 요원들 사이에서 벼라 별 불평이 쏟아졌다.

차마 귀에 담기 민망한 육두문자도 마구 뱉어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불만을 늘어놓는다 해서 어쩔 것인가! 별 도리가 없다.까라면 까는 것이 조직사회의 룰 아니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시정(市井)을 뜨겁게 달군 전직 국회의원 살해 사건 수사는 그렇게 오리무중속에서 겉돌고 있었다.

 

한편 수사가 진행 된지 어느 덧 한달이 지나고 초여름을 맞이했다.

초여름임에도 기온은 연일 섭씨 32도를 넘나드는 가마솥 더위였다.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사진 갤러리 빛과 색에서는 오래 만에 대작 사진전이 펼쳐졌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에는 개장초부터 관람객들이 대거 몰려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빛과 색에 관람객들이 넘친 이유는 다름아닌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 사계절 작가의 특별 사진전 때문 였다.

이미 국내외에서 도꾸다이 프로사진작가로 유명세를 펼친 사계절의 작품은 사진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조차 관심을 유발할 정도로 독특한 개성을 드러냈다.

세치 혀로 작가들을 조지기 일쑤인 비평가들 조차 사계절에 대해서 만큼은 악평은 커녕 오히려 호평을 헌사(獻辭)할 정도로 그에게 만큼은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주었다.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비평가들이 이렇듯 사계절을 높이 평가하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독특해서 였다.

괴기 하면서도 신비스럽고, 작품 속에 수많은 질문을 내포한 것이 작가만의 캐릭터였던 것이다.

어느 시인은 사계절의 작품을 흠모해 헌시(獻詩)를 바쳤다.

밤하늘에 /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에 / 살아 숨쉬는 자연에 / 검푸른 바다에 /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것..... 그것은 /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존재를 움직이고 / 사고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밀고 나가며 / 현존하는 모든 것을 통해 휘돌아쳐 흐르는 운동 일지니

 

이 날 갤러리에 내 건 작품은 주로 11X11 사이즈와 18X18 사이즈 크기의 흑백 사진이었다.

현존하는 다수의 사진작가들이 컬러 필름을 선호하는 것과는 달리 사계절은 유독 흑백 필름을 고수 했으며, 또한 그것이 트레이드 마크처럼 통했다.

흑백필름이야 말로 피사체의 진정한 내면을 필사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함께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수십 점에 달하는 작가의 사진은 개장 첫 날부터 3분의 2가 거액으로 낙찰됐다.

전시 사진 가운데 낙찰 증서가 붙어 있지 않은 작품 중 하나는 전직 국회의원이 아름다운 중년 여성과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추며 밀애를 즐기는 사진 뿐이었다.

이 사진이 낙찰되지 못 한 이유는 여타 낙찰 작품 사진들 보다 고액을 요구한 탓이었다.

이 사진은 특히 수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자극했다.

사진을 바라보는 관람객들 저마다 탄성과 함께 엄지 척을 해 보였다.

 

관람객 중에는 시선을 끈 이도 있었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 였다.

나이는 대략 10살 정도로 여겨졌다.

단발머리에 깜찍한 옷 차림새 였다.

주먹 쥔 손으로 턱을 괴고 엄마와 함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아이의 표정이 제법 심각하고 근엄 하기까지 해 보였다.

여자 아이의 시선은 11X11 사이즈 크기인 문제의 흑백 사진에 고정돼 있었다.

티 한 점 없는 맑고 투명한 눈동자의 시선을 흑백 사진에 고정시킨 여자 아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한 모습이었다.

곁에 선 엄마가 손을 이끌며 다음 작품으로 옮기자고 채근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단지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혼잣말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곁에서 여자 아이의 행동을 무심코 지켜 본 엄마가 아이의 어깨를 잡아 끌며 말했다.

"청음(淸音)! 왜 그러니?"

엄마의 질문 때문에 순간 한 발자국 뒤로 물러 섰던 여자 아이가 다시 액자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러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사진을 가리켰다.

여자 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사진 속 소나무 숲에 고정돼 있었다.

검지 손가락 역시 소나무를 조준했다.

여자 아이의 행동을 이상스레 여긴 엄마가 말했다.

청음아.무엇 때문이지....?”

5분 후

갤러리 빛과 색을 운영하는 화랑 대표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달려 온 사진 작가 사계절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여자 아이 앞에 섰다.

사계절이 여자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청음이라고 했지? 이름이 참 예쁘구나. 헌데 사진 속에 무엇이 있다니 그것이 대체 뭐냐?”

골똘한 표정을 한 여자 아이가 손가락 끝으로 사진의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 저기 소나무 뒤에서 어떤 남자가 아줌마랑 아저씨가 뽀뽀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고 있어요.”

사계절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뭐라구, 그게 사실이냐?”

여자 아이가 가리키는 소나무 숲의 한 그루 소나무 뒤에 눈으로는 전혀 인식할 수 없는 흐릿한 형태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는 없었다.

단지 역광일 수도 있고, 갈대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사계절은 여자 아이의 말이 뜬금 없다며 치부하려 했다.

그러나 검지 손가락으로 집요하게 숲 속의 소나무를 가리키며 아저씨가 몰래 훔쳐본다는 주장을 무조건 무시하는 것 역시 웬지 께름칙했다.

자신의 시선으로는 소나무 뒤의 형상을 도무지 알아 볼 수 없었으나 여자 아이가 목소리까지 높이며 분명히 어떤 아저씨가 숨어 있다 하는데 대해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자신의 호기심을 부추기는데 일조를 한 것은 여자 아이의 엄마 때문 였다.

저도 제 딸의 말이 미심쩍어요. 하지만 속는 셈치고 사진을 정밀하게 살펴보세요.”     

사계절은 여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단한 통찰력을 지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시에 여자 아이의 엄마에게는 양해를 구한 뒤 연락처를 얻어냈다.

 

이들과 헤어진 사계절은 지체없이 집으로 향했다.

사진 작업실에 들어선 사계절은 사진을 인화한 필름을 찾아내 디지털 고성능 확대 현미경으로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다.

사계절은 여자 아이가 즐기 차게 지목한 소나무 숲을 주시했다.

그는 현미경의 주사율(走査率)을 최대한 끌어올려 명암을 확인했다.

헌데, 아니나 다를까.소나무 뒤에 몸을 반쯤 감춘 인물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손에는 권총이 쥐어졌다.

소음기를 부착한 총이었다.

총구는 사망한 남자의 등을 향하고 있었다.

 

사계절은 문제의 필름을 디지털 현미경에서 세밀하게 캡쳐 해 현상한 후 화이트 보드 클립에 걸었다.

사진 속의 살인범은 대략 40대로 추정됐다.

머리 한가운데 한 올의 머리칼도 없는 대머리였다.

남자를 겨눈 권총은 스미스 앤드 웨슨 2213이었다.

웨슨 총기제조사의 수많은 제품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동권총이다.

22구경 롱 라이플 실탄, 7.5센티미터 길이의 총신, 여덟 발들이 탄창, 모양은 아담하지만 강력한 살상무기다.

사계절은 사진 속의 살인범을 노려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반평생을 사진 작가로 활약하며 숱한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이 사진이야 말로 대박 중에 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이처럼 희귀한 장면이 담긴 사진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는 마치 심마니가 평생을 산을 뒤지다 희귀 종 산삼을 발견한 것과 같은 행운일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자칫 영구 미제사건으로 기록될 뻔 했던 전직 국회의원 피살 사건을 이 사진이 단서가 돼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흥분이 더욱 고조됐다.

막무가내 무시 하고 넘길 뻔 한 여자 아이의 선견(先見)이 엄청난 증거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

 

사계절은 사진을 살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비로소 전직 국회의원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이야 말로 걸작 중에 걸작이 될 터였다.

살인의 증거가 필사된 사진이 어찌 그리 흔한 일인가!

사계절은 들 뜬 기분을 애써 누르며 나머지 컬러 사진과 비디오 필름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살인범을 포착한 사진은 유일하게 흑백 필름 뿐이었다.

당시 사건 현장의 타이밍이 흑백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흥분을 억제하지 못한 채 피살자의 등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범인을 들여다 보고 있던 사계절은 삼성 갤럭시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119 번호를 눌렀다.

파출소 경위입니다.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우선 전화하신 분의 성함과 사시는 곳을 말씀해주십시오.”

사계절이 말했다.

저는 프로 사진작가 사계절입니다. 거주지는 종로이구요....그리고 전화를 건 이유는 전직 국회의원 살인사건의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 섭니다.”

사계절이 살인사건 결정적 증거 운운에 화들짝 놀란 경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사진작가 님! 꼼짝 말고 자택에 계십시오. 총알같이 달려가겠습니다.”

15분 뒤

전화를 받고 총알처럼 달려 온 경찰이 문제의 사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며 혀를 차고 있을 때 였다.

어찌 냄새를 맡았는지 정론직필을 비롯한 여타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 벌떼처럼 사계절의 자택을 급습했다.

문제의 필름을 에워싼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과 신문사 소속 카메라 기자들은 서로 몸을 밀쳐가며 경쟁적으로 렌즈에 담았다.

방송과 신문사 취재 기자들도 사계절을 향해 속사포 질문을 퍼부었다.

사계절 작가께서 사진 속 범인의 윤곽을 어떻게 잡아냈습니까?”

“2억원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어디에 쓸 작정이죠?”

한동안 시골장터처럼 북새통이었던 자택은 언론과 수사 요원들이 물러 간 뒤 평정을 되 찾았다.

사흘

수사당국은 치밀한 수사 끝에 흑백 사진 속의 인물을 체포했다.

범인은 다름아닌 전직 국회의원의 보좌관 출신이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추 모씨로 알려진 범인은 사진 속의 여성과 내연 관계였다

헌데, 아이러니 하게도 여성은 사망한 국회의원과도 내연 관계를 유지하며 밀애를 즐겼다.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처럼 두 사람 사이를 눈치챈 범인(보좌관 출신)이 여자를 향해 국회의원과 관계를 청산할 것을 즐기 차게 종용 했다는 것이다. 허나 욕망에 눈이 어두웠던 여자가 끝내 범인의 요구를 거부하자 분개한 범인이 두 사람의 밀애 장소를 미행한 뒤 사건 당일 자신의 상사 였던 전직 국회의원을 총으로 살해했다. 수사당국에 검거된 범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소행임을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수사 요원이 문제의 사진을 눈앞에 들이대자 이내 고개를 떨구고 자신의 범행임을 순순히 자백 했다.

 

여자 아이의 특별한 초능력으로 범인을 검거한 수사당국은 마치 자신들의 노력으로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목청을 돋구었다.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동원한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자칫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한 살인사건을 해결해 냈습니다.”

수사 당국의 최고 위 인사가 기자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며 내뱉은 자화자찬이었다.

언론도 부화뇌동 하며 거들었다.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신문과 방송 역시 서로 다퉈 사건의 전말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매일 무미건조한 기사로 시청자들을 짜증스럽게 했던 언론이 이같은 대박 기사를 터뜨린 것은 가뭄에 단비같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래서일까?

유튜브도 전직 국회의원 살해사건을 가짜 뉴스를 덧붙여 휘 갈기며 시청자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했다.

그런가 하면, 여느 장소를 불문하고 두 사람 이상이 모인 곳에서는 전직 국회의원 살해사건을 화두로 삼았다.

삼각관계에 따른 치정 살인이라는 것이 더욱더 흥미를 유발했기 때문 였다

계모임 등 특히 중년 여성들이 한데 어우러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두 남자의 품을 오가며 밀애를 즐긴 여성이 단연 화제 였다.

그런데 주목할 대목은 너나 할 것없이 사건 속의 여성을 부정적으로 폄하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러운 시선으로 동정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편 사건을 해결한 수사당국은 전직 국회의원 살해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여자 아이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 전액을 지원키로 했다.

뿐만 아니었다.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된 후 본인이 원할 경우 수사당국 특별 채용도 허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사당국은 여자 아이에 대해  ‘상대방의 심리를 꽤 뚫어 보는 타심통(他心通)의 능력 뿐만 아니라 사물을 분석하고 이를 정해 하는 통찰력과 초능력까지 겸했다고 밝혔다.

여자 아이의 신비한 능력에 대해서는 정론직필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자칫 영구미제사건으로 묻힐 뻔 했던 전직 국회의원 피살사건의 단서를 직간접으로 해낸 사진작가 사계절은 현상금 2억원 가운데 절반을 여자 아이에게 건넸다.

 

한편 문제의 흑백 사진은 뉴욕에 위치한 소더비 경매장에서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미국 출신 영화배우에게 천문학적인 액수로 팔렸다.

()

이산해 / 추리 소설가